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비의
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김순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슬픔을 잘 견디면 자양분이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슬픔을 느끼면서 이건 나의 미래의 자양분이야.”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처음 슬픔을 느끼게 되면 그저 슬플 뿐이지만 점차 외로움, 고독함, 수많은 걱정들이 파생되어 더 감정을 증폭시킨다. 감정은 몇 단어로 정해져 있는데 깊이와 폭, 종류는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공통점은 늘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는 정도다. 나는 슬플 때마다 늘 상황에 지고 만다. 탓을 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한다. 지나고 나서 보면 "내가 왜 그렇게 힘들어했을까?" 싶을 때도 있지만 늘 시간이 지나야만 무뎌진 감정으로 접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늘 슬픔에 대해 궁금했다. 어차피 계속 겪어야 할 고통이라면 이 슬픔이란 감정을 이해하여 나의 괴로움이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다.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슬픔을 이해하기 위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저자인 '와카마쓰 에이스케'는 25편의 이야기에서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같이 생각해보며 슬픔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슬픔이란 평소 잊고 있었던 내면의 소리이며 우리가 말을 하려는 것은 전하는 뭔가가 있어서라기보다는 말로 다할 수 없는 것이 가슴속에 남아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p.9)라고 말한다.

슬픔의 근원이 말로 다 할 수 없어 표현하기 힘든 감정의 응어리라면 왜 표현할 수 없는 것일까? 슬픔은 저마다 다르게 겪는 '나만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생의 기로라고 부를 만한 사건은 그것이 자신에게 아무리 강렬했다 하더라도 타인과 공유할 수는 없는 것(p.19)이라 한다. 당연히 내가 겪은 일은 타인도 똑같이 겪기가 어렵기 때문에 내 주변에, 내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나만의 사건이다. 특히, 내 이야기를 타인에게 속 시원히 털어놓기 힘들어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슬픈 상황이 생겼을 때 타인 앞에서 목놓아 울어 본 적은 드물 것이다. 우리가 여기는 슬픔은 사회 분위기상 암묵적으로 절제해야 하는 감정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울부짖고 싶지만 소리 죽여 우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p.37)

소리 죽여 울지 않으려면 슬픔을 대하는 태도부터 달리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누군가에게 기대하고, 기대려 하고, 받으려 하고, 공유하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내 진짜 마음이란 것부터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나는 혼자다'라는 명제가 깔려있다. 혼자이기 때문에 친구나 가족, 동료 등 다른 누군가가 생각난다.

이 두 가지를 받아들인 후에는 읽고 쓰는 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 책을 읽을 때에는 읽고 나서가 아니라 읽으면서 드는 생각들이 촘촘히 엮어 후기를 만든다. 쓰는 일도 나조차도 잘 모르겠는 복잡하고 어려운 감정들을 흐르는 대로 쓰다 보면 알게 모르게 풀려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런 과정이 조금 반복되면 내가 무엇 때문에 괴로워했는지 눈에 보인다.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게 아니다. 반대로 글을 쓰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발견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쓴다는 것은 단순히 자신의 생각을 글자로 옮기는 행위라기 보다 쓰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인생의 참뜻'을 인식하게 되는 경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p.165)

알게 모르게 풀린다는 건 내가 스스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를 지각하게 되어서 일 것이다. 저자는 환희와 비애는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보이지도 만질 수도 대화를 나눌 수도 없지만 글로 표현하다 보면 두 단어가 동전의 양면과 같은 존재란 것을 알게 된다고 한다. 내가 가진 표현을 끌어내기 어렵다면 필사를 하는 것도 도움이 되는 방법이라 한다. 공감이 갔던 문장들을 종이에 차곡차곡 적으면 뚜렷해지는 무언가가 생길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고독을 느끼지 않고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고독을 느낄 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자신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인생의 비밀과 조우한다는 것은 내가 '나 자신'이 되기 위한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고 우리가 진심으로 타인과 만나는 것도 고독 속에서 살아가는 과정 중의 하나이다. 고독의 경험은 우리를 고립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과 이어지는 계기가 된다. (p.118~119)

슬픔은 군중 속에서도 찾아오지만 고독 속에서 찾아올 때마다 많다. 군중 속에 있으면서 억눌린 감정들이 혼자 있게 되면 폭발적으로 꼬리를 물고 늘어진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무시하고 그냥 슬프다고 나 좀 알아봐달라고 하면 토닥여주지 않는다. 스스로 마주하여 이겨내려는 용기도 필요하다. 힘든 일이지만 한 번은 거치고 나아가야 긴 인생 속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힘이 될 것이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은 살아가면서 주어질 선택의 기로에 주체가 될 수 있는 강점이 된다. 우리는 짧든 길든 그 간의 인생을 경험해보면서 시간이 얼마나 위대한 힘을 가졌는지를 느끼고 있다. 끔찍이 아팠던 순간도 조금은 무뎌졌거나 잊혔거나 잠재되어 있다.

계속 그 실체가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아픔을 느끼며 하루하루 살아가야만 한다.(p.41)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맛있다!'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것처럼 계속 슬프면 슬프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었다고 크게 달라지지 않을 거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내가 책을 통해서 느끼고 공감하고 생각했으니 잠재된 슬픔이 희석되지 않았을까 싶다. 계속 달려왔으면 앉아서 쉬어야 할 때도 있는 것처럼 이 책은 그런 쉼을 스스로 가져보라고 말하는 것 같아 스스로를 계속 곱씹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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