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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당신 눈에만 보이는 기적
헤르만 헤세 외 지음, 강명희 외 옮김 / 꼼지락 / 2019년 12월
평점 :

이 세상에 가난하고 불행한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보다 더 명확한
것은,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어느 누구도 평안하게 살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이지. 하지만 이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소. (니콜라이 레스코프, 낮도둑 中)
헤르만 헤세, 모파상, 괴테, 안드레센 등 14명의 대문호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수록된
<크리스마스, 당신 눈에만 보이는 기적>. 어렸을 때 한 번쯤은 읽어봤던 동화 <성냥팔이 소녀>부터 몰랐던 소설까지 그
안에서 크리스마스는 누군가의 행복임과 동시에 불행이었다. 크리스마스가 주는 환희와 기쁨은 따뜻한 집안에서 트리를 꾸미고 음식을 차리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가정에만 있고, 집 밖에는 불씨 하나가 없어 애타게 불을 찾는 사람부터, 전쟁, 고아, 폭력으로 얼룩진 사람들이 존재한다.
유감스럽게도 삶은 너무도 짧은데 겉보기에 중요한 불가피한 의무들과 과제들로
가득 차 있다. 때때로 사람들은 아침마다 감히 침대를 떠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책상은 처리되지 않은 서류들로 가득 차 있고, 온종일 우편물들이
두 배로 쌓여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두 아이들의 동화로 즐거운 사색 놀이를 더 할 수 있을 텐데. (헤르만
헤세, 두 개의 동화가 있는 크리스마스 中)
<전나무 이야기>는 숲속을 떠나간 다른 나무를 부러워하던 전나무가 잘려나가
트리에서 다락방에 처박혀 늙어 불쏘시개가 될 때까지를 그린다. <성냥팔이 소녀>에서 소녀는 성냥을 팔지 못하면 자신을 때릴 아버지가
있고, 거리에는 자신 같은 불쌍한 아이에게 손 내밀어 주지 않을 무심한 사람들만이 가득하다. <네 번째 동방박사 이야기>는 아기
예수를 찾는 대열을 이탈한 네 번째 동방박사가 가난과 폭력으로 얼룩진 사람들의 삶을 도와주고자 자신의 보석을 기꺼이 내어주며 자신이 병들고
나약한 노인이 되어서야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예수를 발견한다.
크리스마스라고 불을 켜서 환호하는 이야기는 쉽게 찾아볼 수 없었다. 대문호라 불리는
작가들의 그려낸 유럽의 크리스마스는 각박하고 추운 결핍의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기가 느껴졌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그려낸 인물들이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자 했고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냥 따스하게 읽을 수 없었지만 따뜻했다면 이 때문인 듯 싶다.
어릴 적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억은 나이가 들수록 생생해지고, 그래서 지금
아이들이 맞는 크리스마스는 영원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달베르트 슈티프터, 얼음 절벽 中)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는 슬프고 아름답고 불쌍한 감정만이 있었다. 동화를 잘 읽지 않는
어른이 되어서야 동화는 삶이란 무거움을 이고지는 현재진행형의 발걸음이었단 사실을 깨닫는다. 방금 사랑의 온도계에 모인 성금이 작년에 비해
줄었다는 뉴스를 보았다. 삶이 팍팍해지며 이웃을 향한 온기는 줄었지만 빨간 온도계가 차 있다는 사실은 아직 온기를 전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얼마 남지 않은 크리스마스에는 모두가 온기로 가득한 하루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