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역사 :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다
나이절 워버턴 지음, 정미화 옮김 / 소소의책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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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밀접한 학문이라는 철학, 살면서 한 번은 철학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잠깐 살펴본 철학은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의 연속이었고, 뜻을 검색해봐도 의미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아, 역시 철학은 어려운 거로구나 하고 뒤로 미뤄만 뒀었는데...

그러다가 이 책 <철학의 역사>는 입문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라고 해서 읽어보게 됐다.

다른 것도 아니고 철학의 역사라는 지루해 보이는 책을 먼저 읽기로 했냐면, 나는 어떤 분야를 알아갈 때 그 분야의 역사부터 알아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흐름을 읽고, 발전 과정을 아는 것은 해당 분야를 이해하는 데에, 그리고 지식의 얼개를 짜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 책은 철학자 소크라테스부터 피터 싱어까지 약 40명의 철학자를 통해 철학의 역사를 훑어보는데, 일단 책을 읽으면서 입문자에게 잘 맞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한 챕터가 (대부분 한 챕터당 한 철학자에 대해 다룬다) 몇 페이지 되지 않아서 부담감이 없는데 그렇다고 너무 짧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균형을 잘 잡았고,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철학책은 지루할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책을 읽으면서 흥미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저자 나이절 워버턴이 철학자의 삶 그리고 그의 사상의 핵심을 잘 짚어내면서 보다 이해하기 수월하도록 예시를 들어서 설명해줬기 때문에, 그리고 필력도 좋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다.

어렵게만 보이고 이해하기 어려웠던, 한국어의 탈을 쓴 단어들도 저자가 하나하나 설명해주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이 지루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철학자들의 다양한 사상과 여러 생각들을 만나는 건 세상을 여러 각도에서 요리조리 바라보는 것이었고 세상의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방법이었다.

관념론과 유물론이라던가, 악이 있더라도 지금 이 세상은 최선이라고 보는 라이프니츠와 그에 반론을 제기하는 볼테르를 보면서 같은 세상도 이렇게 달리볼 수 있구나 싶어 재미있었다.



행복이나 죽음, 도덕 같은 주제들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이가 방향을 제시하고 고민을 덜어주기도 했다.

행복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있겠지만, 여러 철학자가 행복은 자기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달렸고, 스토아학파 철학자는 또 생각은 우리에게 달렸다고 했다.

이런 관점은 책을 읽기 전에 여러 번 보기도 했고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이기도 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그리고 시간에 대한 세케나의 생각은 나를 뜨끔하게 만들어 기억에 남았다.

이런 부분 때문에 철학은 자기계발에도 도움이 되겠다 싶었다.

(...) 다들 인생이 너무 짧다고 말한다. 할 일은 너무 많고 시간은 너무 없다. 고대 그리스의 의학자 히포크라테스의 말처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죽음을 앞둔 노인들은 종종 인생에서 진정 원했던 것을 이룰 수 있도록 몇 년만 더 살 수 있기를 바란다. 하지만 대개 너무 늦었고, 그들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아쉬워할 뿐이다. (...)


세네카는 이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았다. (...) 그는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가 아니라 우리들 대부분이 시간을 얼마나 헛되이 사용하는가를 문제로 보았다. 역시나 세네카에게도 인간 조건의 피할 수 없는 측면에 대한 우리의 태도가 가장 중요했다. 우리는 인생이 짧다고 화낼 게 아니라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인생을 두고 그러는 것처럼 천 년의 시간도 쉽사리 허비할 거라고 그는 지적했다. (...)


p.49

그 외에도 철학자들이 가진 궁금증과 고민은 우리가 한 번쯤은 생각해본 것들, 예를 들면 기독교 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가 가졌던 의문인 신은 왜 악을 만들었나 하는 것들이었는데, 그에 대해 사유한 끝에 철학자들이 내놓은 자기 나름대로의 답은 고개를 끄덕이게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렇다, 나는 철학은 심리치료법 중 하나 같다는 느낌도 받았다.

여러 철학자들을 통한 철학의 역사를 읽으며 배운 것도 많았지만, 그들의 생각이 공감되기도 하고 위안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왜 철학을 중요하게 여기는지, 철학이 왜 삶과 밀접한 학문이라고 하는지 이 책을 읽으며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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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톰의 정원에서
필리파 피어스 지음, 에디트 그림, 김경희 옮김 / 길벗어린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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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밤중 톰의 정원에서>라는 동명의, 카네기 상을 받은 소설을 그래픽 노블로 재탄생시킨 책이다.

