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
마광수 지음 / 책읽는귀족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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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큰(!)나라가 있습니다.

이 큰나라는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유와 민주주의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나라입니다. 더불어 수천년 동안의 역사와 문화도 아주 자랑으로 여기는 나라입니다.

이 나라에는 소설가가 아주 많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가들은 아주 달달한 연애소설만 쓸 수 있습니다. 그것도 20대 상큼한 남녀간의 사랑 이야기만.

40대나 노년의 사랑은  쓰면 안 되느냐구요? 아, 물론 헌법에는 쓸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나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그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노년의 사랑 이야기나 남녀가 아닌(?) 사랑 이야기를 썼다가는 감옥에 가게 될 수 있습니다. 왜냐구요? 늙은이가 사랑이라니요, 점잖지 못하게시리.

이쯤되면 사랑도 아시죠? 정상 체위만 해야한다는거. 그럼 그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상체위가 뭐냐구요? 그게, 무엇이든지 다 판단하실 수 있는 위대하신 판사님 마다 세상 모든 것을 다 확인해본다는 초능력자 검열관님 마다 다 달라서 그건 그때그때 물어봐야 합니다.(그런데 이런 분들도 하드코어 야동이나 해외원정 주지육림 파티를 싫어한다고 생각지는 마시고)

 

그럼, 이 나라는 수천년의 역사가 자랑이라고 하니까 역사 소설은 있지 않겠느냐구요?

어떤 뭣 모르는 작가가 북쪽에서 활약했던 강장군님의 오랑캐를 물리친 이야기를 썼다가 북쪽을 이롭게하는 빨간물을 먹었다고 재판을 받고는 콩밥을 오래도록 먹은 일 이후로는 어느 작가도 그런 이야기는 쓰지 않습니다. 그래도 걱정이 된 위대한 조상님들의 훌륭하신 후손들이 자신들의 조상의 위대한 업적이 사실은 거짓이라는게 들통날까 역사 소설은 금지가 아니라 금기 시켰습니다.

 

그래서 이 아름다운 큰 나라는 20대의 사랑 이야기 이 외에는 어떤 소설도 찾아 볼 수 없답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소설을 많이 읽을까요?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가 던지는 화두는 바로 이렇다.

(마광수 교수가 가르쳐준대로 내맘대로 해석)

 

마광수의 화두는 '화끈한 소설'이 아니면 '별 가치도 없고 재미도 없어' 이다.

고로 화끈한 소설이 더 재미있다.

그러고 보면 사디스트, 마조히즘은 알아도 사드의 소설이나 마조흐의 소설은 읽어보지 못했으니 내가 그것을 안다고 할 수도 없는 샘이다.

내가 그간 사디즘이 어쩌고 마조히즘이 어쩌고를 읊으면서 그걸 허용해야 되니 마니 떠들었던 것은 어쩌면 저 위의 정상 체위가 뭔지도 모르면서 설치는 판사나 검열관과 하등 다를바가 없었던 샘이다.

 

더불어 마광수를 알지도 못하면서, 마광수의 소설을 몇 권 읽어보지도 않은채 '마광수 주의'를 금기시 했던 예전의 내모습이 부끄럽다.

 

'소설을 도덕 교과서나 사회과학 교과서로 보는 이들이 한국엔 특히 많은데, 그들은 헤밍웨이를 어떻게 평가할지 궁금하다. 하지만 대게 칭찬을 퍼부어댈 게 분명하다. 다들 사대주의자들이니까.'-12- 

 

사대주의자라서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 헤밍웨이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몰라서 쪽팔리지 않기 위해 칭찬한다고 본다.

 

마광수 식의 여성주의, 여자는 섹시해야하고, 성적으로 과감해야 하는데, 성적 대상이 되길 거부하는 페미니스트가 그래서 싫다고 하면서도 여성의 모성애 회복이 성범죄를 줄일 수 있다며 모성 회복을 외치는 그의 주장엔 공감키 어렵다 하더라고 '마광수의 유쾌한 소설 읽기'에 소개한 책들은 읽어보고 싶어지는 이 마음.

 

그렇다고 해서 그 책에서 내가 마광수와 같은 코드의 재미를 가질 수는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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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 읽는 나쁜 동화책 - 사회적으로 올바른, 그러나 묘사와 전개가 어설픈 이야기
정한영 지음 / 토담미디어(빵봉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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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은 참 좋아. 

(내가 아이였을 때도 어른들한테 들었던 말이다.)

