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프랑스 책벌레
이주영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도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더 관심이 가고 영화 드라마 소설을 볼 때도 주인공보다 눈길이 갈 정도로 나는 책에 푹 빠진 애서가, 일명 책벌레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는 오지랖 넓은 책벌레 프랑스인 남편을 둔 한국인 아내가 유쾌한 문체로 적어내려간 남편 관찰 보고서이자 애환기여서 책벌레 캐릭터를 내내 만날 수 있는 셈이었고, 그래서 (실제로 같이 사는 사람은 복장이 터지겠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배우자가 울분에 차 책까지 출간하게 한 책벌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는데, 과연 저자의 남편 에두아르 씨는 웬만한 애서가는 명함도 내밀 수 없을 책벌레였고 한국 할아버지 할머니도 저리가라 할 정도로 오지랖 넓은 프랑스인이었다.
예로부터 책을 권하는 세상에서 살아온 우리는 책에 대한 사랑이 조금 과하더라도 그게 문제가 될 거라고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에두아르 씨의 경우는 책에 대한 사랑이 ‘조금’ 과한 게 아니라 거의 집착이라고 볼 수 있는 데다 그 때문에 온갖 사고를 치게 되는 것이다.
에두아르 씨는 항상 책을 손에 들고 다니며 읽느라 시계나 최신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해야할 일을 제때 마치지 못하며, 주변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가방에 책 한 권쯤 넣어 다니는 거야 큰 불편을 초래하지는 않지만 여행을 갈 때에도 책만 넣은 가방이 두 개나 되는 건 동행한 사람도 불편하게 만든다.

게다가 에두아르 씨는 오지랖이 넓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동네 약국이나 정육점이나 대중교통 등 온갖 장소에서 말다툼을 하는데, 말다툼을 한 당사자 에두아르 씨보다 그 때문에 더 먼 가게를 이용해야 하고 말다툼 현장에서 함께 있는 저자가 더 난감해진다.
물론 말다툼은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시작되고 에두아르 씨는 옳은 말을 한다지만 잘 넘어갈 수 있는 일을 넘어가지 않는 건 성가신 일이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에두아르 씨를 나름대로 분석하는데, 이런 오지랖은 에두아르 씨가 전기(傳記)를 많이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한다.
전기문 속 위인들은 어떻게 보면 오지랖이 넓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쌓인 책에 둘러싸여, 책 때문에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하는 에두아르 씨를 챙기며 정신 없이 살다보면 저자로서는 책이 꼴도 보기 싫을 수 있을 텐데, 에두아르 씨만큼은 아니지만 저자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속 피아노 배틀의 책 버전이라고나 할까, 책 속 구절을 이용해서 저자와 에두아르 씨가 배틀을 하듯 투닥거리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중년의 나이라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책벌레를 넘어서 괴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행동을 하는 에두아르 씨 옆에 있는 저자의 인내심도 대단하지만, 이처럼 저자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점이 투닥거리면서도 에두아르 씨와 계속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중년의 나이라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책벌레를 넘어서 괴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행동을 하는 에두아르 씨 옆에 있는 저자의 인내심도 대단하지만, 이처럼 저자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점이 투닥거리면서도 에두아르 씨와 계속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 (...) 장정이 심하게 손상된 책들은 반투명 포장지로 정성껏 싸여 바닥에 쌓여 있다. 더 이상 책장에 여유가 없으니 바닥에 쌓아 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중 한 권을 펼쳐봤다. 첫 장에 ‘1980년 큰누나 책 훔침’이라는 메모가 보인다. 다른 책을 펼치자 이번엔 ‘아름다움의 절정을 경험하다’라고 쓰여 있다.

