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에게 여름을 보낸다 - 윤진서 에세이
윤진서 지음 / 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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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은 왜 추운거야'라고 투덜거렸더니 폭염이 찾아왔다. 바다를 품은 에세이와 함께. 듣기만 해도 시원해지는 서핑에 대한 예찬이 이어지는 <너에게 여름을 보낸다>는 배우 윤진서가 자연과 함께 써 내려간 삶의 조각을 보여준다. 배우라는 화려한 가면 뒤에 가려진 소박한 삶엔 바다를 동경하고 경이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루틴에 발을 딛고 살아가고픈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내가 사라지는 것은 파도에 휩쓸려 단지 바다 아래로 가라앉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허나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발버둥 치며 살아남으려고, 두려워하면서도 거센 파도를 피해 멀리멀리 이곳까지 나왔다. 내가 얼마나 강하게 삶을 원하는지, 살아보려고 애썼는지를 대번에 느끼는 순간이어서, 눈물이 나려고 했다. 주르륵 흐르는 물기의 따뜻함을 느끼며 아, 살아 있다는 것은 가끔 이런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거구나 싶었다. 사람과 언덕에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해가 지고 있었고 나는 한없이 우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p. 20)

 

서핑의 매력은 무엇일까? 바다를 눈으로만 즐기는 나에겐 몸으로 느끼는 푸르름은 어색하다. 그녀는 서핑을 하며 멀리 나갔던 그 순간, 고요하고 아무도 없는 망망대해 속에서 느낀 원초적인 감정에 이끌려 서핑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 매일 바다로 뛰어들고 싶어 무작정 강릉으로 이사를 갔던 그녀는 꼭 붙잡아 버리지 못했던 인연들을 놓는 법을 깨우친다. 그것 옷이기도 사람이기도 아픈 기억이기도 했다. 바다로 직진하는 사람이 되자 몸에 배어버린 비릿한 향기과 짠 내가 꼭 쥔 것들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 것이다. 바다 앞에선 값비싸고 소중한 것들은 금세 닳아버리기 때문에.

 

'나는 정말 내 삶에 만족하는 걸까?'라는 문장이 섬광처럼 번쩍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채로 도돌이표처럼 매일을 그 소에서 소비했다. 일도 여행도 무엇도 마음 편히 즐기지 못했다. 무엇 하나 새로울 것 없이 이렇게 나머지 인생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남은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즈음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치 인연처럼 서핑을 만난 것이다. (p. 83)

 

잘 되려고 노력하는 삶보단 잘 지내는 사람이 된 그녀는 무르익어가는 벼 같았다.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의 속성처럼 주어진 것들에 겸손하는 일, 그건 순종이 아닌 아래를 보며 올바르게 서 있으려는 심호흡이었다. 서핑을 위해 여행을 가고, 바다의 청량함을 안고 싶어서 무작정 제주에 내려와 자신의 동반자와 새로운 인생을 꾸리는 이야기는 낭만이다. 그런데 나 역시도 그렇게 살아가려 하는 사람이었다. 하늘을 자주 보며 걷고, 보고 싶은 풍경을 보기 위해 발걸음을 떼는 이 과정이 낭만이 아님 무엇일까. 낭만을 곁에 두고 있다면 그렇게 사는 사람이지 않을까.

 

그러니 그 누구에게도 무언가를 강요할 수는 없겠다. 남동생에게도 혹은 남편에게도 그리고 어쩌면 자신에게도. 세상의 어떤 강요 없이 물 흐르는 대로 살아가다 보면 무엇이 나올지 궁금하다. 그것을 견뎌보는 것이야말로 진짜 인생일수도. (p. 44)

 

몸이 검게 탔어도, 오랜 서핑에 근육이 예쁘게 자리 잡지 않아도 그녀는 아름답다. 보이는 조건들에 부러움과 수군거림에 신경 쓰기 보다 내가 지금 즐거워 거리낌 없이 달려가니까. 시기와 성숙이 맞아떨어지는 시점에 찾아오는 작지만 소박한 이야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 그녀가 바다와 반복을 약속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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