카네기 상 수상작이라고는 하지만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였는데, 책소개를 보고 읽고 싶은 마음이 팍 생겨서 처음으로 그래픽 노블을 읽어보게 되었다.



주인공 톰은 동생 피터가 홍역에 걸려서 옮아서는 안 된다는 이유 때문에 이모와 이모부 집에서 방학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톰도 홍역 잠복기일 수 있기에 밖에 나가서 마음껏 놀지도 못했고, 다세대 주택으로 개조된 건물 알에만 있는 것은 한창 뛰어놀 나이의 톰에게는 너무 지루했다.

그러니 다른 때라면 관심도 주지 않았을, 주택 현관에 고정된 시계가 톰의 관심을 끌 수밖에.

그 시계는 원래는 매 시 정각마다 종이 울려야 하는데, 오래되어서인지 어쩐지 제때 종이 울리지 않고 중구난방이라고 했다.

어느 날 톰이 잠 못 이루는 밤에는 열 세 번 종이 울렸고, 호기심에 시계를 확인하러 내려간 톰이 시계를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실내를 밝게 하기 위해 집 뒤편으로 연결된 문을 열었다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마주하게 된다.

엄청 넓고 푸르고 예쁜 정원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 정원은 밤에만 갈 수 있는 마법 같은 곳이어서 낮에는 뒤편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도 황량하고 좁은 뒤켠만 마주할 수 있었고, 톰은 동생 피터에게만 편지로 그 정원의 존재를 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한다.



그 정원에 여러 번 찾아가면서 알게 된 것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톰을 보거나 듣지 못한다는 것과 톰은 그곳에서는 유령처럼 벽을 지나갈 수도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옷차림을 보아하니 정원은 톰이 사는 시대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톰은 그 정원에서 자신을 보고 들을 수 있는 해티라는 이름의 여자아이를 만나게 된다.

해티가 사는 그곳은 해티 큰어머니 집으로, 고아가 된 해티는 그곳에서 겉돌고 있던 중에 톰을 만난 것이다.

이 둘은 함께 정원에서 뛰놀며 우정을 쌓게 되는데, 문제가 있었다.

정원의 시간 흐름과 톰이 사는 시대의 시간 흐름이 달랐던 것이다.

그래서 톰은 아직 어린아이지만, 해티는 톰보다 먼저 어른이 되어간다.



놀림을 당하더라도 사람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며 다른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 톰과 놀고 있다고 솔직하게 말하던 해티는, 어른이 되어서도 톰을 반가워하며 친구로 생각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지만 다르느 사람 앞에서 톰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기도 했다.

시간 흐름의 차이로 달라진 해티와 톰을 보면서는 어렸을 때와 달라진 지금의 내가 비쳐 슬픈 기분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톰의 동생 피터가 홍역이 나아서 톰은 집에 돌아가야 하게 된다.

톰은 정원과 해티 때문에 이모의 집에서 계속 머물고 싶었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날을 뒤로 좀 미룰 수 있었을 뿐 계속 이모 집에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해티가 있는 정원과 톰이 사는 시대의 시간 흐름이 다르다는 것에 착안해서 톰은 마법의 정원에 오래도록 머물 계획을 한다.

그리고 톰이 친 작은 사고에 집주인 할머니인 바살러뮤 부인은 톰을 직접 보기를 원하는데, 왜일까?


작은 반전과 이야기의 흐름이 읽는 사람을 긴장하게도 했다가, 슬프게도 했다가,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결말을 알고 봐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책소개를 읽으며 결말을 미리 알게 되었고, 심지어 결말을 알지 못했다면 이 책을 지나쳤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한 마디로 말하자면 '시간을 뛰어넘은 우정'이라 할 수 있는데, 이건 마법의 정원과 톰이 사는 시대의 시간차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


앉은 자리에서 책을 다 보고 나는 왜 어렸을 때 이 이야기를 만나지 못했을까 하며 지금이라도 이 이야기를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 1959년에 카네기 상을 받았으니 쓰인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른 이야기였음에도 여전히 재미있게 볼 수 있고, 원작이 아동 문학 고전이지만 어른인 내가 보기에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귀여운 해티와 톰 그리고 넓은 정원이 구불구불한 선을 가진 그림체로 그려져 매력적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그래픽 노블은 그 자체로도 예쁜 책이고, 원작 소설까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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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프란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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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미언 피즈 체니, 그는 이 책의 저자 파스칼 키냐르의 말에 따르면 그가 살던 사제관 정원의 새들이 지저귀는 노래를 모두 기보한 최초의 작곡가라고 한다.

