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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나이 묻는 사회>는 우리 사회가 나이를 단순히 숫자가 아닌 '계급'으로 활용하며, 어떻게 세대 간 멸칭과 차별을 정당화하는지 적나라하게 파헤친다. 읽는 내내 공감과 불편함이라는 복잡한 감정이 공존했는데, 전방위적으로 가해지는 연령주의(Ageism)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임을 다시금 확인했기 때문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제도적 대안들이 과연 실효성 있을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의구심이 든다. 한국 사회는 규제가 생기면 또 다른 방식의 차별을 찾아내는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결국 본질적인 문제는 제도 이전에, 우리 내면에 뿌리 깊게 박힌 고정관념과 타인을 향한 인식의 틀을 깨는 데 있다. 하지만 희망보다 혐오가 익숙해진 사회의 온도를 체감할 때면, 변화가 너무 늦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최근 화두인 수많은 갈등의 기저에는 ‘나를 우습게 본다’는 낮은 자존감과 피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 이를 단순히 개인의 성격 문제로 치부할 수는 없다. 오랜 시간 우리를 지배해 온 계급과 자산, 권력 중심의 논리가 대중을 향한 집단적 가스라이팅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차별을 견뎌온 세대가 그 보상 심리를 자녀 세대 혹은 타인에게 투영하며, 역설적으로 차별의 공고화에 일조하고 있는 모습은 비극적이다. 저자가 언급한 “차별어를 듣고 자란 아이는 차별하는 어른이 된다”는 말처럼, 미디어가 희화화하여 송출하는 세대별 멸칭은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벽을 더욱 높이고 있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각 연령대에 완수해야 한다고 믿는 ’표준화된 생애 주기‘다. 10대에는 명문대, 20대에는 대기업, 30대에는 결혼과 출산, 이후에는 자산 형성과 자녀 지원으로 이어지는 가혹한 트랙 위에서 우리는 늘 조급함과 불안을 느낀다.
2030세대가 ’벌써 너무 늦은 것 아니냐‘며 불안해하는 이유는, 이 궤도에서 이탈하는 순간 실패자로 낙인찍는 이분법적 사고와 유교적 가부장제가 결합된 높은 도덕적 잣대 때문이다. 나이에 따른 서열화는 결국 개인의 삶을 체면과 위치라는 좁은 틀에 가둬 버린다.
타인의 삶의 이면을 헤아리기엔 우리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며 살고 있다. 나이를 무기로 무례하게 구는 이들을 마주할 때, 멋진 모델을 만날 기회조차 박탈당하며 절연된 세대론을 내면화한다.
배려를 강요할 수 없지만, 배려가 깃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공동체의 책무다. 사람을 벌레에 비유하는 ‘00충’이라는 표현이나, 미숙함을 비하하는 ‘0린이’, 노인을 비하하는 ‘틀딱’ 같은 언어들이 사라지려면 개개인의 각성뿐만 아니라 사회적 기능의 정상화가 필요하다.
<나이 묻는 사회>는 단순히 연령 차별에 대한 고발을 넘어, 우리 사회 전반에 흐르는 ‘차별의 공식’을 짚어준다. 나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투영된 우리 안의 괴물을 직시하고, 이제는 서열이 아닌 수평적 존중의 토양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