빙그레 미소 짓고 말았다. 묘한 아늑함에 휩싸인다. 어릴 적 자주 가던 우리 동네 헌 책방이 떠오른다. (...) 에두아르의 누더기 책이 가득한 서재에서 나는 잠시 추억에 잠긴다. 그의 말대로 낡은 것에는 새것이 갖고있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이 먼지투성이 거지 같은 서재에는 에두아르의 추억이 가득하다. 추억은 이야기를 한다. 집에 추억의 이야기가 있는 방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 싶다.

p.295-296”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을 이렇게 유쾌하게 글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자신은 가지고 싶은 구두를 바로 사지 못하고 세일을 할 때까지 바라만 보는데도 (이건 구두를 떠나보낼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에두아르는 책을 마음껏 살 수 있었고, 에두아르 씨가 책을 읽느라 최신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있었을 때 책 구매 금지령을 내렸다가도 에두아르 씨가 측은해서 책 구매 금지령을 풀어버리고, 가끔씩은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모습에서 사고뭉치라고는 해도 저자가 에두아르 씨를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 책 곳곳에 있는, 저자가 직접 에두아르 씨를 그린 그림에서도 애정이 보였는데, 연필로 무심하게 선을 그은 것 같지만 대상을 꾸준히 지켜봤다는 증거이기도 한 그림은 저자와 닮았다.

지독한 책 사랑을 하는 괴짜 책벌레와 매일을 보내는 저자는 속이 터지겠지만, 에두아르 씨를 책에서만 보는 나는 책을 재미있게 읽어 나가며 에두아르 씨와 저자의 책에 대한 철학이 드러날 때면 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프라인 서점에 대한 에두아르 씨의 말을 읽었을 때나 베스트셀러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읽었을 때를 꼽을 수 있는데, 책 가격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을거의 이용하지 않고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나도 에두아르 씨의 말에 (자주는 아니더라도) 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베스트셀러 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했다.



“너 예전에 <한 달쯤, 파리> 쓸 때 파리에 서점이 많아서 부럽다고 했지? 알아? 파리에 서점이 예전보다 훨씬 줄었다는 거. 사람들이 너처럼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서 그런 거야. 이런 식으로 가다간 지구상에 서점이 하나도 안 남게 생겼다고. 지구에서 서점을 계속 보고 싶다면 서점에서 책을 사야지!

p.35-36”



저자에 이입해서 분통이 터질 때도 있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애서가이고 유튜브에서 영화와 드라마 속 책벌레가 등장하는 장면을 찾아보거나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를 즐겁게 읽어나갔다.
더해 여러 책에서 발췌한 글과 (책 끄트머리에 부록처럼 들어간) 에두아르 씨가 소개하는 그의 인생책 이야기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요소가 있는 책이다.
에두아르 씨는 프랑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교육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
케빈 홉스.데이비드 웨스트 지음, 티보 에렘 그림, 김효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무가 인내의 시간을 거쳐 피아노로 다시 태어나서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에 닿을 때까지의 과정이 담긴 책을 읽으며 나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여정에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양의 나무가 필요하고, 더 어마어마한 양의 나무가 다양한 물건을 만드는 데 소비된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기도 했다.
도심 빌딩숲에 살더라도 길에 늘어선 가로수를 몇 번이나 지나치게 되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앉아있는 의자와 손에 든 책 그리고 매일 밤 잠이 들고 일어나는 침대도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말이다.
더 적다가는 끝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우리 주변은 온통 나무이고, 나무를 제외한 생활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인데 지금까지는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을 당연하게 여기고 나무를 그냥 지나쳤다니 너무 무심했던게 아닌가.
그래서 나무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차에 세밀화와 함께 다양한 나무의 정보가 담긴 멋진 나무 도감인 <나무 이야기>를 만났다.

큼직한 크기에다 내가 선호하는 패브릭 소재의 양장본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서 손으로 책 표지를 몇 번이고 쓰다듬은 후에야 책을 펼쳤는데, 책장을 넘길 때마다 보이는, 당장이라도 이파리가 흔들릴 것 같은 아름다운 나무 세밀화는 나무가 한 그루씩 그려졌는데도 울창한 숲을 떠오르게 해서, 책이 나를 이 나무들이 있는 숲으로 데려간 것만 같았다.