자연의 소리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소리를 음악으로 여기는 그의 모습은 저자가 왜 시미언 피즈 체니라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살아있는 생명체인 새들의 소리뿐만 아니라 무생물인 사물들, 걸어놓은 옷 사이로 들리는 바람 소리나 양동이로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도 소리에서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포용력, 그리고 그것을 글로 옮기는 저자의 표현력이 악보와 그 악보를 연주하는 악기와 같은 책이었다.



"Even inanimate things have their music. Listen to the water dropping from a faucet into a bucket partially filled 생명이 없는 사물에게도 나름의 음악이 있다. 수도꼭지에서 반쯤 찬 양동이 속으로 똑똑 떨어지는 물소리에 귀 기울여 보시라."


p.13

또한 시미언 피즈 체니의 아내 에바에 대한 사랑과 절절한 그리움은 이 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어느 페이지를 펼쳐도 아내를 그리워하는 그를 느낄 수 있었다.

그가 너무도 사랑하는 아내 에바는 딸 로즈먼드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는 아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딸을 충분히 사랑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자라나면서 아내를 닮아가는 딸을 보며 괴로움에 딸에게 집을 떠나기를 요청하는 장면은 나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무조건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특히 자녀가 잘못한 일이 아닌 것을 이유로 사랑하지 못하겠다는 그의 고백은 다름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

로즈먼드가 안타까웠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런 모진 말을 들었지만 로즈먼드도 아버지를 이해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어떤 이유에서건 아버지를 사랑해서일까, 그녀는 그 일로 아버지와 인연을 끊거나 하지도 않았고, 노래와 첼로를 가르치고 받은 레슨비를 모아 아버지의 악보를 자비로 출판하기도 했다.

그게 바로 드보르자크가 휴가 때 읽었다는 시미언 피즈 체니의 유고집 <야생 숲의 노트 Wood Notes Wild>이다.



나는 책을 펼치기 전에, 아니 서문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를 소설로, 아니면 에세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장에 들어서자마자 내 앞에 있는 것은 무대였다.

그 무대에서 조용히 진행되는 극이 바로 파스칼 키냐르가 시미언 피즈 체니에 대해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파스칼 키냐르가 쓴 희곡은 시나 노래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차마 떠날 수 없어 벤치에 앉아 있는 거야.

내 몸이 어둠에 휩싸일 때까지.

슬픈 가운데서도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

나도, 소위 말하는 마법에 걸렸나 봐,

아내가 사랑했던 이 정원에서,

내가 사랑하는 이 정원에서,

그리고 남아 있는 노래 안에서

나는 행복해.


그녀의 정원에서 내가 정말로 행복해지는 이유는 심지어 이렇게 말할 수 있어.

아내가 사랑했던 정원에 있으면 나 자신이 그녀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살아 있는

그녀의 내면에

살아 있는 나.


p.29-30


마지막으로 이 책의 디자인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알게 된, 파스칼 키냐르의 다른 책인 <음악 혐오>는 인상적인 제목이 눈길을 끌고 책 디자인이 시선을 빼앗았고, 도서관에서 책 실물을 만져봤을 때는 손에 착 붙는책을 손에서 쉽사리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같은 출판사에서 마치 시리즈처럼 통일성 있는 디자인으로 출간된 이 책,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역시 적당한 크기의 하드커버, 손끝에 느껴지는 천을 씌운 듯한 표지의 거친 감촉, 그 위에 꾹꾹 눌러 새겨진 글자가 무척 매력적인 책이었다.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가 프란츠 Franz 출판사에서 <음악 혐오>에 이어 출판한 파스칼 키냐르의 두 번째 책으로 알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런 디자인으로 책이 출간된다면 모아서 소장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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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칠 짐은 없습니다 - 스무 가지 물건만 가지고 떠난 미니멀 여행기
주오일여행자 지음 / 꿈의지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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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한 지 좀 된 것 같은데, 아직도 꾸준하게 미니멀 라이프 관련 글이 올라오고 책이 출간되는 걸 보면 이 유행은 앞으로 더 갈 것 같다.

나는 해외여행하면 캐리어와 거대한 배낭이 함께 떠올랐다.

공간이 부족하다며 더 큰 캐리어를 장만해야 하나 하는 고민글이 올라오고, 사람 몸도 들어갈 만한 크기의 긴 배낭을 메고 세계를 여행하는 배낭여행에 대한 글과 영상도 자주 보인다.

