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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 파이브
최재훈.박지선 지음 / 황금책방 / 2012년 6월
평점 :
품절
"천방지축 다섯 일진 소녀들의
아이돌 댄스그룹 개과천선 성공기"
여기 강원도 하고도 읍내로 들어가는 (분명 소설 중간에 읍내로 나가서 라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디쯤에 있는 메밀로 유명한 고장 명포에 위치한 명포여고에 문제적 소녀 5인이 있다.
예지몽을 꾼다는 몽자.
그녀가 학교에서 반과 관계없이 찾아다니며 음악과 체육수업만 듣고도 학교에서 짤리지 않는 이유는,
부모님이 학기초에 외국으로 선교를 떠났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이 문제를 의논할 대상이 없어 자포자기한 문제적 소녀다.
2학년 개학 첫날 다섯 명이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꿈을 꾸고 나서 그 맴버(포함 화장실 청소하는 네 명을 만난다)를 찾아 무작정 명포메밀축제 노래자랑대회에 참가하고 나중에는 수퍼 아이돌 오디션에서 우승해서 유명 아이돌 '걸 파이브'를 있게한 장본인.
명포여고 2학년 짱이라는 일진소녀 화진.
아버지는 미국으로 장기 출장( 사실은 감옥)가고 엄마와 둘이서 사는 문제아라고는 하나 책 전체를 뒤져봐도 동희에게 흡연하는 걸 들켰다는 처음 한 장면 말고는 크게 문제적 행동이 드러나지 않는 어디에서 일진인지 알기 어려운 소녀.
사고를 쳐서 한해 유급당해 다시 2학년으로 돌아온 명포여고 전 짱 동희.
몽자가 꿈꿨다며 노래자랑 대회에 나가자고 했을 때 짱다운 모습을 별로 보여주지 않으면서 어정쩡한 모습으로 끌려감.
백수이면서 불법체류자들을 몰아 내야 한다며 신고하고 다니는 오빠와 홀어머니와 사는데 동희는 왜 문제적 소녀가 되었는지가 별로 안 나옴.
걸 파이브의 보컬 애자.
네 명은 모두 2학년인데 친구 동희를 말리다가 화진과의 싸움에 휘말려 화장실 청소 당번이 되지만 어떤 문제적 행동을 해서 작가가 일진소녀로 분류했는지 그런 대목은 안 나옴.
노래를 좋아했던 엄마는 아버지와의 잦은 다툼으로 가출을 하고, 그런 이유로 딸이 노래하는 걸 절대 용납하지 않는 아버지는 술꾼이다.
화진의 빵셔틀 송화.
어찌보면 학교 폭력의 피해자인데 자신에게 폭력을 일삼던 화진과 함께 걸 파이브가 되는데 그런 화진과는 신기하게도 아무런 갈등도 없다.
이렇게 다섯 소녀는 명포메밀 축제 노래자랑에 '밤이면 밤마다'를 부르며 참가하게 되고, 그곳에서 전직 유명가수였던 이상무를 만나 트레이닝을 받고 수퍼 아이돌 오디션에 참가해 우여곡절 끝에 우승해 유명 아이돌 가수가 된다는 이야기이다.
읽으면서도 왜 이렇게 허탈한지.
분명 문제아 일진 소녀들이 뭉쳐 오디션에 도전해가는 과정에서 각자의 상처를 되돌아보게 되고, 상처를 취유받고,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서로의 꿈을 일궈가는 감동적인 모습을 그리겠다는 시놉시스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을 소재다.
그런데 책을 읽고 나서는 감동이 아니라 실망을 더 많이 하게 된다.
소설의 힘은 독자가 캐릭터에 얼마나 공감을 하느냐라고 본다.
예지몽을 꾼다는 몽자의 첫번째 꿈에도 공감이 안 되는데 두 번째 꿈은 더 황당하다.
작가 스스로는 납득이 갔을까?
아이들이 문제적 행동을 하는데는 다 나름의 안타깝거나 충분히 그럴 수 있을 이유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책을 읽는 독자를 설득할 수 있다.
그럴려고 문제아 소녀들을 주인공으로 한 청소년 소설을 쓴게 아닐까?
그런데 그런 설득의 과정이 너무나 생략되어 버렸다.
여기저기서 뜬금없는 끼어들기가 오히려 독자들이 이 소설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대표적인것이 파프리카 농장과 강렬오빠, 리카르도, 특히 동희 오빠의 에피소드는 참 난감하다.
또하나 소설 속을 관통하는 80년대 코드.
'밤이면 밤마다','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도 아닌 까페 이름 연필','대일밴드'....
이걸 이해할 수 있는 청소년 손들어 봐봐....
시간의 흐름 역시 혼란을 부추긴다.
중간고사 끝나고 기말고사도 없이 바로 시작된 여릅방학, 평일엔 저녁 8시 부터 하는 연습시간이 어찌나 긴지, 주말에는 일일연속극이 아니라 주말드라마를 하는데, 오디션 준비 기간은 2주라했는데....
서평을 쓰면서 난감해지기는 처음이다.
한 편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작가의 노력을 생각해보면 이런 지적이 작가에게 상처가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지나치게 잘 짜여지고, 완성도가 높은 작품을 읽다보면 난 절대 글쟁이가 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좌절감을 느낄 때가 많다.
그러나 좀 부족하다 싶은 작품이 출판되어 판매되는 걸 보면 '그래 이정도라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기도 한다.
이 책은 후자에 해당된다고나 할까?
작가에겐 참 미안하지만.
굳이 작가가 시나리오 작가겸 영화감독으로 활동한다는 약력을 확인하기 전에도 지나치게 시나라오적인 냄새가 난다는 걸 책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소재가 '그 후 신데렐라는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라는 동화가 되어버린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조금만 더 다듬었더라면, 책으로 나오기 전에 원고를 읽은 사람들이 조금 더 냉철하게 평가해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큰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