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작별
김화진 외 지음 / 책깃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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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이꽃님, 이희영, 조우리, 최진영, 허진희. 우리 곁의 현실을 가장 예민하게 포착해온 여섯 명의 작가가 참여한 앤솔로지 소설집 『우연한 작별』은 ‘이별’이라는 단어를 관계의 종결이 아니라, 삶을 옭아매던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으로 다시 정의한다. 이 책에 담긴 여섯 편의 이야기는 특정 인물, 과거의 시절, 미해결 감정과 트라우마 등 각자의 삶을 붙잡고 있던 짐과 서서히 작별하려는 인물들이 갈림길 앞에서 흔들리는 순간을 포착한다.


이 책의 이야기들은 청년과 청소년의 시선을 통해, 불투명한 미래를 살아가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과거에 두고 떠나보내야 하는지를 묻는다. 표제작인 김화진의 「우연한 작별」은 늘 비교 대상이었던 또래 친척이자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애써 외면해왔던 열등감과 질투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다. 이꽃님과 이희영의 작품은 청소년기의 불안정한 자아와 관계의 균열을 섬세하게 드러내며, 조우리와 최진영은 사회 구조 속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상처와 선택의 무게를 보여준다. 허진희의 작품에서는 AI와 기술 발전으로 계층 갈등이 더욱 심화된 근미래가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그 안에서도 인물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결국 지금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고민은 결코 낯설지 않다. 불과 몇 년 전, 혹은 몇 달 전의 내가 품고 있던 생각들이고, 지금은 스스로 화해했다고 믿고 있지만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는 감정의 시한폭탄이기도 하다. “질투와 혐오 사이, 그 어디쯤 내 마음”(p.25)이라는 문장은 현실과 타협하며 애써 지켜온 또래들의 마지막 자존심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분노로 떨리는 손을 꽉 움켜쥔 채 버티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정확히 짚어낸다.


결국 이 모든 감정의 출발점은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이다. 자연스러움이 기계로 대체되고, 성적과 학벌, 재력이 인간의 가치를 가르는 기준이 되더라도, 작가들은 각자의 이야기 속에서 끝내 자기 마음만큼은 옳다고 믿고 지켜내라고 말한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그 마음을 쓰지 말라고, 자신을 갉아먹는 기준과는 작별하라고.


이 책을 덮으며 나는 상상해본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가장 먼저 어린 나의 손을 잡아줄 사람들을. 그리고 그 손길이,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지금의 나에게도 늦지 않게 다시 건네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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