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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혼자에게
이병률 지음 / 달 / 2019년 9월
평점 :
왜 혼자냐고요. 괜찮아서요.
비와 태풍이 연이어 휩쓸고 간 뒤, 어수선한 어둠이 자리한 시기에 마음이 화사해지는 글을 만났다. '혼자'란 단어를 좋아하기에, 단어가 주는 의미보다 그 자체를 사랑하기에 쓸쓸하고 고독하고 외롭단 감정보다 강인하고 단단한 생각으로 작가가 풀어낸 혼자란 세계가 좋았다. 아주 괜찮은 위로는 '해주는 게' 아닌 '보여주는 것'임을 숱한 여행을 통해 바라본 시인의 시선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래도 언젠가는 말해주겠다. 우리가 어떻게 혼자일 수 있는가는, 의존적으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으로부터 가능하다고. 도대체 얼마나 혼자 있어 보질 않았으면 혼자 있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그 또한 보통의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p. 122)
혼자 해야 할 것들은 어떤 무엇이 있을지 혼자 가야 할 곳도 어디가 좋을지 정해두자. 혼자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도, 혼자 잘 지내서 가장 기뻐할 사람이 나 자신이라는 것도 알아두자. 이것이 혼자의 권력을 거머쥔 사람이 잘하는 일이다. (p. 125)
우린 질 좋은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 혼자일 필요가 있다. 혼자는 사랑을 주체적으로 실현시킬 사람들이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먼 곳을 응시하는 청년 뒷모습은 찬란해서 바라보게 만든다. 청승맞다는 느껴진다면 그건 마음이 가난해졌다는 증거다. 우리의 마음은 누군가와 함께 위해 자신의 두발로 일어설 수 있었야 한다. 끌려가는 삶과 같이 가는 삶의 결이 다른 이유다.
혼자 여행하는 동안, 당장 누군가가 옆에 없어 힘이 드는 건 돌아왔을 때 사랑해야 할 사람을 생각하라는 빈 '괄호'의 의미이며, 혼자인 채로 너덜너덜해졌으니 봉합해야 할 것들이 있다는 말이다. (p. 218)
인기척이라는 말은 '삶이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소리나 기색'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인기척이라는 놀이는 내가 있는 위치를 알리면, 당신이 그곳을 찾아 나서는 행위다. (p. 239)
물론 혼자라서 힘들 때도 있다. 곁에 있었으면 하는 외로움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공백을 느끼는 걸 알게 된다면 우리가 채워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도 자연스레 깨닫게 되는 법이다. 그가 말한 '인기척'이 내 존재를 티 냄으로써 상대가 나를 찾게 하는 것이라면 우린 혼자만의 소리를 연구해야 한다. 이 소리가 '나'라는 인간이 내는 소리임을. 상대가 단번에 '너구나!' 하고 고민 없이 뛰어올 수 있게끔. 우린 자주 티 내고 싶어 안달 나니까.
좋아하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모두가 혼자, 시간을 돌아가서 어느 한 결승점에 도달할 수 없다는 면에서 그 둘은 어렵다. 좋아하지 않고 살기도 사랑하지 않고 살기도 어렵다. 그 둘의 미묘한 뒷면과 뒤끝은 분간하는 일까지도 여전히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 둘의 세계를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를 산다면 삶을 방치한 채 꽤 오래 지루하게, 시간을 죽이는 일에나 매달려야 한다는 것도 우리는, 사실 모르고 있지 않은 것이다. (p. 21)
혼자라는 발음이 입을 통해 발설되는 순간부터 세상의 공격은 시작된다. 요즘처럼 혼자란 키워드가 대두되는 상황에도 어김없이 금지어처럼 '아직 덜 자라서', '뭘 몰라서', '그래도 같이 해야지'란 부수적인 말로 의미를 퇴색시킨다. 혼자는 혼자라서 괜찮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걸, 그 마지막은 '사랑'이란 종착지에 가닿기 위해서란 걸 아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혼자라서 좋은 건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지금이 딱 괜찮은 상태라고. 질문이 많은 건 답이 나에게 향해 있다는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