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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빠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이재아 지음 / 담다 / 2025년 5월
평점 :
무너지기 전에는 그 소중함을 미처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일상도 그 가운데 한 가지가 아닐까요?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매일 반복되는 하루하루는 소중함보다는 지루함이 더 크게 느껴지는데요.
특별한 비일상을 맞이하고 나서야 비로소 평범한 일상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평범한 오늘과 특별한 그날이 교차하는 순간, 예상치 못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요.
회사를 다니며 자신의 삶을 꾸리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이재아 작가 또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조금 더 발전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퇴직을 하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던 어느 날, 부모님이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게 됩니다.
그날 이후, 자신의 일을 뒤로하고 부모님을 돌보기 시작했는데요. 호기롭게 시작한 돌봄은 결코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현실의 벽 앞에서 흔들립니다.
"나에게 중심 잡기란, 망연자실한 순간에 무너지는 심장을 부여잡고 속으로 눈물을 한가득 쏟아 낸 뒤 마음을 다잡는 것이었다.
때로는 투정 부리는 부모에게 성을 내지 않는 자기 다스림이었다."(프롤로그)
돌봄에 대한 짙은 통찰과 부모를 향한 그리움 가득한, 이재아 작가의 에세이
≪어느 날 아빠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만나보세요.
"사랑을 받고 살아온 삶은 쉬웠지만, 사랑을 주는 삶은 날마다 벅찼다."(프롤로그)
한 번이라도 돌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속내일 거라 생각합니다. 나를 세상에 내어 놓고 자신의 삶을 다 바쳐 사랑으로 키워준 내 부모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마음.
그렇게 시작되는 돌봄은 업무 능력처럼 시간이 갈수록 익숙해지고 숙련되는 일이 아닙니다. 사람을 돌보는 일, 더군다나 알츠하이머에 걸린 부모를 돌보는 일은 다른 돌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고된 일인데요.
'알츠하이머는 부모가 자식이 되고 자식이 부모가 되는 병"입니다. 작가에게 아버지는 "늘 한쪽 손에 서류 가방을 든 깔끔한 슈트 차림"이었던 "참 자상하고 너무나 든든한 버팀목 같은 존재였던"(p.25) 사람이었습니다.
"아빠는 늘 오가던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여러개의 보따리를 만들어 여기저기 쌓아 놓기도 했고, 밥을 먹기 싫다며 성을 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아이처럼 변했고, 나는 늙고 아픈 부모를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어야 했다."(프롤로그)
"품이 넓고 적당한 온기가 있으며 견고한 울타리, 평생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 살아온 내가 그런 울타리가 된다는 건 감당하기 벅찬 일이었다."(프롤로그)
알츠하이머에 걸린 부모에게 보호자가 되어 그들을 돌보며 혼자 힘으로는 견딜 수 없는 시간을 통해, 작가는 부모로부터 독립한 진짜 어른이 되었다고 밝히는데요. 부모님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시간이기도 합니다.
작가의 아버지는 알츠하이머 와중에 심장 수술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수술 후, 자신을 간병하던 작가에게 자신이 지나온 세월을 들려줬는데요. 팔십을 훌쩍 넘긴 아버지의 칠십 년도 더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펼쳐졌습니다.
"그 어려웠던 시절 누구보다 개구쟁이였던 소년이 장남이라는 무게를 견디기 위해 얼마나 자기 욕구를 억누르며 살았는지, 결혼 후에는 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 가족을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알게 되었다."
지금은 우주로 여행을 떠난 부모님과 함께 보낸 그 마지막 날들이야말로, 부모님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시간이며 인생에서 다시 오지 않을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작가는 이야기하는데요. 그 말이 깊이 와닿아 책을 읽는 내내 뭉클한 마음을 어루만져야 했습니다.
소용돌이치는 세월을 헤쳐 나와 다시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 힘을 내고 있는 작가가 독자들에게 당부하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혼자 힘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도움을 청하라는 것인데요.
"혼가 짊어진 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무거울 때는 타인의 도움을 자발적으로 요청할 줄 도 알아야 했다. 그 과정에서 외나무다리를 건너듯 비틀대면서도, 두 팔을 벌려 중심을 잡듯 홀로 서는 것을 깨우쳤고
동시에 '함께'를 배웠다."(프롤로그)
프롤로그. 이젠 안녕, 내 최고의 아빠, 제1장. 아빠가 알츠하이머라니?, 제2장. 점점 뒤바뀌는 우리, 제3장. 부모의 보호자가 된다는 것, 제4장. 작별 인사 중입니다, 제5장. 이제 혼자 남았다, 에필로그.
"엄마 아빠 딸이어서 행복했습니다", 모두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을 통해 작가 이재아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비단 일개인에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날 아빠가 길을 헤매기 시작했다≫는
"누군가를 돌보는 모든 사람에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은 모든 이에게,
그리고 언젠가 혼자가 될, 우리 모두를 향한
돌봄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자.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우리 사회에 던지는 화두가 될 것입니다.
"집에서 아픈 부모님을 모시는 것은 마음과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픈 부모를 잘 간호하는 것은 효심만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것은 전적으로 가족인 돌봄자의 몫이기는 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회적 토대가 잘 마련되어야 돌보는 사람이 흔들리거나 방황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보호받는 이들을 든든히 지킬 수 있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일이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pp.184~185)
<서포터즈활동으로 담다출판사에서 협찬받은 도서를 직접 읽고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