그렇게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자유로워 보이기도 했지만, 큰 짐을 낑낑대며 끌고 메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로는 그게 족쇄 같아 보이기도 했다.



제목을 보면 예상할 수 있듯, 이 책은 미니멀리즘을 여행에 적용한 미니멀 여행기를 담고 있다.

월세와 카드값 등이 족쇄가 되어 돈을 버는 삶을 살던 저자는 책 속에서 K라고 불리는 남자친구와 여행을 떠나는데, 처음에는 이 둘도 많은 사람들처럼 큰 배낭여행용 배낭을 짊어지고 여행을 떠났다.

그러나 여행 중 만난 다른 여행자의, 짐으로 가득 찬 배낭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저자와 여행 동지 K의 최대 문제는 짐으로 가득 찬 배낭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게 짐들을 돌아본 그들은 배낭 안에서 여행 중 한 번도 입지 않은 옷가지들과 심지어 한 번도 켜지 않은 블루투스 스피커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어이없어했다.


나는 여행을 할 때 (여행을 안 간지는 오래되었지만, 어쨌든 오래전의 여행을 돌아보면) 짐을 바리바리 싸 가는 편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릴 때에는 여러 가지를 챙겼지만 여행지에서는 결국 대부분 꺼내지도 않는다는 것을 비교적 일찍 알아챘고, 그 이후로는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면 잘 챙기지 않게 되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렇게 짐을 줄이니 얼마나 편하던지!

저자는 그런 편한 느낌은 물론이고, 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는 여행을 했다.



본격적인 미니멀 여행을 하기 전, 인터넷 시대에 으레 그렇듯 저자는 검색을 통해 미니멀 여행에 대해 찾아보고 짐을 꾸리는 팁을 얻고자 했다.

이전에도 세계적으로 미니멀한 여행 사례는 있었다.

가벼운 가방 하나 들고 떠나는 여행을 넘어,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의 짐만 챙기거나 (스마트폰과 충전기는 빠뜨릴 수 없는 짐이 됐다) 심지어 입은 옷 외에 짐 하나 없이 유럽 여행을 한 커플도 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만의 여행 스타일에 맞춰 최소한의 짐을 꾸렸다는 것 외에는 명확한 해답을 얻을 수 없었지만, 저자와 K는 대체할 수 있는 물건들을 빼는 것에 집중했다.

(...)

 "그 프로젝트도 그렇고 우리의 배낭 없는 여행도 그렇고, 각자의 인생에서 스스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기회인 것 같아. 결국 자신이 선택하는 물건이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이자, 삶의 우선순위이니까. 여행하기 위해 혹은 물건을 정리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것 중 최소한만 남기는 이 과정이 결국은 우리 삶의 가치를 재구성하는 일이 아닐까?"


p.37-38

이렇게 미니멀한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여행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저자의 미니멀리즘에 대한 생각에 공감이 되어 고개를 끄덕였다.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한 뒤로 이를 잘못 받아들여 무조건 버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같은 물건을 또 사는 사람들과 버린 물건의 빈자리를 다른 물건으로 채우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다.

나는 미니멀 라이프의 핵심은 버리는 게 아니라 소비하는 방식을 바꾸는 거라고 생각했고, 얼마 전부터 더욱 심각하게 다가온 쓰레기와 환경 문제 때문에 무조건 버리는 행위를 좋게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저자의 글을 만나니 반가웠고,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했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일회용처럼 쓰고 버리는 물건들이 이 세게를 망치고 있다는 걸. 자주 샀다가 자주 버리는 싸고 질 나쁜 물건들이 농약처럼 이 행성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걸.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엄청난 양의 쓰레기, 유해한 화학 물질과 강으로 흘러드는 폐수까지, 모두.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미니멀리즘은 무조건 버리기만 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나쁘게 만들어지고 빠르게 버려지는 물건을 구매하지 않고, 가치가 담긴 물건을 조심스레 구매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던 미니멀리즘이다. 어쩌면 필요할 때에 필요한 만큼의 물건을 사고, 옳은 가치를 담은 물건을 사는 데 집중했더라면 소유한 물건들을 정리해 나가는 미니멀리즘은 애초에 필요치 않았을지도 모른다.


p.46

그저 또 다른 유행에 동참하는 기분으로 미니멀해지고 싶은 게 아니라면, 미니멀리즘은 소비를 통해 자신이 무엇에 가치를 두는지를 증명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무엇을 사지 않는 데만 몰두하지 않고 무엇을 살 것이가에 대해 고민하며, 무조건 버리는 유행에 현혹되기보다 그 일이 환경과 내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관찰해야 한다.


p.46-47

각자 스무 가지 남짓의 적은 짐이 든 가방 하나씩만 들고 떠난 저자와 K의 여행은 특히 이동할 때 엄청난 장점이 되었다.