본문은 나무 세밀화가 그려진 면과 그 나무에 대한 설명과 이야기가 적힌 글이 있는 면, 이렇게 나무 한 그루 당 2페이지로 구성되었다.
세밀화 페이지에는 세밀화와 함께 나무의 다른 명칭, 원산지, 기후와 서식지, 수명, 성장속도, 최대 높이가 정리되어 있는데, 해당 나무의 잎이나 꽃 또는 열매가 따로 그려져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꽃이 피지 않고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가 아닌이상) 셋 중 하나가 아니라 잎과 꽃과 열매 모두가 그려져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거라는 욕심이 생긴다.
나무에 대한 설명과 이야기는 한 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으로 장황하지 않아서 지루하지 않게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책에서 가장 먼저 만난 나무는 ‘은행나무’다.
은행나무. 내 주변에서 흔하게 보여서 특별할 거 없어 보였던 나무.
구운 은행은 맛있지만 바닥에 떨어진 열매에서는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환영받지는 못하는 나무.
나도 인도에 떨어져있는 은행나무 열매를 밟고 그대로 집으로 온 적이 있는데, 신발장에서 나는 냄새에 똥이라도 밟고 들어온 줄 알았었다.

이런 내 안의 은행나무 이미지가 <나무 이야기>를 읽고 달라졌다.
은행나무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무려 2억 년이나 유지해서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데,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물이 진화하며 모습을 바꾸는 동안 은행나무는 한결 같았던 것이다.
타임머신이라도 발명되어 우리가 어느 날 과거 공룡이 살던 시대에 뚝 떨어지더라도 은행나무 만큼은 현대와 같은 것을 볼 수 있을 테다.
게다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에서 1km 내에 있던 약 6그루의 은행나무가 되살아난 일도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은행나무를 지나쳤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이런 사실을 알고 며칠 전 신호등 앞에서 파란불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옆에 있는 은행나무를 올려다보니 그 인상이 이전과는 퍽 달랐다.

그리고 나무는 적어도 수백 년 많게는 수천 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앞서 말한 은행나무는 천 년도 산다고 한다) 시트론, 오렌지, 레몬 나무처럼 보통 수명이 50여 년인 나무도 있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면 심고 싶은 나무 중 하나가 레몬 나무인데 나중에 레몬 나무를 심는다면 함께 늙어가고 또 비슷한 시기에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레몬 나무 한 그루에서 1년동안 무려 270kg의 레몬이 맺힌다니 그 많은 레몬들로는 레몬청을 만들어 나누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무가 피아노라는 악기로 탄생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나무에 관심을 가지게 된 만큼 ‘현악기 장인이 사랑하는 나무’라는 부제가 붙은 ‘캄페스트레 단풍’도 기억에 남는다.
악기 문외한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다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현악기(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들어봤을 것이다)에 캄페스트레 단풍이 쓰였는데, 앞서 말한 피아노인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에도 단풍나무가 쓰였기 때문이다.

또 비누 같은 식물성 화학 물질인 ‘사포닌’을 만들어서 합성 계면 활성제 대신 천연 거품제(천연 세정제)로 쓰이기도 하는 ‘키라야사포닌’ 나무에 대해 읽고 나도 키라야사포닌 나무껍질에서 얻은 사포닌을 사용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인공 재배해서 상처를 내고 수액(생고무/라텍스)을 채취한 고무나무는 야생 고무나무에 비해 수명이 짧아져서 25-30년이면 잘려나간다는 말을 보고는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처럼 기억에 남는 나무가 많지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를 가진 나무는 ‘가시칠엽수’다.
<안네의 일기>로 널리 알려진 안네가 좋아해서 일기에도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에 ‘안네 프랑크의 나무’로 알려진 가시칠엽수가 있는데, 세계대전도 버텼지만 강풍 때문에 부려져 2010년에 죽고 말았다.
하지만 그 나무에서 채취한 종자가 자란 묘목이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 센터를 비롯한 장소 몇 군데에 심어져서 그 나무가 가진 의미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 훗날 ‘안네 프랑크의 나무로 알려진 이 나무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지만 수년간 병에 시달리다기 2007년 11월에 벌목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법원 결정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한 자선 재단까지 설립되었지만, 어느 해 8월의 강풍이 나무를 무참히 부러뜨리고 말았다. 밑동 근처의 가지가 재생하리라는 희망도 보였지만 안네 프랑크의 나무는 2010년 사망을 선고받았다. 다행히 나무에서 채취한 종자가 미국에서 7포기의 묘목으로 자라나 공원, 박물관, 학교를 비롯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 센터에 널리 식재되었다.

p.200”



<나무 이야기>를 통해 이름도 생전 처음 보는 나무, 티크, 흑단, 마호가니, 자작나무처럼 가구를 고를 때에 이름만 들었던 나무나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와 북유럽 신화 속 생명의 나무 이그드라실 같이 다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나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읽고 다양한 나무가 내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자 세상이 더 푸르게 보이고 생명력과 고마움이 느껴졌다.

