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가 한 여자의 일생이 송두리째 전장에 내던져진 상황을 두고 아무리 책일지라도 서평을 쓴다는게 감히 송구스럽고 죄스럽기만 하다. 전쟁의 상황은 책으로 보든 영화로 보든 처참하고 무섭고 두렵기까지 하다. 가정의 안위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좀 크게는 나라의 경제 상황에 관심을 갖는 정도가 다였다. 지금은 '경제 전쟁'이라고들 하지만 이 탈출구 없는 경제 불황이 계속 되면 무기를 사용한 '피의 전쟁'이 다시 올지 모른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레네'는 폴란드의 평범한 가정에서 17세까지는 나름 행복한 생활을 하다 독일과 러시아가 폴란드를 두고 전쟁을 벌이면서 본의 아니게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간호 수련원 생활을 하다 전쟁으로 가족과 멀어지고 비참한 생활을 하는 사이 폴란드는 독일에 점령 당한다. 폴란드의 도시 곳곳은 유대인들의 학살이 자행되는 장소로 변했다. 이레네는 나라 잃은 슬픔과 당장 눈앞의 배고픔에 허덕이다 어느 날 독일인들의 유대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학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한 독일 장교가 하늘로 뭔가를 날리더니 총으로 사살하고 그 아래 울부짖던 한 여인도 사살한다. 이 장면은 나라 잃은 슬픔도 잠시 잊게 하고 그녀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결단을 내리는 계기가 된다. 그 이후로도 그녀의 기억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는 악몽으로 남게 된다. 전쟁의 참혹 속에서 그렇게 그녀는 여인이 되어갔다. 독일 장교의 도움으로 집안일을 하는 가정부로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 유대인들을 숨겨두고 보살피게 된다. 20살을 갓 넘긴 여자가 어찌 그런 결단을 내리고 용기를 낼 수 있었을까? 조마조마한 순간들이 그녀의 실제 상황이었는데 마치 소설을 보는 듯했다. 그렇게 그녀는 독일인들로부터 미미하지만 십수명의 유대인들의 목숨을 건진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녀의 험난한 여정은 독일인이 물러가고 러시아인들에 또 다시 시달리는 나라 잃은 설움의 국민으로 되돌아와 있었다. 이런 기막힌 일생이 있을까? 나라를 잃은 설움과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다른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져야 했던 여인. 전쟁 속에 내 한 목숨 부지하기도 힘든 상황에 그것도 갓 20살을 넘긴 여자가 감당해야 하기엔 너무나 가혹한 현실이 아니었을까? 그녀의 넋두리 섞인 구절이 있다. 그때 내 나이는 스물 한 살이었다. 이미 4년동안 나는 수많은 싸움을 벌여 왔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4년이라는 시간은 학교를 다니거나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 가정을 꾸리는데 보내졌을 것이다. 말로만 듣는 전쟁의 참상은 그 일을 겪은 이들의 넋두리처럼 들렸던게 사실이다. 겪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한 불안감일 뿐 '내게는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가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은 더 이상 침묵해서도 안되고 지금의 세대들에게 그때의 잔혹함과 참상을 알려 경각심을 일으켜야 한다. 일시적인 경고가 아니라 뼛속깊이 새길 수 있게 해야 한다. 현실에 안주하며 바로 지금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나'는 위험에 닥치면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누구를 먼저 생각하고 누구를 희생할 것인가? 한번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문제들이다. 이 지구상에 정말 이런 끔찍한 일은 더 이상은 없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