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 제인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성은 여성 스스로 계속 거듭 태어나게 만든다."라는 김민정 시인의 말처럼 수치스러운 경험에도 굳세게 여성은 나아가야 한다. 이는 사회가 지켜주지 않기 때문이며 여전히 국가는 남성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단 근거다. 이 책의 주인공 '제인'은 '아비바'란 이름으로 살던 시절, 유명 정치인과 스캔들에 휩싸인다. 불륜 관계였던 둘은 정치인의 명예와 권력에 의해 철저히 아비바 혼자 후폭풍을 감당하게끔 처리된다.

읽으며 내가 읽고 있는 책의 저자가 미국인이 맞나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읽어도 최근 몇 달간 시끄러웠던 정치인들의 스캔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성은 권력을 쥐고 있었고, 여성은 밑에 굴복할 수밖에 없는 갑을 관계. 설령 둘이 합의하에 관계가 이뤄졌다 하더라도 여자가 꽃뱀이라는 둥, 여자가 행실이 저랬으니까, 말로 안 해도 행동으로 동의를 했으니까 별 말 같지도 않은 말로 남성보다 여성을 까내리기 급급하다.

이 책은 총 5명의 화자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아비바의 어머니 '레이철', 아비바의 또 다른 이름 '제인', 제인의 딸 '루비', 유명 정치인의 아내 '엠베스' 그리고 '아비바'까지 모두 여성이다. 5명의 인생이 스캔들로 삶의 붕괴되는데 어떻게 헤쳐나가는지를 볼 수 있다.

인상 깊었던 점은 아비바가 자신이 저지른 일을 수긍하고 인정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상대는 하지 않았다. 서로가 은밀하게 만나는 중에서도 자신의 최소한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아비바를 굴욕적이게 만들었다. 인터넷으로 그녀를 마녀사냥 시켰고, 마이애미에서 영원히 취업도 할 수 없게끔 매장시켰다. 언론이 그랬다. 두들겨 맞아야 하는 것은 양쪽인데 편중된 시선으로 쥐잡듯이 잡아 도망치게 만들었다.

제인은 달랐다. 우연한 기회로 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 때도 의연했다. 다시 태어난 또 다른 인격체 같았다. 루비가 과거를 알고 그녀를 피할 때에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 이름을 바꿔 새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던 순간부터 달라져 있었다. 족쇄처럼 따라다니는 스캔들은 선거와 관계가 없었다. 수십 년이 지난 일이고, 그녀의 공약과 정책에 영향을 끼칠 문제가 아니었다. 별개의 문제이며 과거였다. 그녀는 다시 불륜을 저지르지도, 도덕적으로 옳지 못헌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하나만 물어도 될까?" 당신이 말했다.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그녀가 말했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어떻게?" 당신이 물었다.

"사람들이 덤벼들어도 난 가던 길을 계속 갔지." 그녀가 말했다.

 

이 책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수치를 거부할 수 없는 여성에게 거부하여 새 삶을 살 수 있다고. 교육은 잘못에 대해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옳다고 가르친다. 정작 발 빠르게 인정하면 무슨 좋은 일을 했다고 저리 당당하냐며 비난한다. 법보다 무서운 건 대중의 잣대다. 요즘은 인터넷이 그렇다. 지우고 싶은 아비바의 블로그처럼 지우면 생겨난다. 넌 영원히 고통받아야 한다며.

인간에게 자유란 권리가 있다면 '잊힐 권리'는 당연히 주어져야 한다. 피해자라면 다시 새 삶을 시작할 수 있게끔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막지는 말아야 한다. 같이 저지른 일은 함께 감내하고, 잘잘못을 따져 선량한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체계가 좀 더 투명해지고 공평해졌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