책 뒷부분에 한글과 영문으로 적힌 색인이 있으므로, 나처럼 보통 책을 읽듯 앞에서부터 한 장씩 넘기며 읽어도 좋고 책장에 꽂아두고 궁금한 나무가 생겼을 때 색인에서 이름을 찾아 해당 페이지를 펼쳐보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책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세밀화 때문에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타인웨이 만들기
제임스 배런 지음, 이석호 옮김 / 프란츠 / 202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명품 피아노라고도 하는 고가의 피아노 브랜드 중에서 보통 스타인웨이라고 부르는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Steinway & Sons)가 가장 유명하지 않을까.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의 그랜드 피아노는 수많은 콘서트 홀과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피아노 연습실에 자리잡고 있으며 전문 피아니스트부터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에게까지 사랑받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가 우승한 쇼팽 콩쿨에서 사용된 피아노에 대해서 좀 알 수 있었는데,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쇼팽 콩쿨 참가자는 네 대의 피아노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피아노를 선택해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쇼팽 콩쿨 참가자 중 많은 수가 네 대의 피아노 중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선택했고, 그 해 우승자 조성진 씨 또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선택해 연주했다.

이렇게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 사의 피아노가 선호되는 이유를 알고 싶었고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고가의 피아노인 만큼 장인 정신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었기에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궁금했는데, 음악 관련해서 폭넓은 책을 다루는 프란츠 출판사에서 내 호기심을 풀어줄 수 있는 책 <스타인웨이 만들기>가 출간되었다.

저자 제임스 배런은 실력 있는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이자 뉴욕 타임스 기자이고 11개월 간의 취재를 거쳐 이 책을 썼다고 해서 신뢰가 가고 기대가 되기도 한 책이다.

이 책은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 피아노 중에서도 K0862 콘서트 그랜드를 주인공으로 하며, 미국 뉴욕공장을 주 배경으로 하여 K0862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주는 부분과 스타인웨이 일가와 K0862의 조상이라고 할 수 있는 피아노의 역사를 알려주는 부분, 이렇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다른 여러 회사의 피아노와 달리 공장하면 떠오르는 대량 생산 자동화 기계와는 거리가 먼 공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만들어지는 방법과 사용되는 도구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았기 때문인데, 문서화된 매뉴얼 없이 선배가 후배에게 일하는 방법을 전수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좋은 피아노를 만들기 위한 흠 없는 나무를 고르고, 그 나무가 여러 직원들의 손을 거치고 기다림 끝에 피아니스트의 손길이 닿는 콘서트 그랜드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면 스타인웨이 피아노의 특별함을 느낄 수 있다.



“ (...) 호르바체프스키는 공장이 ‘하루에 피아노 열 대 가량’의 페이스로 움직인다고 한다. 1년으로 치면 약 2500대 정도가 된다. 한때 혁신의 대표 격이었던 이 공장은, 이제 다른 산업이 자동화 물결에 올라타며 버리고 간 제조 기법들을 그대로 간직한 타임캡슐 같은 존재가 되어 있다.

p.106-107”


“ 기실 따지자면 매일 스타인웨이 공장에서 벌어지는 공정은 주문 제작과의 경계가 모호할 지경이다. 야마하 같은 경쟁사들은 기계를 사용하는 대목에서 스타인웨이는 수작업 도구를 사용한다(그러나 야마하는 K0862와 같은 크기의 콘서트 그랜드를 제작하는 데 스타인웨이와 마찬가지로 약 9개월이 소요된다고 주장한다). 가와이Kawai는 가격이 15만 달러가 넘는 콘서트 그랜드를 시판 중인데, - 스타인웨이가 K0862에 붙일 가격보다 6만 달러 가까이 비싼 셈이다 - 그런데도 스타인웨이라면 나무를 쓸 지점에 플라스틱 부품을 사용한다. (...)

p.110”



