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쓰는 날들 - 어느 에세이스트의 기록: 애정, 글, 시간, 힘을 쓰다
유수진 지음 / 상상출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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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을 때마다 결에 맞는 ‘맞춤 자아’를 꺼낸다. 『나답게 쓰는 날들』은 쭈구리 같은 ‘초짜 자아’를 꺼내 읽었다. 항상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았던 ‘취준생 자아’와 고생 끝에 입사한 회사에서 별거 아닌 일로도 쉽게 상처받던 ‘신입 자아’가 불쑥 튀어나왔다. 꼬인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그 밖의 것들을 놓쳤던 그때가 떠올라 눈물이 찔끔 나오기도 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에 흐른 눈물이다. 


저자 유수진은 말한다. “세상에는 꼭 풀어야만 하는 매듭만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꼬인 것을 꼬인 그대로 놔둘 줄도 알아야 한다고(p. 217).”


글을 쓸수록 내가 가진 것을 더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덜 짜증 내고, 더 다정하게 대하면서 나와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책을 읽으며 기다림을 채움으로 바꿨고, 내 글이 무단 도용당하는 일을 겪은 후에는 똥 밟았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다른 이에게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대응을 다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글 또한 막힘없이 써 내려갈 수 있는 힘이 생겼다. p. 8


책은 네 가지 유형의 ‘쓰는 자아’를 소개한다. 글을 쓰는(write) 자아, 애정을 쓰는(care) 자아, 시간을 쓰는(expend) 자아, 힘을 쓰는(exert) 자아에는 ‘처음’의 순간이 담겨있다. 허둥대며 출근하는 그녀가 딸 같아서 편의점에서 간식을 사다 주던 남자부터, 부족한 나를 위해 방패막이가 되어줬던 상사, 알아서 하라며 내 선택을 지지해 주던 엄마까지. 혼란해서 버겁던 처음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가 지금까지 잘 살아올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그 모든 마감기한에 나를 질질 끌고서라도 함께 가준 사람들 덕분일지도 모른다. 혼자 살아보고 나서야 내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인지를 깨달았고, 사람들이 내게 내밀어 준 그 손들이 얼마나 고마운 것이었는지도 새삼 더 크게 느꼈다. p. 44


나답게 살기 위해선 ‘모두의 노력’이 필요했다. 서로를 챙겼기에 수많은 인생의 마감을 놓치지 않고 살았다는 걸 깨닫는다. 돌아보니 잃은 것 없이 얻은 것만 가득했던 건, 배려로 가득 찬 관계 덕분이다.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관계 때문에 상대를 믿고 다음 챕터를 준비할 수 있었다.


사람의 일이 재미있는 이유는 '연결성'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 어떻게 연결될지 알 수 없기에 수많은 연결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필요하다. (p. 68)


읽는 내내 배우 김태리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 종영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언젠가 한 번은 자신이 몰락할 거라 답변했다. 데뷔작 <아가씨>부터 출연한 모든 작품이 성공했지만, 지금의 성공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 유연한 삶의 태도를 견지하고 있었다. 해당 인터뷰를 읽으며 참 건강한 멘탈의 소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도 다르지 않다. 사회의 모순에 유약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모두가 양면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착한 사람이 되기보다 정도와 빈도를 지키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사람(p.145)이 되길 바란다. 우린 항상 단면과 함께한다는 걸, 매사 자각하고 있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괜찮은 인생을 만드는 사람은, 처음의 중요성을 알고 실패한 처음을 끊임없이 정리해 나간다. (p. 162)


비로소 나다워지는 삶은 시시콜콜한 것들에 불화(不和)하지 않는 것에서 시작된다. 벌어진 일에는 분노보단 최선의 대응이 최고의 방법이다. 그녀는 쓸모를 골몰하며 기록을 남겼기에 어제보다 오늘 더 단단해지는 법을 배웠다. 쭉쭉 뻗은 길은 만들지 못해도 최소한 길을 잃는 법은 없었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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