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온의 간식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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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일이 오는 걸 당연하게 믿을 수 있다는 건 정말로 행복한 일이구나. (p. 9)

 

달팽이 식당, 츠바키 문구점등으로 많은 독자를 위로한 작가 '오가와 이토'가 신작 라이온의 간식으로 돌아왔다. 전작이 내면의 상처를 톺아보며 현재를 긍정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죽음을 앞둔 주인공을 통해 삶의 전반과 사후세계로 넘어가는 찰나를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려낸다.

 

주인공 스즈쿠는 서른셋이란 젊은 나이에 말기암 판정을 받는다. 기계에 의존한 생을 살고 싶지 않았던 스즈쿠는 의지대로 남은 생을 살고자 호스피스 '라이온의 집'으로 향한다. 레몬 섬이라 불리는 맑은 바다로 둘러싸인 '라이온의 집'은 매일 바다를 바라보며 유유히 쉬고 싶은 스즈쿠의 바람을 완벽히 채우는 곳이다. 그녀가 배정받은 방은 창문 가득 드넓은 바다가 보이고 쾌적한 환경과 정성스러운 음식은 임종을 앞둔 이들의 낙원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쨌든 나는 이 섬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유유히 쉬고 싶다. 튜브를 달지 않고 푹 잠들고 싶다. 그래서 라이온의 집을 선택했다. 그리고 매일 바다를 볼 수 있는 호스피스는 후보 중에서 이곳 한 군데뿐이었다. 어째서 산이나 강이나 숲이 아니라 바다에 집착했는지는 나도 잘 모른다. 다만 가까운 느낌이 든 것은 사실이다. 천국에. (p. 24)

 

그들을 보살피는 라이온의 집의 관리인 '마돈나'는 스즈쿠를 비롯한 게스트들에게 위안과 깨달음을 준다. 게스트의 뜻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되 그들의 생활에 깊게 관여하지 않는다. 제한보다는 제안으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스트의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준다. 스즈쿠는 마돈나와 게스트의 도움으로 활기를 되찾는다. 이곳의 유일한 규칙인 '자유롭게 시간 보내기'를 마음껏 지키며 추억을 쌓는다.

 

태어나는 것과 죽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등을 맞대고 있는 것이니까요.”

걸음을 멈추고 마돈나가 말했다.

어느 쪽 문을 여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p. 21)

 

일요일 간식 시간은 라이온의 집의 핵심 이벤트다. 먹고 싶은 간식에 대한 사연을 작성해 제출하면, 그중 하나를 마돈나가 선정해 다 같이 먹는다. 이 순간만큼은 한 명도 예외 없이 음식을 맛보며 추억에 잠긴다. 가족에게 특별했던, 여행지에서 맛보았던, 돌아가신 부모님이 만들어주셨던 각양각색의 스토리가 달콤한 맛으로 재현된다. 단조롭기만 하던 일상은 잠시 특별해진다.

 

처음에는 너무 단조로운 리듬 속에 색채가 있고, 놀라움이 있어서 조금도 질리지 않았다. 이곳에 와서 나는 음식 맛에 눈을 떴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맛있는 음식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라이온의 집 식사는 그것과는 종류가 다른, 영혼에 직접 울리는 맛이었다. (p. 55)

 

스즈쿠는 줄곧 외면해왔던 "나 더 살아서 온 세상 좋은 풍경을 많이 보고 싶었다(p.188)"며 진심을 깨닫는다. 그리고 "살아있다"라고 되뇌던 말을 "살아있길 잘했다"라고 바꾸며 멀어지는 삶을 긍정하고 다가오는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마친다. 더불어 생사의 경계에서 오랜 잠을 자던 그녀에게 찾아온 떠난 이들의 방문은 사후세계가 무섭지 않음을, 아직 이승에서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음을 알게 된다.

 

보고 싶었던 아버지와 몰랐던 여동생 고즈에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들과 마지막 인사를 한다. 마지막 라이온의 간식 시간을 갖는다. 이후, 그녀를 그리워하는 아버지와 고즈에, 마돈나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전환된다. 남겨진 자가 애도를 통해 슬픔을 달래는 사이, 스즈쿠가 남긴 추억의 간식 밀크레이프 레시피가 고즈에 앞으로 도착한다. 남은 사람은 그들의 삶을 잘 살아낼 것이라 암시하듯이.

 

살아 있다.

나 아직 살아 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곳에 있다는 실감이 바닷물처럼 밀려왔다.

둥실둥실 바다에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p. 61)

 

 

살아 있길 잘했다.

오늘이라는 날을 맞이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이제 건강한 시절의 몸으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그러나 건강한 시절의 마음은 되찾았다.

그 사실이 지금 너무나 자랑스럽다.

고마운 마음이 내 안에서 봄바람처럼 불어댔다. (p. 250)

 

오가와 이토는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며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작가와 역자 모두 '어디까지나 죽음은 상상의 영역으로 산자의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어쩌면 라이온의 간식은 작가가 임종을 앞둔 이들에게, 임종을 지켜야 하는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메시지란 생각이 든다.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두 세계를 잊지 말고 곁에 있는 사람과 인생을 다독이며 즐겁게 살아보자고. 그것이 내 삶을 존중하는 태도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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