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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리아민의 다른 삶 - 제8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전혜정 지음 / 다산책방 / 2018년 9월
평점 :
'선과 악'이 뚜렷한 소설을 오랜만에 읽는다. 장기 집권으로 오랜 시간 독재를 해온 '악'의 대표자 리아민과 그의 제왕적 통치를 위한 전기 작가로 고용된 박상호의 밀고 당기는 이야기가 인상적인 소설이다. 책은 리아민이 전기를 위해 박상호에게 자신의 과거사를 털어놓는 것이 주가 된다. 야설에 가까운 이야기부터 냉혹하게 살아남아 지금의 자리의 오르기까지 리아민은 욕망의 화신이었다.
박상호는 과거 소설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 역시 욕망으로 똘똘 뭉쳐있다. 욕망과 욕망이 만났지만 리아민과 다르게 박상호는 죄책감을 느끼며 갈등한다. 리아민의 말에 토를 달며 반항도 해보지만 결국 자신의 이름이 박힌 책을 출간하게 된다. 결국 그의 손에 놀아났다는 것을 알고 흥분해도 정권을 뒤흔들지 못하는 나약한 시민이다.
소설의 주요 핵심은 리아민의 기억이 '사실인가 거짓인가'에 있다. 기억은 시간의 도움으로 보기 좋게 각색되기 마련. 박상호 역시 독재자의 기억이 사실일 리 없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수석비서관, 경호원 등 리리궁의 모든 관계자들은 리아민의 입장과 같았고 혹시나 흠집이라도 날까 봐 박상호를 협박으로 가둬둔다.
확실한 건 아무도 없다. 욕망 앞에 무릎 꿇은 이들에게 기억이 진위 여부는 리아민이 맞는다면 맞는 것이다. 그들은 박상호를 쥐도 새도 모르게 없앨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이었고, 그랬기에 박상호는 속절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인간이었다. 이는 리아민이 기억을 확신한다는 말을 했을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을 테다. 믿음은 맹목적이다. 기억이란 신을 믿은 리아민 앞에서 기억을 가지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은 손을 쓸 수 없다. 여기서 위협적인 기억이 있다면 영부인의 기억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윗선에서 재단돼 비밀로 함구된다.
계란으로 바위치기란 말이 생각나는 소설이었다.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었지만 캐릭터가 전형적인 게 아쉬웠다. 과거가 추악하고 매몰찬 독재자의 이미지가 아니라 계산적이고 이지적인 이미지의 독재자였으면 어땠을까, 박상호도 위협을 무릅쓰고 자신이 가진 정보를 폭탄처럼 터뜨려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나 같은 독자의 바람이 있다. 그렇지만 영화 같은 흡인력을 자랑하는 소설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