또 저자는 스타인웨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다른 부분과 다르게 현재형으로 서술함으로써 독자가 저자와 함께 뉴욕에 있는 공장에서 스타인웨이 탄생 과정을 지켜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한편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의 역사는 슈타인베크라는 이름과 함께 시작되는데, 스타인웨이 일가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이주한 가족으로, 창립자 하인리히 엥겔하르트 슈타인베크를 제외한 다른 가족은 이름뿐만 아니라 성도 슈타인베크(Steinweg)라는 독일식에서 미국식으로 바꾸어 스타인웨이(Steinway)가 된 것이다.
회사명에서 알 수 있듯 창립자인 아버지와 그 아들들이 스타인웨이 앤드 선스(Steinway & Sons) 회사를 이끌었는데, 아들 중 C. F. 테오도어가 가족이 있는 뉴욕이 아닌 독일에서 피아노 공장을 운영하여 스타인웨이 피아노는 미국 뉴욕산과 독일 함부르크산으로 나뉘게 되었다.

미국 뉴욕제와 독일 함부르크제 피아노는 외형부터 차이가 있는데, 피아노 도색 방식과 도색에 쓰이는 래커도 다르지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건 건반 양쪽 암(arm)의 모양이다.
뉴욕산 피아노의 암은 셰러턴 암이라고 불리는 날카로운 직각 모양이지만 함부르크산은 둥그르스름한 모양이라고 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정말 건반 양쪽 암(arm)의 모양이 달랐다.

피아노의 역사라고 하면 지루해보일지 모르겠지만, 피아노에 관심이 있다면 역사 부분도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재미있는 부분하면 나는 박람회 당시 라이벌이었던 두 피아노 회사, 스타인웨이와 치커링이 대결을 하다가 연출된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데, 스타인웨이 브랜드가 가진 이미지와 이렇게도 다른 모습이라니!
이 장면을 상상하면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다.



“스타인웨이와 치커링이 한판 대결을 벌이는 와중에는 우스꽝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 두 회사가 모신 피아니스트들이 각자의 부스에서 연주 경연을 벌이는 형국이 펼쳐지기도 했다는 것이다. 피아니스트들은 피아노 앞에 앉아 첫 화음 모양으로 쫙 편 양손을 허공에 든 채 대기했다. 반대편 부스에서 들려오는 선율에 조금이라도 틈이 나기를 기다리면서 말이다. “곡에 잠깐의 공백이 생기면, 설령 그것이 두 마디짜리 짧은 쉼표라 하더라도 어김없이 반대쪽 부스에서 연주 소리가 치고 들어와 잘라먹었다.”

p.190-191”



<스타인웨이 만들기> 각 장의 앞에 위치한, 피아노를 만드는 과정을 담은 사진처럼 스타인웨이와 관련된 흑백 사진과 책 마지막에 위치한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 도해는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주는데, 아쉬운 점도 사진이 각 장의 앞에 한 장씩만 들어갔다는 것이다.
뉴욕산 스타인웨이 피아노 건반 양끝을 둘러싼 암과 독일산 스타인웨이 피아노 암의 차이도 글로만 읽었을 때보다 사진을 찾아 비교해보니 더 명확하고 흥미로웠는데, 사진 자료가 더 많았더라면 이런 즐거움을 더 많이 누릴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이렇게 <스타인웨이 만들기>를 읽으며 K0862가 거쳐온 길을 함께 했다보니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 K0862에게 CD-60이라는 아이디 넘버가 주어지고 피아노로써 자기 몫을 하게 되었을 때는 내가 다 뭉클했다.
(아직도 피아노 가격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이전보다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친근하게 느껴지고 거리가좁혀진 느낌이다.
그리고 내 짐작대로,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역사 속에는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고가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받는 이유가 있었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포스터 북 by 에곤 쉴레 아트 포스터 시리즈
에곤 실레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품절


손바닥만 한 크기로 봤을 때는 몰랐는데 물감의 양감과 붓자국이 선명한, 큼직한 크기의 ‘꽈리열매가 있는 자화상’을 보니 구스타프 클림트가 에곤 쉴레의 그림에 압도되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더 포스터 북 by 구스타프 클림트 아트 포스터 시리즈
구스타프 클림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만지면 손끝에 금박이 묻어날 것만 같은 고품질로 인쇄된 아트 포스터를 현관 앞에 걸어 두니 하루를 시작하러 나가고 또 하루를 마치고 들어올 때마다 에너지가 충전되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