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나의 시민들 슬로북 Slow Book 1
백민석 글.사진 / 작가정신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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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많은 여행 에세이를 읽어왔지만 독특함을 느끼기란 힘들었다. 아마 시중에 많이 판매되는 에세이들의 공통점이 유럽이나 일본, 동남아 지역으로 이젠 SNS나 블로그만 봐도 충분히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는 유명 관광지들이 되어버렸기 때문 아닌가 싶다. 그 지역들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에게 치이기 싫은,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은 사람에겐 복잡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백민석 작가가 여행한 '쿠바'란 지역은 독특함과 신선함을 가져왔다.

얼마 남지 않은 사회주의 국가이자 여행지로 크게 선호되는 지역도 아닌 쿠바에서 작가는 자신의 시각에서 '내가 봤다'라는 1인칭의 시점이 아닌 '당신은 봤다'라는 2인칭의 시점으로 서술하여  최대한 책에서 본인을 배제한 채 독자가 편하게 느끼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해준다. 그렇게 하여 그가 보여주려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사람들'이다. 사회주의 국가라 하면 제약도 많고 분위기도 경직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과 달리 그곳 사람들은 그저 일상을 살아간다. 오히려 평온함이 느껴졌다. 하루 종일 낚시만 하는 사람들, 길거리에서 제자를 가르치는 스승, 꺄르르 웃는 학생들, 잠깐 쉬고 있는 노인 모두 작가의 피사체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불편해하며 거절할 것 같지만 오히려 그들은 당연한 듯 포즈를 취해준다. 그 점이 오히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좌와 우가 잘린 세상, 위와 아래를 날린 세상.
그러니까 포커스를 맞추고 앵글에 맞게
적당히 잘라낸 세상만을 당신은 보고 있었던 것이다. (p. 68)

 

이렇듯 카메라는 그의 여행에서 중요한 도구로 사용된다. 하지만 빗물에 카메라가 고장 나면서 눈으로 피사체를 담는 연습을 하게 된다. 풍경은 우리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큼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린 잘 인지하지만 내려놓지 못한다. 정사각형 프레임 안에 세상을 담으려 애써온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도 한다.

 

하나의 장소는 여러 시간대를 통해 여전히 볼거리를 제공한다. 아르마스 광장의 성당은 어느 때는 합창단을, 어느 때는 댄싱 팀을, 어느 때는 오케스트라를, 어느 때는 단정하고 꾸밈없는 예배 광경을 제공한다. 당신이 장소들을 남김없이 소비했다고 해서, 아바나를 다 본 것은 아니다. (p. 163)

 

또한 장소를 소비했다고 해서 나라를, 사람들, 지역을 다 이해하여 소비했다고 볼 수 없음을 말한다. 장기 여행으로 머물렀지만 그는 여전히 아바나를 다 알았다는 자만심에 도취되거나 판단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태어나고 자란 한국도 여전히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 여행자로 보는 타국은 어떠겠는가?

태양이 작열하는 곳에서 그는 그곳의 사람들을 기록하는 역사가였다. 피나는 노력, 의무적 여유, 익숙함의 소중함 등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신'이란 호칭으로 독자인 우리가 쿠바의 여행자였고, 그는 가이드였다. 그곳에서는 와이파이를 찾아온 카페에서도 사람들을 관찰하고 파악해야 한다. 그래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의도를 안다는 건 의도를 만든 사람이 되어야만 알 수 있다. 내면을 채우는 여행이란 이런 것임을 알게 해준 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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