기다려서 수화물을 부치고 찾는 일도 생락되고, 짐을 들고 다녀도 부담이 되지 않으니 숙소에 들를 필요가 없어서 시간도 체력도 절약이 되었다.

이들의 여행을 읽고 있는 내가 다 가볍고 편했다.

공항 직원이 수화물이 없는지 확인할 때, "네, 부칠 짐은 없습니다."라는 대답이 낯설고도 시원했다.


그러나 미니멀 여행에는 불편함 점도 있었다.

여러 나라를 다녔기 때문에, 영상 15도와 영하 15도의 계절을 넘나드는 여행을 할 때 드러났는데, 추워도 껴입을 옷이 한정적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혼자 살지 않는 곳이고 다정한 사람들이 곳곳에 있기에, 두툼한 겨울 외투와 모자, 우산같이 필요한 것들을 빌려 쓰며 부족한 부분을 메꿔 여행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유럽 사람들처럼 우산을 안 쓰고 다니기도 했지만)

저자가 만난 이런 사람들과 이런 경험 때문에 책을 읽는 나도 세상의 온기를 느꼈다.


이 책은 가벼운 가방처럼 가볍고 편한 내용만 담지 않았다.

한 예로 이스라엘 여행에서는 보이는 것만으르 보지 않고, 다들 행복하고 풍족해 보이는 화면 너머를 본다.

수영장을 바라보며 주변국들의 수자원까지 독점하는 이스라엘과 주변 지역의 현실을 생각한 것이다.




저자는 여행지의 민낯과 깨달음을 솔직하게 글에 적었다.

그중 하나가 인종차별을 마주한 일화로, 저자는 인종차별을 당해보고 나서야 지금까지 여행지에서 자신이 편견을 가지고 본 사람들의 입장에 서볼 수 있게 된다.

이 부분은 이 책에서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이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는 요즘, 특히 읽어보고 생각해볼 만한 부분이다.

(...) 우리가 개똥처럼 피하려던 사람들의 고단하고 남루한 삶은 우리에게 어떤 그림자도 드리우지 않는다. 우리를 좀먹는 그림자는, 가장 평범한 얼굴로 우리 사이에 피어나는 증오의 그림자이다.


p.113

저자는 가벼운 짐으로 자유로운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경험했고, 자신을 돌아보고 사유하며 배운다.

저자가 '여행은 가볍게, 영혼은 무겁게'를 추구해서인지, 글은 재미있고 무겁지 않게 잘 읽히면서도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이 여행 경험을 통한 저자의 사유와 깨달음은 여행에서뿐만 아니라 책을 읽는 우리의 삶에도 보탬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 우리는 다르다는 이유로 그렇게 매번 소수자가 된다. 아주 평범한 일상의 순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그래서 나폴리 공원과 바리 기차역의 흑인 이민자들, 텔아비브 주변의 무슬림들, 그 누구도 내가 아니지 않다. 그것이 모든 소수자, 그들이 누구든, 무엇을 믿고 누구를 사랑하던,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그 모든 이들이 바로 나이기 때문에.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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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하드커버 에디션)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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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그린의 최근작인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르르 인상 깊게 읽은 후 존 그린의 유명작인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읽었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영화 <안녕, 헤이즐>의 원작 소설인데, 이 영화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이전에는 원작 소설을 읽어보지 않았었다.

그렇듯 나는 영화를 본 후에는 영화 원작 책은 거의 읽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은 후에 생각이 바뀌었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많은 사랑을 받아온 결과 이번에 새 옷을 입게 되었는데, 반짝이는 일러스트가 그려진 튼튼한 하드커버 에디션을 손에 들고 이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다.

나는 한 번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경우는 무척 손에 꼽지만 이 작품은 몇 번이고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다.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암에 걸린 십대 남녀의 이야기인데, 주인공 헤이즐은 항상 산소통을 가지고 다녀야 하고 거스(어거스터스)는 암 때문에 다리 하나를 자르고 의족을 해야 했다.

