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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살리고 사랑하고
현요아 지음 / 허밍버드 / 2022년 7월
평점 :

폐허가 된 현실에 질식할 것 같을 때, 브런치에서 '불행 울타리 두르지 않는 법'을 만났다. 당시 나는 심한 불안 및 우울장애와 불면증으로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이 글은 살얼음을 걷듯 조심스럽게, 매만져야 하는 마음을 그려내며 내게 큰 위로를 건넸다.
이 책은 동생을 떠나보낸 사별자가 자신의 아픔을 면밀히 해석하고 해독하는 대항해의 여정을 담았다. 자책감과 죄책감으로 얼룩진 나를 어루만지며, 자기연민으로 가득 찬 '불행 울타리'를 벗어나는 과정을 말한다. '1장 일상 사별자의 품'에선 동생의 죽음을 애도하고, '2장 불행 울타리 두르지 않는 법'에선 우울과 불안 속에서 흐트러진 일상을 정리하며, '3장 우리는 지금 살고 있군요'에선 나의 상처에서 타인의 아픔으로 시선을 옮긴다.
"그래도 글로 마음을 풀어낼 수 있다는 건 무기력에서 빠져나오셨다는 걸까요?" 질문을 받을 수 있겠지만, 아직 그 굴레에서 완전히 도망치지 못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당최 감이 잡히지 않고, 기껏 목표를 잡았다 해도 얼마나 갈지 모르겠다. 모르는 순간에는 억지로 답을 찾겠다며 자신을 괴롭히기보다 허심탄회하게 모르겠다고 소리를 지르는 쪽이 홀가분하다. 몰라, 몰라, 모르겠다고.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못난 사람의 눈치를 보며 본인을 갉아먹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나를 괴롭히던 직장에 사직서를 쓰고 나왔다. 정신이 몽롱한 와중에 가끔 이성을 찾을 때면, 일상을 깨뜨린 주범을 꼬집기보다 깨진 일상 위에서 발이 다치지 않게끔 걸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을 고민한다. p. 64~65
저자의 생활은 완벽히 복구되진 못했지만, 상실로 인한 절망을 담담하게 풀어내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기록을 남긴다. 저마다의 고통을 존중하고 살아있는 존재들의 가치를 조명하는 문장들은 삶의 어둠을 희미한 빛으로 물들인다.
아픈 날이 훨씬 많은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웃을 만한 순간은 반드시 있었다. p. 113
고통을 벗어난 저자는 웃기도 하고 희망도 품으며 자잘한 행복을 느낀다. 때론 좌절과 회한이 밀려와도 잠시 절망할 뿐, 내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아팠던 마음도 시간의 힘에 옅어지는 걸 경험한다. 정신을 차리니 나 자신을 잃어가면서까지 지켜야 할 것은 없단 걸 깨닫는다.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아지면 회복은 더디게라도 찾아왔다.
가끔은 애도하며 슬퍼하다가 일상에서는 작은 것을 보며 행복해하는 이가 되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자살 유족이 아닌 일상 사별자의 품으로 오니 세상이 한 뼘 더 넓어졌다. (p. 83)
어쩌면 당신이 가장 먼저 당신의 몫을 덜고 타인을 구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버티는 날이 모이면 언젠가는 버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오겠지. 적당한 낙관을 잃지 않은 채 이성을 차리고 지금을 직시한다. (p. 205)
세상은 마냥 냉혹하지 않다고, 어둠이 존재하는 만큼 빛 역시 공존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세상이라는 유리에 부딪혀 기절했을 때는 어둠만 있는 줄 알았는데, 눈을 감은 채라 내 앞에 누군가 따뜻한 물을 준비해 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p. 224)
나도 그녀에게서 용기를 얻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두웠던 과거의 나를 회상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지만, 활자로 적힌 감정들이 그때만큼 아프지 않다는 걸 느끼고 있다. 우린 혼자가 아니다. 곁이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다정한 손길을 내밀자. 살리고 사랑하는 일은 언제라도 가능하니까.
당신이 유리에 부딪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당신을 찾지 못했던 것이지, 상처를 조금만 열어젖혀도 사람들은 당신의 곁에 머물며 기꺼이 우물을 내보일 테니. 우리에게는 모두 우물이 있음을 잊지 말아 주기를. 물론 당신에게도 말이다. p. 225~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