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노예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09
미셸 오스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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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이기를 꿈꾸며 갈망했던 아버지가 영웅이 아니었듯이, 필립 당신 역시 영웅도 그렇다고 평범한 소년도 청년도 뭣도 아닌 그저 찌질한 잉여인간 이하도 이상도 아니라오."

 

 

- 우리 아버지가 그토록 오랫동안 내게 낯선 존재였다는 사실. 그가 나를 먹여살리다가 저버린 사실. 내가 오직 그의 존재를 꿈꾸고 그를 생각밖에 할 수 없었다는 사실. 내가 그를 보는 순간에도 완전한 수수께끼로 내 가슴속에 머무르는 파산되어 수멸한 그 아버지란 도대체 무엇인가? 아버지의 옛 친구 딸인 폴라 로첸 그리고 그 옛 친구와의 그러한 만남이란? 나는 우연한 만남의 존재가 될 것인가? 상황의 노리개가 될 것인가? 나는 그러한 질문에 대답할 수가 없다. 아니면 감히 대답할 용기가 없든가. 아는 이러한 사실을 고백한다.- 231 

 

 

혼자서는 아버지가 물려준 회사 운영도,  여행조차도 할 수 없는 우유부단하고 심약한 그에게 영웅이기를 갈망했던 아버지가 사실은 돈 많고 병든 변태 노인네라는 진실을,

"저 사람이 샤를르 에바리스트 아르쉐! 바로 나의 아버지!"

란 진실을 병적으로 심약한 정신의 소유자인 필립은 그저 덤덤한 심정으로 받아 들일 수 있을까?

 

-이 어둠 속을 나는 혼자 걷고 있다. 그렇게도 사랑스러웠던 도시는 이제 더는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돌과 강철로 된 도시는 은밀히 내통하는 적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심장이 뛴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나 또한 더는 내가 아니며 (과연 나는 누구였던가?) 내가 당신 혹은 너라고 부르는 다른 그 누구다.-359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었으며 먹여살리기는 했으나 단 한 번도 사랑 받아본 기억이 없는 필립이 갈망했던 아버지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독일에 대항해 영웅적인 활약을 한 레지스탕스, 타고난 천재적 기질을 가진 성공한 점잖은 사업가, 사랑하는 아들을 그리워하며 숨어 살 수 밖에 없는 유대인 학살의 편에 섰던 정치가.

 

우리는 진실이란 것이 늘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이 추할 때도 많다.

아주 많다.

우리는 희망의 결말이 늘 아름다울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결말이 절망일 때도 많다.

아주 많다.

 

진실이 추하다고, 그 희망의 결말이 절망으로 끝났다고 해서 외면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필립의 아버지처럼 일생을 거대한 거짓 연극의 셋트장에 갇혀서 말이다.

 

-희망을 가지지 않는 인간은 이미 존재가 아니며 또한 용납될 수없는 존재다. 희망은 존재의 심층 깊숙한 곳에 박혀 있다. 희망이라는 내밀한 존재는 한 순간의 환상을 품게 만들고 그러고 난 후에는 분리되어 잘게 부수어져 결국 파괴되고 만다. 거기에는 목적이 없다. 어떤 희망을 경멸하게 되면 너 자신을 경멸하게 될 것이다. 그것을 너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래, 아직 넌 그런 상태에 이르지 못했다. -371

 

절망하게 되더라고 우리는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 아닌가?

인간은 희망을 버리는 순간 존재의 이유도 잃고 말 것이다.

 

필립이 자기 스스로를 가둔 미궁에서 빠져 나오길 희망한다.

 

필립, 삶이란 게 꿈은 아닙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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