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 소설가 박완서 대담집
김승희 외 지음, 호원숙 엮음 / 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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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작가님이 별세하신지 어느덧 9년이 다 되어 간다. 다작으로 많은 글들이 있기에 다행이라고 생각될 만큼 아직 못 읽은 책이 더 많아서 다행이라고 여겨질 만큼 그녀의 빈자리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그녀를 아끼는 10명의 사람들이 생전 그녀와의 대화를 다듬어 책으로 엮었다. 일제 치하, 6.25 전쟁, 격동의 시기를 버텨낸 그녀의 삶은 자화상처럼 글에 녹아들었고, 여자로서, 여성작가로서의 삶을 주체적으로 보여주었다.


대화를 읽다보면 소설 속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묻어 나온다. 특히 <그 남자네 집>의 '춘희'는 작가님 자신의 삶이 조금이라도 어긋났더라면 꼼짝없이 휩쓸려갈 수밖엔 없었을 길이라고 표현하면서 동시대의 약간의 엇갈림이 가져오는 삶의 높낮이를 섬세하게 그려내려 하시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여성 인물에 대해, 여성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여성이라서 한계를 느껴본 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 모습이 멋있었다. 스스로에게 성차별적인 한계를 지정해두지 않았다는 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저더러 '페미니즘 작가'라고 하는 데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제가 여성문제를 다루어야겠다고 의식하고 쓴 건 <살아있는 날의 시작>뿐이었습니다. 여성이 자주적으로 생각할 힘을 가진 존재라는 시각으로 여자를 그린 것은 아마도 제가 최초가 아닐까요. 그전에 남성 작가들이 그려놓은 여성상들과는 다르게 말이죠. 정말 좋은 소설이라면 남자가 썼더라도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도 똑같은 인간으로 그린다면 말이죠. 그런데, 많은 남성 작가들이 여성은 창녀가 아니면 성녀라는 식으로 그리더군요. (p. 86)


겉치레보다는 인간의 소박하고 투박한 면을 사랑으로, 예민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가님을 보면 동시대를 살아가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마흔이 넘어 늦은 등단을 했다는 시선이나 평론가의 논평에 신경 쓰지 않고 그동안 겪어온 것들이 충분한 이야깃거리가 되어 쓸 거리가 없다는 기분을 느껴본 적 없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작가라는 호칭에 어울려 보였다. 쓰지 않는다고, 초고를 쓰지 않는다고 글을 쓰지 않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소설가가 됐다는 것은 그에게 자기 자신의 이름을 비로소 회복시켜주고 한 사람의 당당한 사회인으로 거듭나게 한 것 말고도 그의 삶의 내용을 천천히 그 질료로서 살아져야 했다. 또 날것 그대로의 삶은 그의 연금술에 의해 문학으로 전환되면서 수없이 되풀이 살아졌다. 다시 말해 객관화시키고 반성하는 삶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예전에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없이 그저 무의미한 타자로 존재했던 숱한 사람들이 그리고 이들이 모두 나름대로 각별한 의미망을 구축하면서 자신의 문학적 감수성으리 체계 속으로 편입되어 들어왔다. (p. 38)


초등학생 때 읽었던 <자전거 도둑>이란 동화부터 교복 입고 교과서 문학작품에서 읽던 글까지 모두 다 생각난다. 그 글을 성인이 되어 한 사람의 인생으로 읽으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많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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