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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리의 비밀스러운 밤 ㅣ 브라운앤프렌즈 스토리북 2
김아로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네이버 라인 캐릭터들의 이야기가 담긴 '브라운 앤 프렌즈 스토리북'. 그 두 번째 주인공은 샐리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이 귀여운 오리는 뻔뻔하며 무지막지해 보이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며 지켜낼 줄 아는 인생 법칙을 가진 친구다. 튼튼한 멘탈과 두둑한 자존감을 가진 샐리는 열심히 정해진 일상을 사는 직장인 친구들과 달리 비밀 작가 프리랜서로 살기에 친구들의 삶을 모두 이해하진 못한다. 하지만 친구들과의 에피소드를 자신의 작품에 녹여낼 만큼 은근슬쩍 자신의 애정을 티 내는 츤데레 면모를 보인다.
"날씨 좀 봐. 어쩜 휴가가 끝날 때까지 우리가 계획한 것들을 하나도 못하고 그냥 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고."
"내일 날씨는……."
샐리가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일 알 수 있잖아. 그런데 왜 미리 걱정을 해?"
코니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샐리의 말처럼 내일의 진짜 날씨는 내일이 돼봐야만 알 수 있는 것이었다.
0퍼센트의 강수확률을 예측했던 기상청의 슈퍼컴퓨터도 오늘의 날씨를 오늘에서야 알게 된 것처럼. (p. 133)
샐리의 친구들은 고민과 걱정이 많다. 정해진 일과를 살아내는 일반적인 우리의 삶처럼 정해진 시간에 회사나 학교에 가야 하고, 고생한 것에 비해 짧은 주말을 아쉬워하며, 기다리던 휴가를 완벽하게 보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다른 생활을 하는 샐리는 친구들의 삶이 어떻게 힘든지 잘 몰라 초치는 말로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샐리의 장점이 있는데 바로 내일 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는다는 점! 코니가 휴가의 날씨를 걱정하지만 사실 기상청조차 자주 오보를 낼 만큼 변화무쌍한 자연현상이다. 그래서일까. 위의 말처럼 샐리식 위로는 시원하게 긁어주는 부분이었다.
샐리는 그런 친구들을 보며 말하고 싶었다. 재미로 시작한 일이 열심히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버렸을 때 무언가 잃어버리는 느낌이 들었다는 걸. 그저 열심히 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좋아하는 친구들과 별일 없이 노닥일 수 있는 여유를, 아무 때나 자고 아무 때나 일어나도 상관없는 무계획을, 한적한 오후에 즐기는 나른한 산책의 온도를 잃고 싶지 않았다. (p. 214)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유명 작가의 정체는 샐리다. 친구들은 작가의 천재성과 자유로운 일상을 부러워하지만 당사자인 샐리는 우연히 시작했던 일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며 혼란을 느낀다. 창작하기 위해서 견뎌야 하는 수많은 밤과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기 어려운 점은 샐리가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샐리는 자신의 본성을 긍정하며 이겨낸다. 대책 없어 보여도 자신이 즐거워하지 않으면 '좋아했던 일'을 과감히 관둔다. 애써 견디지 않는, 일직선이 아닌 사선의 길을 걷는, 적당히 열심히 하고 잘 포기하는 샐리를 보며 노력과 열정의 과대포장에 지친 우리가 필요한 건 이런 마인드가 아닐지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