자고나면 새로운 책이 나오고, 자고나면 새로운 이야기가 나오고 말이야.

 

그런데 말이지, 이야기도 내가 알던 원래 이야기랑 버전이 다른 이야기로 속편 비슷한게 마구 쏟아져 나오는게 ' 아기돼지 삼형제 이야기'는 도대체가 몇가지 버전이 있는건지, 요즘 애들은 참 좋겠어.

 

그런데 말이야, 니네들.

재투성이 아가씨 신데렐라가 왕자님과 결혼해서 정말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을까?

살아온 문화가 달라도 너무 다른데, 귀족들과 담소라도 나눌라치면 뭐 낄 수는 있었을까? 

심청이가 왕비가 된 후 그 구중궁궐에서 펼쳐지는 권력간의 파워게임에서 사약받지 않고 제명대로 살 수 있었을까?  

 

함께 백설공주를 읽고,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를 읽으면서 그들식의 행복한 결말에 해피해하고, 해리포터 처럼 빗자루를 타고 하늘을 날 수 있을거라 열심히 연습하던,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을 받으려고 12월 한 달만이라도 착한 아이가 되고자 하던 아이도 초등학교에 입학만 해도 그건 동화책 속에서나 통하는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아침 책 읽기 시간에 초등 1학년 교실에서 '장수탕 선녀님'을 읽어주면서 '니네들 선녀가 있다고 생각하니 없다고 생각하니'하고 물어본다.

"선녀가 뭐예요?"

"에이, 선녀가 어디있어요." 

"저건 그냥 동화니깐 그렇지요."

 

아이들이 환상같은 동화 속에서 벗어나 현실을 알게 되니 잘된 일이라고 기뻐해야 하는 걸까,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동심을 잃어버렸다고 안타까워해야 하는 것일까?

 

그래, 맞는 말이다.

살아보니 현실과 동화속 세상은 달라도 너~무 다르더라.

 

'아빠와 함께 읽는 나쁜 동화책'이 바로 내가 하고픈 말이다.

세상은 말이지, 처음 계약을 할 땐 떡만 먹겠다고 해놓곤 나중엔 팔도 다라도 다 먹고도 모자라서 애들도 잡아먹으러 가는 거더란 말씀이다. 그것도 분명히 초식이던 놈이 고기를 먹어보더니 고기만 먹던 놈보다 더 밝히더라니깐.

 

아, 슬프다.

 

나는 이 책의 제목이 왜 나쁜 동화책인지 모르겠다.

'나쁜동화'가 아니라 '리얼동화'여야 하는거 아닌가.

 

세상사는 이것보다 더 독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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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홍상현 옮김 / 이책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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째깍째깍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카운트다운 끝에 폭발의 싯점에 도달했다.

10초도 남지 않은 시간.

이때, 폭탄을 해체하는 전문가가 혹은 비전문가이나 용감한 한 시민이 빨간선과 파란선을 두고 어느 선을 자를 것인가 갈등하고, 시간은 5초, 4초를 넘긴다. 떨리는 손으로 빨간선을 잘랐다. 1초를 남긴 타이머는 멈추고, 시한폭탄은 폭발의 위기를 넘겨 인류는 구원 받았다.

 

우리가 본 수 많은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지구의 환경 시계도 이렇게 폭발점인 '0'을 향해 달리다 못해 이제 겨우 몇 초를 남겨뒀건만, 우리는 '인류가 직면한 최대 위기' 지구의 환경 종말에 이렇게도 무덤덤 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 영웅이 나타나서 타이머를 멈추게 해줄것이란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나 소설을 너무 많이 봐온 탓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다고 많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지만, 오만한 인간들은 빙하가 녹으면 그저 북극에 살고있는 북극곰들이 옮겨 다닐 얼음 덩어리가 없어서 안타깝다 정도의 싸구려 동정심만을 가질 정도로 무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의 온도가 2도만 올라가도 그린란드의 빙하대륙이 녹아 내리고 전 세계의 해수면은 약 7미터 상승하게 되며 이는 아파트 3층 높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내가 가끔 환경문제를 다루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보다 아이들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하면 '그럼 겨울이 따뜻해서 좋겠어요, 미운 일본이 물에 잠기니까 통쾌해요, 높은 곳으로 이사하면 되겠네요, 나랑은 상관없어요, 어짜피 내가 죽은 후에 일어날 일인데 괜찮아요....' 꼭 꿀밤을 부르는 대답을 한다.

 

혹시 우리도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딱 우리 아이들 수준이지 않은가?

