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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안 해도 아무렇지 않구나
김신회 지음 / 놀 / 2018년 9월
평점 :
예전에 한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우리의 삶을 하나로 요약해 놓은 웃픈 영상이었다. 한 사람이 막 달리며 그 나이대마다 짊어져야 하는 것들을 하나씩 이고진다. 몸은 무거운데
속도를 줄이진 못해 마주한 장면은 낭떠러지였다. 계속 달리며 하나씩 얻은 무게는 성적, 대학, 졸업, 취업, 결혼, 육아였다.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공부하고, 대학을 가고, 입사를 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 그 속에 중요한 무언가가 결여된 채.
보노보노와 함께 다양한
깨달음과 위로를 전해준 저자는 이번에 꼼짝없이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야 하는 시간 동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손가락이 아파서 치료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권고를 받고 그녀는 '열심히 산다'에 목매달며 살아온 지난날을 회고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더 많이 쉬어야 한다. (p. 7) 고.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될까?라는 의문은 늘 애매하게 쉬기 때문에 드는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도 편안한 얼굴로 일터로 향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쉴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누구보다 먼저 자신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p. 7)
생각만큼 자신에게 관대하지 못하다. 아주 찔끔 자루를 푼 건데 안의 곡식이 쏟아질까 전전긍긍하는
형국이다. 다시 주워 담으면 되는 결과여도 한 톨의 쌀도 새어 나오지 못하도록 마음을 다잡는다. 왜일까? 그만큼 변화를 싫어한다. 변화하면 나의
세계가 흔들리고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웃긴 건, 변화하려고 노력한다. 달리기는 반복되는 노력이고 채찍질이다. 계속 달려야 지금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변화하기 싫어하면서 변화하고 싶어
한다' 이 무슨 모순인가?
나는 변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아도 상관없는 나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던 게 아닐까. 사실은 그 모습을 인정하고, 또 인정받고 싶었으면서도. (p.
60)
타이밍이 있다. 시기적절하게 행해야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그건 마음 돌봄도 마찬가지다. 이미
신경이 곤두선 채면, 조언도 충고도 다 고깝게 들린다. 몸도 성한데 없이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하는 것만큼 억울한 게 있을까. 저자가 손가락을
못 썼던 상황처럼 쉬라고 보내는 신호들이 있다. 마지막의 구조요청까지 외면하지 않으려면 나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를 묶었던 '하지 말아야
할 리스트' 같은 것을 풀어주는 식이다. 자유롭게 만드는 건, 꼭 지켜야 한다고 세뇌시켰던 한구석을 청소하는 과정이다.
그동안의 나의 동기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저 중에 꼭 지켜야만 하는 게 대체 뭐가 있나 싶다.
속상할 때 술 좀 마시면 어떻다고. 늦잠 안 자기는 무슨. 이제는 밀가루도 먹고, 필요할 땐 택시도 타고, 세일 안 하는 날에도 화장품을 살
거다. 그렇게 하나둘 금기로부터 자유로워진다면 언젠가는 <소공녀>의 미소처럼 물 흐르듯 바람 불 듯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p.
136)
갑자기 짜증 나고, 무기력해지고, 우울하고, 화가 나고. 이 모든 것은 이유가 있는 감정이고
기분이다. 이유 없이 드는 감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어딘가 나도 모르는 사이, 곪아 터져버렸단 사실이다. 자책하면 또 나를 원망하게 되고,
이렇게 자라버린 내가 싫어진다. 좀 쉰다고 내 세계에 균열이 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머릿속에 새긴다. 저자의 손가락이 푹 쉬고 나니
제자리로 돌아온 것처럼 쉼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