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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아이 사탕이 - 문광부우수교양도서 ㅣ 글로연 그림책 1
강밀아 지음, 최덕규 그림 / 글로연 / 2011년 12월
평점 :
이 짧은 동화를 어른의 시각에서 어떻게 풀어 갈까?? 책을 받는 순간부터 몇 페이지 안되는 책을 읽고 덮는 순간까지 어떤 입장을 가지고 보고 쓸 것인가? 지금까지 읽은 책들 중에서 제일 서평 쓰기 어려운 책이었다. 나도 아이였고 이 나이 또래의 아이를 기르고 있으면서도 내가 알고 있는 '아동 심리에 대한 배경지식'은 얼마나 될까?
거창한 질문일지 모르나 나의 어린 시절을 성찰해 봄과 동시에 그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 봄으로써 지금의 내 아이와의 합일점을 찾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틀에 박힌 사고를 조금은 돌려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남자 형제가 없는 딸 4명 가운데 셋째로 자랐다. 언니들과 나이 차이가 있었기에 그다지 부딪힐 일이 없었지만 성향은 내성적인 아이였다. 부모님은 이미 두 아이를 키워 보신 터라 틀에 박힌 형식을 크게 염두에 두시진 않았다. 내성적인 성격은 언니들과 생활하고 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렇게 서서히 묻혀졌다. 사회인이 되어서는 자유로운 의사를 존중해준 부모님 덕분에 마음껏 여행도 했던 것 같다. 문제는 질풍 노도의 시기인 고등학교 때 내 자존감의 결여와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가 제대로 되지 못한 그 시점이 최대 혼란기였고 지금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여기까지 왔지만 '그 시기를 좀 더 현명하게 대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이 때 간직했던 내성적인 성향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고 공부에 대한 동기 부여도 안되고 맹목적인 대한민국 공교육 아래 허수아비처럼 시간만 흘려 보냈다. 그 모든 것들은 훨씬 후에 여행을 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자존감이 생기고 나아가 외향적인 성격도 함께 겸비할 수 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탕이'는 요즘 하나, 둘인 아이들의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유형의 아이다.
엄마들은 바르고 얌전하고 사람들 많은 곳에서 떼 쓰지 않는 그야말로 인형다운 아이를 원한다. 그렇게 '착한 아이 증후군'은 엄친 딸, 엄친 아들 등 새로운 신조어를 등장하게끔 만들었고 우리들은 아이들이 말귀를 알아 들으면서부터 끊임없이 비교하고 설교하기 시작했다. '동생이 따라하쟎아! 하지마! 너 또 왜 그러니?'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그치고 몰아 세운다.
예전의 부모들처럼 다자녀를 다 돌 봐줄 수 없고 자유 방임형으로 키우던 시대와는 물론 비교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는 방임이 필요함에도 엄마의 레이더는 항상 아이들에게 꽂혀 있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과 부모들이 아이가 했으면 하는 행동 사이의 괴리감은 어느 한 쪽이 이해해 주지 않으면 결코 교차점이 생기지 않을 것이며 언제나 평행선일 뿐이다.
누가 이해하고 도와 주어야 할까? 물어보나 마나 뻔한 대답이지만 어른이라고 다 성숙하고 참아 낼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뻔한 얘기를 하고 있는 엄마인 나도 이제사 어린 나를 생각해 보고 지금의 내 아이와 교차점을 시도해 본다.
예전보다 높은 삶의 질과 다양한 정보 속에 살고 있지만 부모의 마음은 영원불멸,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솟아나는 자식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사랑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예전과 똑같은 답습의 연속이다.
아이는 아이다운게 가장 이쁘고 사랑스럽다고 한다. 아이다운 게 뭘까? 떼 쓰고, 고집피우고, 동생과 싸우고 늘 하는 그 나이 또래의 행위들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앞으로를 준비하는 입장에서 그것을 바로 볼 줄 아는 어른들의 역활이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나또한 엄청 반성하고 또 마음을 다잡는다. 4살배기랑 아침이면 일어나는 문제로 실랑이하고 밥먹는 걸로 싸우고, 첫째라는 이유로 '이러지 마라, 저러지 마라'를 달고 사는 요즘의 내 모습이 쥐구멍에 딱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어렸을 때의 멍울을 아이들 가슴 속에 심어 두어서는 안된다. 그 멍울이 언제 독으로 변해 내 아이의 앞길에 독화살을 들이댈지 모른다.
아이들의 책을 보면서 혹은 심리를 알고자 하는 노력에서 부터 아이들은 자라고 성숙할 것이다.
우리 큰 아이 인태가 돌아오면 아침에 소리지르면서 보낸 엄마의 입장을 얘기하고 아이의 소리에 다시 한 번 귀를 기울여 볼 것이다.
일등도 좋고 세상을 이끄는 1%도 좋지만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는 사회를 이끄는 평범한 계층에 속해주기를 이 엄마는 그저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