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길의 왼쪽 - 황선미 산문집
황선미 지음 / 미디어창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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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황선미 작가의 동화를 안 읽어본 사람이 있을까? <마당을 나온 암탉>, <푸른 개 장발> 등 여러 동화를 쓰시고 또,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던 수많은 책들은 그녀 손에서 태어났다. 작가의 말을 찬찬히 읽어보면 스토리의 탄생은 그녀의 어린 시절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녀의 글을 좋아했고 동경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어버린 <마당을 나온 암탉>을 닳도록 읽었던 시간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하지만 그녀가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은 몰랐다. 제목처럼 그녀는 익숙한 길 뒤편의 이야기인 '나'라는 자아의 시작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저 열심히 살았을 뿐이다. 내 일에 충실했을 뿐인데 이런 결과라면 산다는 게 얼마나 쓸쓸한 노릇인가. 최선을 다했어도 인생이 풀리지 않았던 엄마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많이 다른가. 한 끗 차이구나. 누가 누구를 동정하고 성공과 실패로 가름할 수 있나. 산다는 게 뭘까. 꿈을 이룬다는 게 뭘까.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 (p. 67)

 

그 시작에는 엄마에 대한 분노와 그 시절 장녀가 짊어져야 했던 서러움과 외로움, 없어서 더는 내게 돌아오지 않던 기회 같은 '결핍'의 요소들이 있다. 그녀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을 때, 나 역시 공감했고 여전히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결국 싫어하는 자리로 올 때의 허무함과 허탈함이 뭔지 알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이 책은 작가 황선미를 벗어난 인간 황선미의 이야기다. 누군가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 어느 학교의 교수, 이국에서 참석한 한국작가 대표가 아니라 익숙해지지 않는 좌충우돌의 삶에서 주저앉는 사람이 있다.

 

그곳에서 어쩌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괜한 두려움을 안겼다. 그들도 나를 경계하며 지나쳤고 나 역시 의심을 안고 지나쳤다.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주는 두려움은 온몸의 감각을 깨울 수밖에 없다. 낯선 길과 타인에 대한 경계심은 내가 어린애처럼 세상을 보고 작은 것도 기쁘게 관찰하도록 해주었다. 늘 다니던 익숙한 길의 왼쪽에 이런 세상이 있었구나. 왜 나는 한가지 길밖에 몰랐을까. 익숙하고 편리한 게 전부가 아닌 줄 그때 이미 알았으면서 나의 오른쪽이 무너지고 있는 줄은 이렇게 몰랐다니. (P. 148)

 

  

여전히 모르는 게 많고, 자주 포기하고 싶고, 화려한 겉과 달리 여물지 못한 자존을 가진 사람이 서있다. 그녀의 빈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안다. 결국 그 손은 그녀 스스로 맞잡아야 한다는 사실을. 계획대로 되지 않고, 짜증 나고, 발전은 더디어도 일어서서 나아가야 하는 게 삶의 기능이니까. 완주는 대신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아프게 깨달을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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