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춤을 추세요
이서수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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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부터 느껴왔지만, 이서수 작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놀라울 만큼 실감 나게 그려낸다. 가정, 노동, 육아, 회사, 사회, 현실... 삶의 다층적인 면면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부당함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이서수의 화자들은 좌절하거나 무너지기보다, 울렁울렁 아니 꿀렁꿀렁 앞으로 나아간다. 나는 그들이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며 새로운 반환점을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인 점이 좋았다. 


소설집 첫머리에 실린 <이어달리기>는 실직한 모녀가 도서관으로 출근하는 이야기다. 경제적 독립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자녀가 사실은 부모의 생계에 무임승차하고 있었음을, 세심하면서도 날카롭게 짚어낸다. 나 여시 "엄마에게 용돈을 드리는 효녀'라고 자부해왔지만, 이 소설은 생활비와 공과금 등 가정의 실질적인 경제기반을 누가 감당하고 있었는지, 진정한 자립이란 무엇인지 되묻게 만든다.


퇴사하기로 결정했을 때도 나는 엄마를 생각해서 참지 않았다. 도리어 엄마를 떠올리며 마음을 더욱 확고하게 굳혔다. 엄마가 돈을 버니까 나는 몇 달 정도 쉬어도 괜찮겠지, 나는 그렇게 합리화했는데 엄마는 나를 떠올리며 참았다니. (p. 37)


이 짧은 문단 하나로, 세대 간의 책임감과 기대, 그리고 버팀이라는 이름의 착취까지도 뼈아프게 드러난다. <춤은 영원하다>에서는 이모와 엄마 그리고 딸인 화자가 '춤'이라는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억압된 삶을 몸부림치듯 표현해낸다. 춤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말로는 다 전할 수 없는 인내와 억눌림, 그 모든 것에 맞서 싸우는 방식이다. "버티는 것과 살아가는 것이 동의어"가 된 지금, "친구들의 고민은 나라의 고민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현실에서, 우리는 누간가를 웃게 하려고, 혹은 울음을 삼키려고 울렁이는 리듬을 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설집에 실린 다른 단편들도 모두가 제각기 다른 결의 인물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나는, 우리는 정말 안녕한가.


익숙한 듯 낯선 여성들의 삶을 따라 읽다 보니, 내 처지와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이야기들이 오히려 이상한 안도감을 줬다. 사는 모양은 다르지만 어딘가는 닮아 있다는 감각. 그리고 어쩌면 그건 불안 속에서도 몸부림치는 '우리의 리듬'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일이 한 두 개여야 말이지. 살아가는 건 조금씩 후회가 쌓이다 어느 순간 우르르 무너져 그 밑에 깔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 230)


이서수의 소설은 바로 그 작은 움직임을 기록하고 응시한다. 부질없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노력조차 이 세계를 살아내는 방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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