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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으로 출근합니다 - 식물과 함께 쓰는 나무의사 다이어리
황금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평점 :
분주히 보내는 나날 속에 벚꽃 구경은 그저 남의 일인 줄 알았다. 마침맞게 떠난 서울 나들이에서 석촌호수를 돌기 전까지는. 호수를 둘러싼 풍성한 분홍빛 행렬이 이다지 아름다울 줄 누가 알았을까. 저자가 근무하는 천리포수목원의 계절 역시 색색의 향연이겠구나 짐작하며, 시간의 흐름을 색과 향기로 기억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인지 산책을 통해 실감했다.
🌳 세상에는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 인간의 개념으로는 가늠하기 힘든 오랜 시간을 지나온 자연의 역사를 지키는 일도 마찬가지다. (p. 24)
천리포수목원 식물들의 생애 주기를 따라가다 보면, 삶의 자잘한 근심은 그리 중요치 않다는 안도감이 든다. 움트고 익어가는 생명의 본질을 마주하며,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은 가장 멋진 일이 아닌가 새삼 감탄했다.
인간 세계와 달리 식물의 세계는 명확한 답이 있다. 훼손하지 않고, 그들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며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는 것.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주어진 환경에서 인간의 욕심을 덜어내는 일이야말로 자연을 보호하는 데에 가장 필요한 태도임을 깨닫는다.
🌳 나에게 식물의 세계는 당연히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이유가 있는, 지극히 합리적인, 꼭 맞는 답을 찾을 수 있는 세계관이다. (p. 50)
비단 수목원에서만 필요한 덕목은 아닐 테다. 우리는 들리지 않는 성장의 소리를, 성급히 눈으로 확인하려 든다. 상승 곡선만을 쫓는 인간사의 피로감 속에서도 자연이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유는, 결국 우리 모두 자연에서 와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존재일 것이다.
🌳 잎이 햇빛을 가득 받으며 제 몸의 면적을 늘릴 때마다 부산한 소리가 났다면 여름의 수목원은 더욱 시끄럽고 요란스러웠을 것이다. 초록색으로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계절이 천천히 작별을 고하고 있다. (p. 137)
무성한 나무들을 바라보며 거니는 걸 좋아하는 소심한 관찰자이지만, 근래에 수목원을 자주 찾지 못했다. 머릿속이 복잡할 때면 여름의 싱그러운 녹음을 담으려 나무 그늘 안으로 성큼 걸어갔던 기억. 그 발걸음이 결국 무한한 계절의 순환 속으로 입장하는 일이었음을 더는 잊지 않길 바라며, 애정 어린 다이어리의 마지막 장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