 

나 역시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반성한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해서 홍수나 쓰나미가 자주 나겠구나, 쓰나미보다 후쿠시마 원전이 더 무서운데, 앞으로 지구가 더 더워진다해도 당장 오늘밤 열대야를 피할 에어콘이 더 필요해, 올 겨울도 많이 춥다니 석유를 더 많이 쟁여놔야겠구나, 나 말고  똑똑한 사람들이 해결하겠지, 설마 그렇게까지 될라고....

 

나는 얼마나 바보인가.

지구에 닥칠 환경재앙이란건 나의 다음다음 세대쯤에나 생길 일이라고 안심하고 있었으니.

10, 20년 안에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아 없어지게 되면 빙하 아래 묻혀있던 메탄 가스들이 대기로 유입되고, 그동안 쌓여왔던 이산화 탄소들과 함께 얼음이 사라지는 비극보다 더  끔찍한 셀린 후버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토스트가 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땐 체르노빌과 같은 핵발전소의 방사능이 인류를 멸망 시킬 것이라 생각했더니 가만 앉아서 녹아내리는 지구 때문에 타 죽게 생겼다. 캥거루의 나라 호주는 지금도 너무 뜨거워서 해마다 산불로 대륙이 불타고 있는데 여기서 더 뜨거워진다니.

2도, 4도가 아니라 6도 더워지는 세상은 상상불가다.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를 읽으면서 나는 무서워서 잠을 들 수가 없다.

 

왜 진즉 이 책을 읽지 못했던 것일까?

그랬더라면 아이를 셋씩이나 낳지는 않았을텐데.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지구를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관심이 없다.

지구온난화의 최대 주범인 에너지 재벌들과 자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후원을 받는 정치가들도 절대 지구를 구하러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대로 타죽도록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지구를 누가 죽였는가' 이 책에선 지구의 기후 시계를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

탐욕의 자본가들이 지금 당장 욕심을 버리더라도 말이다.

 

지구의 시계를 반대로 돌려줄 슈퍼맨은 없다.

시한폭탄을 해체할 전문가도 없고, 어리버리한 주인공도 없다.

 

대신 용감한 시민은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지구의 덜 나쁜 미래는 용감한 시민들 만이 구할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으시라.

절대 혼자서만 읽고 책장에 꽂아만는 바보짓은 하지 마시라.

나와 우리 아이들의 생명이 달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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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빨강 - 제11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87
김선희 지음 / 사계절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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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 청춘 고딩이 길동 군의 인생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이삿짐 센터를 하던 아버지는 추락사고로 식물인간이 위기는 넘겼으나 7살 수준의 정신 연령을 가진 몸은 어른이나 행동은 아이가 되어버렸고, 살던 집은 철거 시한을 넘긴지 오래입니다. 생계를 떠맡은 엄마는 치킨을 튀기느라, 좋은 대학을 졸업한 형은 이력서만 쓰다가 취업에 실패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치킨 배달하느라 바쁩니다.

 

그래도 이정도 일 때는 그나마 천국이었을 듯해요.

 

온 가족의 목숨이 달린 치킨집의 경영을 책임지고 있던 형이 주식으로 모든 돈을 날려버리고는 가출해버렸고, 이제 동이네 집 빼고는 다 철거 당했고, 아버지는 길을 잃고 헤맵니다.

아, 이 지긋지긋하고 지옥같은 현실을 잊고 싶어 마음은 준 여자 친구(?)는 자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뭐 이런 인생이 있단 말입니까?

어른도 감당하기 어려운 이 시련을 18세 열혈 청소년 길동이 어떻게 이겨낼 수 있겠습니까?

 

눈물, 콧물은 물론이거니와 뱃속을 긁어내다 못해 항문까지 도려 낼 듯한 매운 음식을 먹는 동안 만이라도 잊을 수 있다면 좋겠지요.

캡사이신에, 청양고추보다 100배나 매운, 그래서 사람까지 실신 시킨다는 부트 졸로키아, 매운 맛으로 기네스북에 오른 하바네로 까지.

 

그래요.

인생이란 게, 1단계 매운 맛 너머에 2단계 매운 맛이 기다리고, 2단계 매운 맛 너머엔 3단계 매운 맛이 기다리는 것입디다.

그런데 참 희안한 게 1단계를 넘기고 나니 2단계 매운 인생이 1단계 때보다 덜 어렵더라 뭐 그런 말씀입니다.

