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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지구를 죽였는가
클라이브 해밀턴 지음, 홍상현 옮김 / 이책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째깍째깍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카운트다운 끝에 폭발의 싯점에 도달했다.
10초도 남지 않은 시간.
이때, 폭탄을 해체하는 전문가가 혹은 비전문가이나 용감한 한 시민이 빨간선과 파란선을 두고 어느 선을 자를 것인가 갈등하고, 시간은 5초, 4초를 넘긴다. 떨리는 손으로 빨간선을 잘랐다. 1초를 남긴 타이머는 멈추고, 시한폭탄은 폭발의 위기를 넘겨 인류는 구원 받았다.
우리가 본 수 많은 영화는 이렇게 끝이 났다.
지구의 환경 시계도 이렇게 폭발점인 '0'을 향해 달리다 못해 이제 겨우 몇 초를 남겨뒀건만, 우리는 '인류가 직면한 최대 위기' 지구의 환경 종말에 이렇게도 무덤덤 할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 영웅이 나타나서 타이머를 멈추게 해줄것이란 착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영화나 소설을 너무 많이 봐온 탓이다.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다고 많은 다큐멘터리가 방영되었지만, 오만한 인간들은 빙하가 녹으면 그저 북극에 살고있는 북극곰들이 옮겨 다닐 얼음 덩어리가 없어서 안타깝다 정도의 싸구려 동정심만을 가질 정도로 무지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구의 온도가 2도만 올라가도 그린란드의 빙하대륙이 녹아 내리고 전 세계의 해수면은 약 7미터 상승하게 되며 이는 아파트 3층 높이에 해당한다고 한다.
내가 가끔 환경문제를 다루는 텔레비젼 프로그램을 보다 아이들에게 위와 같은 말을 하면 '그럼 겨울이 따뜻해서 좋겠어요, 미운 일본이 물에 잠기니까 통쾌해요, 높은 곳으로 이사하면 되겠네요, 나랑은 상관없어요, 어짜피 내가 죽은 후에 일어날 일인데 괜찮아요....' 꼭 꿀밤을 부르는 대답을 한다.
혹시 우리도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인식의 수준이 딱 우리 아이들 수준이지 않은가?
나 역시 이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음을 반성한다.
북극의 얼음이 녹으면 해수면이 상승해서 홍수나 쓰나미가 자주 나겠구나, 쓰나미보다 후쿠시마 원전이 더 무서운데, 앞으로 지구가 더 더워진다해도 당장 오늘밤 열대야를 피할 에어콘이 더 필요해, 올 겨울도 많이 춥다니 석유를 더 많이 쟁여놔야겠구나, 나 말고 똑똑한 사람들이 해결하겠지, 설마 그렇게까지 될라고....
나는 얼마나 바보인가.
지구에 닥칠 환경재앙이란건 나의 다음다음 세대쯤에나 생길 일이라고 안심하고 있었으니.
10, 20년 안에 북극의 얼음이 모두 녹아 없어지게 되면 빙하 아래 묻혀있던 메탄 가스들이 대기로 유입되고, 그동안 쌓여왔던 이산화 탄소들과 함께 얼음이 사라지는 비극보다 더 끔찍한 셀린 후버의 표현을 빌자면 '우리는 토스트가 될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났을 땐 체르노빌과 같은 핵발전소의 방사능이 인류를 멸망 시킬 것이라 생각했더니 가만 앉아서 녹아내리는 지구 때문에 타 죽게 생겼다. 캥거루의 나라 호주는 지금도 너무 뜨거워서 해마다 산불로 대륙이 불타고 있는데 여기서 더 뜨거워진다니.
2도, 4도가 아니라 6도 더워지는 세상은 상상불가다.
'누가 지구를 죽였는가'를 읽으면서 나는 무서워서 잠을 들 수가 없다.
왜 진즉 이 책을 읽지 못했던 것일까?
그랬더라면 아이를 셋씩이나 낳지는 않았을텐데.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해야한단 말인가?
지구를 구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은 기후변화에 관심이 없다.
지구온난화의 최대 주범인 에너지 재벌들과 자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후원을 받는 정치가들도 절대 지구를 구하러 나서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대로 타죽도록 기다려야만 하는 것일까?
'지구를 누가 죽였는가' 이 책에선 지구의 기후 시계를 되돌릴 수 없다고 한다.
탐욕의 자본가들이 지금 당장 욕심을 버리더라도 말이다.
지구의 시계를 반대로 돌려줄 슈퍼맨은 없다.
시한폭탄을 해체할 전문가도 없고, 어리버리한 주인공도 없다.
대신 용감한 시민은 있지 않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지구의 덜 나쁜 미래는 용감한 시민들 만이 구할 수 있다는 답을 얻었다.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으시라.
절대 혼자서만 읽고 책장에 꽂아만 두는 바보짓은 하지 마시라.
나와 우리 아이들의 생명이 달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