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김수정 지음 / 달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영국에는 사람책을 빌려읽는 도서관이 있다. 리빙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는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의 기능을 사람(인생)에 적용해 다양한 삶의 목소리로 듣고 편견을 극복하자는 취지가 담겨있다. 저자 김수정은 15명의 책(사람)을 만나면서 영국 사람들이 가진 사고와 편견, 사회의 분위기를 직접 경험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전달한다. 책은 겪어보지 못한 세계가 놓인 보물창고이다. 사람 역시 똑같다. 겪지 못한 시간의 흐름이 존재한다.

 

'나'라는 작은 세계에서 머물러 있던 자세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엿보면서 시야가 트이는 걸 느꼈다. 그러자 마음이 넓어졌고 꽉 조이는 옷을 입다가 넉넉한 옷으로 갈아입은 것처럼 여유로워졌다. 이 새로운 경험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전파시키고 싶어졌다. 시선이 바뀌면서 들어선 여유만큼 우리들 삶도 바뀌지 않겠는가. (p. 18)

 

그녀가 빌린 책(사람)은 사회의 보편(보통)에서 벗어나있다. 편견이란 색안경으로 보게 되는 시각을 벗기고 싶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는 사람들은 독특하지 않았다. 우울증 환자, 레즈비언, 트랜스젠터, 장학사, 미혼모, 신체 기증인 등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기반으로 나를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 리빙 라이브러리의 책으로 참여했다. 이해받기 위해 타인을 이해하려는 마음은 깊고 넓어서 던지는 다소 날카로운 질문에서도 단단한 답변을 내놓는다. 시련을 겪은 이들이 보여주는 건강한 기운이 느껴졌다.

 

대화를 함으로써 관계를 맺는 것. 누구나 자신과 관계가 있는 대상은 좀 더 이해하려 하게 되고 한 걸음 나아가 애정을 갖지 마련이니까요. 그리고 그 애정이 발전되면서 다른 사람 입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겁니다. (p. 16)

편견을 100퍼센트 없애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줄이려고 노력하는 것. 자신이 가진 '편견의 양'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또 그것을 허물려고 시도하는 과정 자체가 어쩌면 최고의 교육일지도 모르겠다. (p. 82)

 

마음을 다쳐 지치고 힘들지만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는 지금만큼한 행복하겠다는 비움의 미학이 느껴진다. 우린 대화하지 않기에 이해할 수 없다. 영국에서 정신과를 다니는 것이 신기하지 않은 이유는 대화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사람을 멀리하고 선을 긋고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게 되는 삭막한 사회에서 우린 "진짜 대화"를 잊었다. 대화는 목적이 있어야만 하는 게 아닌데 어느 순간부터 말을 하다가 서로를 힐난하고 핍박하는 어두움만 커진 듯 하다.

 

혼현인인 한 인터뷰이의 말이 생각한다 "혼혈로 살다보면 자연스럽게 관용을 배우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 다른 나라, 다른 민족, 다른 인종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이해하는 것. 그게 사실은 어려운 일이잖아요. 저는 명확한 정체성을 포기한 대신 남의 입장을 잘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p. 212) 라고 말하기까지 무수한 고민과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을지 느껴졌다. 한 사람에겐 여러 모습이 있다. 보고 싶은 모습으로 그 사람을 재단하는 건, 정답을 바라는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제 생각에는 그래요. 어차피 내가 지니고 갈 짐은 나의 것이고, 내 인생도 나의 것이에요. 누구에게 잠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위로받을 수도 있지만 결국 마지막에 그 짐의 중량은 내가 안고 가야 합니다. (p. 174)

 

인간은 소통하고자 언어를 만들었다. 언어의 본질을 다시 기억한다면 불통과 반대로 점철된 현재보다 나은 미래가 되지 않을까. 편견을 갖는 것보다 나쁜 건, 편견을 깨려 노력하지 않는 태도다. 들어주는 이가 없다면 말하는 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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