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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균열내기 - 뒤라스, 카뮈, 에르노를 지나 다만 내가 되기 위해
신유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6월
평점 :
<나를 균열내기>는 프랑스 문학 번역가 신유진이 사랑한 프랑스 작가들의 생애와 작품 속에 자신의 사유를 깊게 투영한 책이다. 유려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책 귀퉁이에 적어둔 나만의 사소한 느낌을 정성껏 쌓아 올렸을 때 도달할 수 있는 아름다운 문학적 건축물을 마주하는 듯하다.
흔히 작가와 작품은 별개라고, 작가의 삶과 소설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 없다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아무리 정교하게 창작된 이야기일지라도, 그것이 작가 개인과 완벽히 분리된 것일 수 있을까. 나는 작품을 읽을 때마다 작가의 내밀한 마음과 생활, 그들의 진짜 생각이 궁금해졌다. 그래서 시나 소설 외에 그들이 쓴 산물을 종종 찾아 읽는다. 그럴 때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어두운 방들이 마치 열린 문처럼 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작품은 결국 작가의 삶이라는 필터를 거쳐 나올 수밖에 없으니까.
책은 삶과 철학, 인생의 굴곡을 만드는 여러 순간들 앞에서 머뭇거리는 인간의 본질을 건드린다. 우리는 늘 어딘가를 벗어났다 생각하지만, 결국 본질은 여전히 그곳에 머물러 있다는 이야기들이 와닿았다. 뒤라스의 여자들이 안전한 삶 대신 균열을 선택하고 존재를 선명하게 확인했듯, 카뮈가 설명되지 않는 고통 앞에서 스스로 이방인이 되기를 자처했듯 말이다.
우리는 어느 작가의 삶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을 제대로 바라보기 위해 책을 읽는지도 모른다. 그와 비슷한 혹은 다른 무언가를 우리 삶에서 발견하기 위해. (p. 32)
하지만 나는 뒤라스도, 카뮈도, 에르노도 아니다. 나의 자전적 이야기를 문학적 성취로 이끌어낼 힘이 없다. 내 이야기가 타인에게 어떤 흥미를 일으킬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쓰려고 할까?
그 질문의 끝에서 내 안의 오래된 향수를 마주한다. 기억이 가진 소멸성, 분명 가졌으나 허공으로 휘발되고 마는 인간사 전반에 대한 아련한 마음이다. 위선일지라도 따뜻한 마음을 먹고 싶은 사람이라서, 사라지는 것을 문장으로 붙잡아두고 싶어 나는 쓰려 한다. 문학은 슬픔의 터널 끝에서 폐허가 아닌 ’그다음의 이상‘을 꿈꾸게 하니까. 절망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게 하는 힘(p.34)을 건네니까. 이 무모하고 아름다운 도약에 매료되어 쓰고 싶은 것이다.
삶이란 불필요한 것들을 깎아내어 투명해지는 과정(p.56)이며, 자신의 시간을 공간에 새기며 존재의 영토를 확장하는 일(p.165)이다. 글은 그 여정의 가장 정직한 기록이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그러나 넘치는 고백들 속에서 정작 필요한 것은 이야기의 쓸모와 방향을 묻는 일이다. ‘자기 쓰기’는 거울 앞에서 시작되지만, 그 끝은 거울을 깨고, 그 자리에 창을 내는 것이어야 한다. 처음부터 열린 창이 될 수 없음을 받아들이자. 깨고 깨지는 경험이 결국 우리 안에 창을 만들 것이다. 물론 그 창 너머에 누군가의 진짜 삶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p. 189)
나의 보잘것없는 글쓰기는 역시 매번 거울을 깨뜨리는 부끄러운 경험의 반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나만의 사투를 이어간다. 나를 균열 내고 부수는 아픔 역시,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진짜 내가 되어가는 여정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