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우체국 아가씨 ㅣ 페이지터너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빛소굴 / 2023년 4월
평점 :
츠바이크는 문학계의 프로이트인가? 여성의 심리를 놀랍도록 사실적으로 그려낸다.
작가의 심리 상태를 대변하는 듯한 이 작품은 1부와 2부로 나뉘는데,
이야기의 흐름이 예상치 못하게 극적으로 바뀐다.
1부에서는 부유한 이모의 도움으로 볼품없던 모습에서 남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매력적인
아가씨로 변신한 크리스티네가 여러 이성들과 교제하는 밝고 호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다.
처음 고급 호텔을 찾았을 때, 무엇을 어찌해야 할지 모르고 자신의 초라한 복장을 창피하게
생각해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하는 어설픈 모습과 화려한 변신 후 창피함이 환희로 바뀌는
순간까지 크리스티네의 심리 묘사는 어찌나 실감 나던지,작가를 문학계의 프로이트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1부의 마지막에서는 크리스티네가 부유한 상류층 인물들의 속물적이고 추한 모습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들을 보며 시대가 변해도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이런 신데렐라 같은 스토리가 막을 내리고 2부에서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연상되는
듯한 깊은 우울감을 동반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렇게 흐름이 바뀔 줄은 생각지 못했다.
전쟁의 파괴와 가난이 만든 비참한 일상 속으로 내던져진 크리스티네는
호화롭던 생활의 기억과 대비되는 현실 앞에서 심한 고뇌를 느낀다.
이와 함께 2부에 새롭게 등장하는 페르디난트라는 인물이 흥미롭다.
마치 작가의 모습을 투영한 듯한 그는 작중에서 거침없이 세상에 대한 불만을 쏟아낸다.
이는 작가 자신이 세상에 대해 외치고 싶은 마음을 반영한 듯하다.
그리고 페르디난트에게서는 일용직으로 살아가는 현실 노동자의 모습이 연상되어 몹시
씁쓸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 앞에서 고민하고 고개를 떨구는 모습이 어찌 이리 똑같을까?
'돈은 있을 때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만, 없을 때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던가?
작중의 이 구절은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고 한동안 잊지 못할 것이다.
이 작품은 미완성작이라 끝을 보지 못하고 중간에 끝나지만, 작가의 마지막을 생각해본다면
두 사람이 어떻게 될 것인지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과거 모파상의『여자의 일생』을 읽고 그 우울한 내용에 두 번은 읽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츠바이크의 이 작품은 그보다 더 우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읽는 내내 끝간 데 없는 우울함이 내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뛰어난 작품이지만 아마 다시는 읽지 못할 것 같다.
그만큼 두 사람의 인생이 너무나도 슬프고 가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