이 책도 이전에 읽었던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와 마찬가지로 소설 안에 녹아들어가 있는 작가의 척학과 메시지가 인상 깊었다.

같은 작가의 책이어서 그런지 <거북이는 언제나 거기에 있어>와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는 비슷한 느낌을 주는데, 그래도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가 더 좋았다.

존 그린은 제목을 참 잘 짓는 것 같다.

소설을 읽고 왜 책의 제목이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인지를 알게 되니 이처럼 시적이고 의미 있으며 잘 어울리는 제목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셰익스피어가 카시우스의 편지에 쓴 "친애하는 브루투스여, 잘못은 우리 별에 있는 것이 아닐세. / 우리 자신에게 있다네."라는 말은 틀려도 이보다 더 틀릴 수 없는 말입니다. 로마의 귀족이라면 (혹은 셰익스피어라면!) 쉽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지만, 우리의 별에는 잘못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p.120

아래는 헤이즐과 거스가 만날 첫날에 대화를 나누는 부분인데, '비극적 결함', '암적 이득' 같은 단어 하며 '담배를 물고 있지만 불을 붙이지 않는 것'을 '죽음을 행할 수 있는 힘을 주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는 시각이 독특하며 재미있지 않은가?





특히 어거스터스 워터스(거스)라는 캐릭터는 독보적이라고 생각했다.

거스는 상징을 좋아하고 책의 구절을 인용할 줄 알고 웃는 모습이 매력적이고 배려심도 겸비했는데 재미까지 있는 그런 남자아이로 완벽해 보였는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거스의 인간적인 면모를 만나게 되면서 더 마음을 끌었다.

(영화에서 거스 역을 맡은 배우 안셀 엘고트는 거스 그 자체가 아닐까 싶을 만큼 거스와 잘 어울린다)

헤이즐은 책을 좋아하는 시니컬한 캐릭터인데, 헤이즐이 망각이 두렵하는 거스에게 처음 한 말은 거스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도 큰 인상을 주었다.

거스는 헤이즐의 이런 말을 듣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데, 나는 어떨까?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야. 우리 모두 죽는 날이. 모두 다. 인류가 죄다 사라져서 누가 이 땅에 존재했다는 사실도, 우리 인류가 여기서 뭘 했다는 것도 기억하라 사람이 전혀 없게 되는 날이 올 거라고. 너희들은 고사하고 아리스토텔레스나 클레오파트라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어지는 거야. 우리가 하고 만들고 쓰고 생각하고 발견했던 모든 것들이 잊히고 이 모든 것들이 무(無)로 돌아가게 되는 거야."


p.17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상의 책 <장엄한 고뇌>를 빠뜨릴 수 없는데, <장엄한 고뇌>는 헤이즐의 인생 책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요한 요소다.

책을 읽어가면 왜 헤이즐이 이 책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있는데, 작가는 책 속의 책 또한 기발하게 결말을 맺었다.

헤이즐과 거스는 서로 좋아하는 책을 교환해서 읽고 대화를 하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지고 있는 로망이지 않은가.

두른 운둔한 <장엄한 고뇌> 작가를 만나러 직접 암스테르담에 여행까지 간다.


다른 사람보다 죽음에 더 가까운 이들,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본 이들이 나오기에 책을 읽는 나 역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죽음을 대하는 헤이즐과 거스의 차이를 보며 나는 거스에게 좀 더 공감했다.


이 소설은 단지 재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담고 있어서 더 좋았다.

헤이즐의 독백, 헤이즐과 거스의 말에 얼마나 많은 의미가 담겨있는지, 얼마나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지, 얼마나 마음을 울리는지...


영화를 먼저 봤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영화의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르기도 하고, 영화와 비교가 되기도 했다.

소설 속의 장면을 영화에서 어떻게 구현해냈는지, 그리고 무엇을 바꾸었는지 생각하며 읽는 것도 재미있었다.

역시 소설이 영화에서는 알 수 없었던 것들, 그리고 볼 수 없었던 것들을 많이 담고 있었기 때문에 <안녕, 헤이즐>을 본 사람도 <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를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 글은 책을 읽고 시간이 좀 지난 뒤에 쓰고 있다.

책을 읽은 직후에는 밑줄을 그은 부분이 많은 것만큼 너무 할 말이 많아서 뒤죽박죽이었기 때문에, 좀 가라앉은 다음에 블로그에 서평을 올려야지 한 것이다.

그 때문에 서평이 조금 싱거운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인상적이고 좋은 책이었다는 뜻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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