 

 

"매운 걸 먹으면 먹을수록 거부할 수가 없었다. 마치 매운맛끼리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어서 이 매운맛이 저 매운맛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계속 매운 것이 당겼다." -186-

 

 

"식구들 생각이 났다. 일곱 살이 되어 버린 아버지, 떠나 버린 형, 지난한 삶의 현장 속으로 다시 뛰어든 엄마, 우리는 이제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겠지만, 그 전보다는 다른 형태의 결속으로 맺어질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우리는 별로 행복해 본 적이 없는 가족이고, 함께 나눈 즐거움이나 행복보다는 함께 나눈 고통이 더 많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단단해진 가족 공동체가 되지 않을까, 하는 확신. 문득 아버지가 보고 싶었다. 이런 적, 처음이다."-187-

 

길동 군도 지금의 시련을 이겨 내고 2단계, 3단계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제 인생에도 지금 빨간불 켜져있는데.....

매운 맛엔 젬병인 저도 오늘 부트 졸로키아나 하바네로 까지는 어렵고, 대신 빨간 고추장에 청양고추 팍 찍어서 제대로 된 매운 맛을 느껴 볼까요?

그럼 가슴이 뻥 뚫릴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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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노예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9
미셸 오스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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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기를 꿈꾸며 갈망했던 아버지가 영웅이 아니었듯이, 필립 당신 역시 영웅도 그렇다고 평범한 소년도 청년도 뭣도 아닌 그저 찌질한 잉여인간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오."

 

 

- 우리 아버지가 그토록 오랫동안 내게 낯선 존재였다는 사실. 그가 나를 먹여살리다가 저버린 사실. 내가 오직 그의 존재를 꿈꾸고 그를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는 사실. 내가 그를 보는 순간에도 완전한 수수께끼로 내 가슴속에 머무르는 파산되어 수멸한 그 아버지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버지의 옛 친구 딸인 폴라 로첸 그리고 그 옛 친구와의 그러한 만남이란? 나는 우연한 만남의 존재가 될 것인가? 상황의 노리개가 될 것인가? 나는 그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다. 아니면 감히 대답할 용기가 없든가. 아는 이러한 사실을 고백한다.- 231 

 

 

혼자서는 아버지가 물려준 회사 운영도,  여행조차도 할 수 없는 우유부단하고 심약한 그에게 영웅이기를 갈망했던 아버지가 사실은 돈 많고 병든 변태 노인네라는 진실을,

"저 사람이 샤를르 에바리스트 아르쉐! 바로 나의 아버지!"

란 진실을 병적으로 심약한 정신의 소유자인 필립은 그저 덤덤한 심정으로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이 어둠 속을 나는 혼자 걷고 있다. 그렇게도 사랑스러웠던 도시는 이제 더는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돌과 강철로 된 도시는 은밀히 내통하는 적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심장이 뛴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 또한 더는 내가 아니며 (과연 나는 누구였던가?) 내가 당신 혹은 너라고 부르는 다른 그 누구다.-359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었으며 먹여살리기는 했으나 단 한 번도 사랑 받아본 기억이 없는 필립이 갈망했던 아버지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독일에 대항해 영웅적인 활약을 한 레지스탕스, 타고난 천재적 기질을 가진 성공한 점잖은 사업가, 사랑하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숨어 살 수 밖에 없는 유대인 학살의 편에 섰던 정치가.

 

우리는 진실이란 것이 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이 추할 때도 많다.

아주 많다.

우리는 희망의 결말이 늘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결말이 절망일 때도 많다.

아주 많다.

 

진실이 추하다고, 그 희망의 결말이 절망으로 끝났다고 해서 외면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필립의 아버지처럼 일생을 거대한 거짓 연극의 셋트장에 갇혀서 말이다.

 

-희망을 가지지 않는 인간은 이미 존재가 아니며 또한 용납될 수없는 존재다. 희망은 존재의 심층 깊숙한 곳에 박혀 있다. 희망이라는 내밀한 존재는 한 순간의 환상을 품게 만들고 그러고 난 후에는 분리되어 잘게 부수어져 결국 파괴되고 만다. 거기에는 목적이 없다. 어떤 희망을 경멸하게 되면 너 자신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너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래, 아직 넌 그런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 -371

 

절망하게 되더라고 우리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 아닌가?

인간은 희망을 버리는 순간 존재의 이유도 잃고 말 것이다.

 

필립이 자기 스스로를 가둔 미궁에서 빠져 나오길 희망한다.

 

필립, 삶이란 게 꿈은 아닙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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