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의 우산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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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말을 하고 싶지만 정작 말할 수 없다. 황정은 작가님의 작품은 이런 여운을 갖게 만든다. 『 d 』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두 소설은 우리를 도사리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큰 줄기엔 지난 몇 년간 있었던 가슴 아픈 사건, 정치적 이슈가 있다. 우린 저항했고, 한자리에서 기도하며 큰 소리로 외쳤지만 온전히 한마음이진 않았다. 한자리에서 겪은 건, 우리와 사회의 시차와 온도는 분명하게 달랐다는 것이고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버린 현실에 느끼는 환멸이었다. 작가님은 이를 어쩌면 남루하고 초라한 주인공들(어쩌면 가장 평범한 사람들)을 내세워 일상 속에서 굵직한 이야기를 풍경처럼 비춰준다.

 

『 d 』

애인인 dd가 죽고 홀로 남은 d는 쇠퇴한 상가에서 배달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나간다. 그에게 일이란 그저 일과에 일부분일 뿐, 여기에 어떠한 의미 부여도 하지 않고 하루하루 살아있기에 살아낸다. 그러다 여소녀를 만나 그는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에 귀를 세운다. dd가 사라지고 삭막해진 삶에서 그는 dd의 유품 중 lp를 들고 나와 좁은 고시원에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dd의 흔적이 흘러나오는 소리에서 살아있음을 느낀다. 사랑한 사람의 부재로 체감한 하찮은 내 존재를 어루만지는 건, 결국 다른 이가 내민 우산이다.

 

d는 다시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느꼈던 진공을 생각하고, 문득 흐름이 사라진 그 공간과 그 너머, 거기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과 d에게는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다른 장소, 다른 삶, 다른 죽음을 겪은 사람들. 그들은 애인을 잃었고 나도 애인을 잃었다. 그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d는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무엇에 저항하고 있나. 하찮음에 하찮음에. (p. 144)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화자인 '나'가 서수경을 만나며 탄압으로 얼룩졌던 대학시절 운동권을 생각한다. 인권이란 단어가 무색할 만큼 폭행이 자행했던 시대, 누군가는 이를 혁명이라 부르며 환호하고 용감하다 칭했을지 몰라도 그 전선에 있던 사람들은 큰 상처를 입었다. 소설은 이들의 삶과 함께 기차 밖 지나가는 풍경처럼 세월호 침몰부터 박근혜 탄핵까지 긴 시간을 파노라마처럼 보여준다. 그건 먼 미래의, 지나간 과거의 것들이 아닌 밥을 먹으며 들리는 뉴스의 조각이고 밖에서 들린 시위의 목소리고 여전히 낮은 곳에 사는 우리를 직시하게 만든다.

 

너희들이 계속 이런 식으로 자신을 대하면 용서하지 않겠다고 그가 말했다지만 그것이 무슨 가치가 있겠나. 그의 용서가…… 우리에겐 그의 용서가 이미 필요하지 않다. 그가 그것을 모른다는 것과, 알아도 인정하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 이렇게 앉아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할 때, 김소리나 나는 화가 나기보다는 종종 서글프다. (p. 225)

 

'나'의 가까운 현실에는 앞마당을 쓸라고 명령하는 아버지가 있다. 노쇠한 자신을 자식들이 무시한다며, 어머니가 자신의 밥상을 제대로 안 차려준다며 용서하지 않겠다고 한다. 광화문에서 빛이 나던 목소리는 여기서 무력하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은 결코 변하지 않았으며, 혁명의 성공에 도취해 있기엔 잊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들이 지천에 널렸다.

 

우리의 일상은 이렇다. 설렘과 비극이 공존하고 위선자들이 벌인 잔혹한 횡포 앞에서 무력하다. 하지만 온 국민이 촛불을 들고 광화문 거리로 나선 날, 그 촛불이 콧대 높은 위인들에게 흠집을 내어 혁명이 성공으로 끝난 날 우린 보았다. 아직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하지만 지금 주위를 둘러보면 여전히 몇 십 년, 몇 백 년째 반복되는 악순환은 변하지 않았다. 작가님은 혁명이 일어나는 도중에 보여준다. 부패를 청결로 바꾸는 와중에 쓰러져 가는 사람들을, 과정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여기까지 걷는 데 사 년하고도 반년이 걸렸는데 세상은 변한 것처럼도 보이고 변하지 않은 것처럼도 보인다. (p.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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