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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위로 - 글 쓰는 사람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곽아람 지음 / 민음사 / 2022년 3월
평점 :
세상을 바꾸기보다는 나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일이 더 쉽기에,
자신을 다독여 가며 단련시키고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일에서 공부의 의미를 찾고자 했다.
p. 9
나는 전공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지만, 실무에서 전공 이론은 써먹을 수가 없었다. "대학에서 배운 것은 아무 쓸모가 없어"란 말이 절로 나왔다. 그렇다고 대학 생활이 의미 없진 않았다. 비록 학사학위는 실전 기술을 알려주진 않았지만 순수한 배움의 기쁨을 알게 해주었으니까.
스물 초반의 패기는 어떤 학문이든 읽고 쓰고 경험하게 이끌었다. 10대가 '지어진 집을 잘 유지하는 것'이었다면, 20대는 '헌 집을 리모델링 하는 시즌'이었다.
-몰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들
'왜 해외에 비해 국내 대학에서 공부한 이야기는 드물지?'란 고민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저자가 대학에서 배우고 성장한 에피소드를 소환했다. 그녀는 학년별로 인상 깊었던 교양수업의 강의노트를 펼쳐 대학의 고루한 이미지를 깨부순다. 맘껏 공부하기 위해 대학을 다닌 '공부 덕후'는 젊은 에너지로 겁 없이 덤벼들어 머릿속에 지식을 집어넣는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는 몰랐기 때문에 나는 무서운 속도로 대학을, 새로운 것들을 빨아들였다.
p. 22
고고학을 전공한 그녀는 기억과 마음에도 층위(層位)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람을 사귈 때마다 그 사람의 층위를 가늠해 보고, 어디까지 나를 내보일 것인지 결정한다. 서툴게 영어 원서로 고전문학을 읽고 번역서에 담기지 못한 언어의 깊은 울림을 체험한다. 첫인상이 별로였던 수업을 들으며 가치를 재평가하기도 하고,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들었던 법학 과목을 재수강해 편견을 깨부수기도 한다.
무용한 일에 시간을 투자하고, 쓸모 없는 것을 배우리라 도전하고, 쓸데없어 보이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 그것이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젊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특권이자 가장 소중한 가치였다는 걸. 그 시절 무용해보였던 수많은 수업들이 지금의 나를 어느 정도 '교양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p. 117
-대학이 변화시킨 것
저자에게 대학은 내면의 성장뿐만 아니라 문해력, 이해력의 향상도 선물했다. 한자와 한글이 함께 쓰인 전공 책을 더듬더듬 독파하던 시간은 어떤 책이든 술술 읽는 힘을 길러주었다. 여러 책을 함께 독파하며 이론을 습득했던 덕분에 우물 안 개구리가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학년이 올라가며 삶을 이해하는 힘이 생겼고 덕분에 현실에 좌절해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식견(識見)이란 지식을 투입하는 그 순간이 아니라 추수 끝난 논에 남은 벼 그루터기 같은 흔적에서 돋아난다.
p. 63
그때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 와서야 이해되는 게 많다. 빈출문제, 예상문제집, 보충강의가 없는 시스템에서 '진정한 자기 주도적 학습'을 실천했다. 저자만큼은 아니지만, 나는 수업마다 강의노트를 만들어 하교 후 메모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어쩔 수 없이 수강신청이 망해 시간이 붕 떠버렸을 땐,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거나 카페에서 독서를 했다. 주말에는 대외활동에 참여했고 돌아오면 서평을 썼다.
교양 심리학과 전공인 아동학·사회복지학 덕분에 '내면의 어린아이'를 마주할 수 있었다. 현재의 문제점이 과거에서 비롯됐음을 깨닫고 매 순간 인지하려고 하는 건, 대학이 준 깨달음이다.
곽아람은 석박사 과정을 이어나가며 부족한 배움의 욕구를 채웠다. 무수한 리포트로 다진 필력은 기자로서 밑바탕이 되었다. 이렇게 보면 배움의 발현은 배우는 당시가 아니라 배우고 난 뒤 불현듯 발휘되는 것 같다.
인간은 자주 착각하고, 착각을 진실로 믿어 가끔씩 위대한 힘을 발휘하고,
착각에서 깨어나 슬퍼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착각한다.
착각할 수 있는 존재하는 것, 흔들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인간의 취약성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인문학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p. 229
지금은 손실을 따지는 어른이 되었지만 캠퍼스의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도 배움을 즐기고 동경하며 살아간다. 여전히 좋은 강의가 있나 기웃거리고, 괜찮은 커리어를 닦기 위해 지금처럼 책을 읽고 생각을 정리해 글을 쓴다.
타고난 것을 바꿀 순 없지만, 이를 갱신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은 공부 같다. 그녀가 말하는 공부의 위로란 배움의 감각에서 느껴지는 존재의 쓸모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