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별이 내리는 밤
메이브 빈치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기적이 있다는 걸 믿고 싶다면 그날 밤을 떠올려요.

별이 가득한 하루를 또 보내며 함께 모여 앉았던 그 밤을."

 

인생의 중대사인 고민을 한아름 안고 와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이들이 있다. 고향에서 걱정하며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은 뒤로 한 채, 그리스의 작은 섬 아기아안나에서 시작된 네 여행자 엘자, 토머스, 피오나, 데이비드의 인연은 진심을 주는 판타지를 보여준다.

 

인연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네가 여기 온 이유는 무엇이니?"란 질문은 "갖고 온 질문은 무엇이니?"와 동의어다. 남자친구에게서 과거 아픔을 마주한 엘자, 재혼가정에서 자라는 아들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떠나온 토머스, 폭력적이고 무관심한 남자친구에 대한 사랑을 가족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피오나,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으라는 권유에 지친 데이비드. 머리를 싸매도 풀리지 않는 고민은 뜻밖의 동료를 선물로 준다.

 

고민이라는 건 '당연히 풀리지 않을 골칫덩어리'에 가깝다. 여태까지 수백수만 가지의 고민들 중 해결 된 것은 몇이나 될까? 결국 푸는 게 아닌 선택이란 기로를 마주하는 용기다. 내가 주인공들을 보며 답답해하고 화가 나고 그랬던 건, 나 역시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를 바 없는 '중대하다'라고 여기는 실타래를 안고 살기 때문이다. 보니가 나서서 그들의 고민에 참견하고 거침없는 조언과 독설을 퍼부었던 건, 그렇게 해줄 사람 역시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선택의 문 앞까지 등을 떠미는 그녀의 역할이 없었다면 네 명의 친구들은 계속해서 아기아안나에 머물며 회피하고자 했을 테니 말이다.

 

"내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이런 걸 혹은 저런 걸 알아야 한다는 표현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아요? 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알아야 하죠?" (p. 281)라고 보니가 토머스에게 이야기했던 건, 스스로 가 가장 불쌍하고 비극적이고 옳다고 생각하는 편견에 더 이상 사로잡히지 말라는 뜻이었다. 비슷한 상황을 겪었던 사람에 대한 동질감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합리화하려는 태도다.

 

하지만 몇 주 동안 이렇게 여행하면서 나는 정말로 완벽한 삶이라는 건 없다는 건, 

그러니 그걸 추구하는 건 그만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

이번 여행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의 문제는 내 문제보다 훨씬 더 컸어.

신기하게도 그걸 보니 내 마음이 진정되더라. (p. 352)

 

네 명의 친구들은 끊어내야 했던 인연들에게 단호한 입장을 밝힌다. 앞으로의 미래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낸다. 외면했던 것을 마주하는 순간 의지가 생긴다. 떠나가는 사람들과 떠나온 사람들 그리고 남겨질 이들이 공존하는 아기아안나가 배경인 이유는 '떠남'이 필수인 '섬'이란 고립된 장소이기 때문인 듯하다. 섬과 고민은 많이 닮았으니까.

 

결국 답을 찾아내고 소중한 인연을 얻은 이들처럼 삶에서 정답을 바라기보단 소박한 방향으로 한 걸음씩 내디뎌야 한다. 모르는 사람들이 가장 가까운 친구들로 바뀐 그리스의 어느 여름날의 기적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