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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ㅣ 철학하는 아이 1
클레어 A. 니볼라 글.그림, 민유리 옮김 / 이마주 / 201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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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있고, 이웃이 있고, 태어남과 죽음이 있고, 결혼과 마을 축제가 있는 자연이 넉넉한 품으로 품어주는 그곳은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 바로 고향입니다.
지중해.
돌고래들이 뛰어노는,
숨 막힐 듯 푸른 바다 어딘가에 섬 하나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섬에서 나는 과일에서는 천국의 맛이 나는 곳,
섬의 가장 중심에는 골짜기가 하나 있고,
그 안에 오라니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바로 내 아버지가
태어난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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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대도시의 상징 뉴욕에서 아버지를 따라 온 나를 반갑게 맞아주는 나의 친척들.
닭들이 노닐고, 빨래가 널린 마당의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사촌들이 내게 물었습니다.
"미국은 어때?"
"글쎄, 여기가 더 좋은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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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따듯한 자두와 시원한 포도를 땄습니다.
그러고는 텃밭에 있는 낮은 돌담에 않았습니다.
돌담 위에서는 작은 도마뱀들이 탈 듯이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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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사촌들이 몰려왔습니다.
우리는 새들처럼 골목 이곳저곳으로 흩어졌습니다.
샌들이 딸각거리는 소리가 자갈길 위에 울려 퍼졌고, 우리는 좁은 골목을 나는 듯이 달렸습니다.
눈이 부시도록 환한 광장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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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전체를 가로질러,
산자락에 비스듬히 자리 잡은 집들을 따라 달리고 달리니
어느덧 산기슭이었습니다.
여기, 오라니에서는
항상 무슨 일인가가 벌어졌습니다.
우리는 아기가 태어난 이웃집에 찾아가기도 하고,
친척 아저씨가 주인인 가게로 몰려가 아이스크림을 먹기도 했습니다.
어디서 만나든 할머니들은 우리에게 과자와 초콜릿을 권하셨습니다.
낮게 가지를 드리우고 서 있는 나무에서는 언제든 손만 뻗으면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었습니다.
마치 마을 전체가 우리 것인 것만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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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사람 본 적 있어? 없다고?"
우리는 조용히 좁은 계단을 올라갔습니다.
한 여인이 어둠 속에서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한 노인이
명절에 입는 옷을 입고 누워 있었습니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죽음이 주는 낯선 모습이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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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더위를 피해 늦은 밤이면 여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둥글 넓적한 빵을 굽고,
아침이면 화덕에서 부풀어 오른 빵 냄새가 온 집 안과 뜰을 가득채웠습니다.
결혼식 잔치는 삼일 밤낮 동안 계속되었고,
사람들이 먹고 마신 접시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날이 저물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살아있는 고리가 되어 서로의 팔짱을 끼고
둥글게 원을 만들어 춤을 추었습니다.
산 위에는 산들바람이 불었습니다.
나는 이 마을이 품고 있는 온갖 삶의 소리를 떠올렸습니다.
내가 배우고 느끼고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이 그 안에 있었습니다.
아, 정말이지 나는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를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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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도 오라니가 있습니다.
나의 아버지의 오라니와 같은 꽃이 피고,
같은 돌담 위에서 같은 잠자리가 뜨거운 햇살 아래 날개를 쉬고,
닮은 듯 다른 친척들이 호박 잎 쌈을 올린 저녁 밥상을 차려 놓고,
논물 보러 가신 할아버지를 기다리며,
하얀 매운 연기 날리는 모깃불 피워 놓고,
대청 마루에 서서 우리를 부르던 할머니가 계시던 그 오라니 말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오라니가 있습니다.
까만 대문을 열고 들어오면 아름드리 대추 나무 그늘이 시원한 바람으로 맞아주고,
이제 익기 시작한 주먹만한 무화과를 따주시는 할아버지와
녀석이 좋아하는 오이를 먹이려고 옥상 화분에 정성껏 기르시고는 뚝 따주시는 할머니의 물많은 오이,
뜨거운 불 앞에서도 콩죽 같은 땀흘리며 숯불에 고기 구워주는 아빠가 있는 마당,
햇살 아래 뽀송뽀송 말라가는 이불이 널린 빨랫줄 사이를 휘저으며 다닐 수 있는,
남들 눈에는 초라해 보이지만 천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우리 아이만의 오라니 말입니다.
오늘 [아버지의 마을 오라니]를 읽다가 내 영혼이 이렇게 따뜻한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나와 우리의 오라니, 바로 고향이 준 추억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기어이 고향 사진을 꺼내 보아야 할까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