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 프랑스 책벌레
이주영 지음 / 나비클럽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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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더 관심이 가고 영화 드라마 소설을 볼 때도 주인공보다 눈길이 갈 정도로 나는 책에 푹 빠진 애서가, 일명 책벌레 캐릭터를 좋아한다.
그런데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는 오지랖 넓은 책벌레 프랑스인 남편을 둔 한국인 아내가 유쾌한 문체로 적어내려간 남편 관찰 보고서이자 애환기여서 책벌레 캐릭터를 내내 만날 수 있는 셈이었고, 그래서 (실제로 같이 사는 사람은 복장이 터지겠지만)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렇게 배우자가 울분에 차 책까지 출간하게 한 책벌레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궁금했는데, 과연 저자의 남편 에두아르 씨는 웬만한 애서가는 명함도 내밀 수 없을 책벌레였고 한국 할아버지 할머니도 저리가라 할 정도로 오지랖 넓은 프랑스인이었다.
예로부터 책을 권하는 세상에서 살아온 우리는 책에 대한 사랑이 조금 과하더라도 그게 문제가 될 거라고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에두아르 씨의 경우는 책에 대한 사랑이 ‘조금’ 과한 게 아니라 거의 집착이라고 볼 수 있는 데다 그 때문에 온갖 사고를 치게 되는 것이다.
에두아르 씨는 항상 책을 손에 들고 다니며 읽느라 시계나 최신 휴대폰을 잃어버리고, 해야할 일을 제때 마치지 못하며, 주변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가방에 책 한 권쯤 넣어 다니는 거야 큰 불편을 초래하지는 않지만 여행을 갈 때에도 책만 넣은 가방이 두 개나 되는 건 동행한 사람도 불편하게 만든다.

게다가 에두아르 씨는 오지랖이 넓고 부드러운 말을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서 동네 약국이나 정육점이나 대중교통 등 온갖 장소에서 말다툼을 하는데, 말다툼을 한 당사자 에두아르 씨보다 그 때문에 더 먼 가게를 이용해야 하고 말다툼 현장에서 함께 있는 저자가 더 난감해진다.
물론 말다툼은 상대방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시작되고 에두아르 씨는 옳은 말을 한다지만 잘 넘어갈 수 있는 일을 넘어가지 않는 건 성가신 일이다.
저자는 책 곳곳에서 에두아르 씨를 나름대로 분석하는데, 이런 오지랖은 에두아르 씨가 전기(傳記)를 많이 읽었기 때문이 아닌가 추측한다.
전기문 속 위인들은 어떻게 보면 오지랖이 넓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쌓인 책에 둘러싸여, 책 때문에 물건을 잘 챙기지 못하는 에두아르 씨를 챙기며 정신 없이 살다보면 저자로서는 책이 꼴도 보기 싫을 수 있을 텐데, 에두아르 씨만큼은 아니지만 저자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 속 피아노 배틀의 책 버전이라고나 할까, 책 속 구절을 이용해서 저자와 에두아르 씨가 배틀을 하듯 투닥거리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중년의 나이라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책벌레를 넘어서 괴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행동을 하는 에두아르 씨 옆에 있는 저자의 인내심도 대단하지만, 이처럼 저자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점이 투닥거리면서도 에두아르 씨와 계속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중년의 나이라는 게 의심스러울 정도로 책벌레를 넘어서 괴짜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행동을 하는 에두아르 씨 옆에 있는 저자의 인내심도 대단하지만, 이처럼 저자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는 점이 투닥거리면서도 에두아르 씨와 계속 함께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 (...) 장정이 심하게 손상된 책들은 반투명 포장지로 정성껏 싸여 바닥에 쌓여 있다. 더 이상 책장에 여유가 없으니 바닥에 쌓아 놓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중 한 권을 펼쳐봤다. 첫 장에 ‘1980년 큰누나 책 훔침’이라는 메모가 보인다. 다른 책을 펼치자 이번엔 ‘아름다움의 절정을 경험하다’라고 쓰여 있다.

빙그레 미소 짓고 말았다. 묘한 아늑함에 휩싸인다. 어릴 적 자주 가던 우리 동네 헌 책방이 떠오른다. (...) 에두아르의 누더기 책이 가득한 서재에서 나는 잠시 추억에 잠긴다. 그의 말대로 낡은 것에는 새것이 갖고있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이 먼지투성이 거지 같은 서재에는 에두아르의 추억이 가득하다. 추억은 이야기를 한다. 집에 추억의 이야기가 있는 방 하나쯤 있어도 좋겠다 싶다.

p.295-296”



무엇보다 이 모든 일을 이렇게 유쾌하게 글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건 사랑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 자신은 가지고 싶은 구두를 바로 사지 못하고 세일을 할 때까지 바라만 보는데도 (이건 구두를 떠나보낼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다) 에두아르는 책을 마음껏 살 수 있었고, 에두아르 씨가 책을 읽느라 최신 휴대폰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예상치 못한 지출이 있었을 때 책 구매 금지령을 내렸다가도 에두아르 씨가 측은해서 책 구매 금지령을 풀어버리고, 가끔씩은 그의 장단에 맞춰주는 모습에서 사고뭉치라고는 해도 저자가 에두아르 씨를 사랑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또 책 곳곳에 있는, 저자가 직접 에두아르 씨를 그린 그림에서도 애정이 보였는데, 연필로 무심하게 선을 그은 것 같지만 대상을 꾸준히 지켜봤다는 증거이기도 한 그림은 저자와 닮았다.

지독한 책 사랑을 하는 괴짜 책벌레와 매일을 보내는 저자는 속이 터지겠지만, 에두아르 씨를 책에서만 보는 나는 책을 재미있게 읽어 나가며 에두아르 씨와 저자의 책에 대한 철학이 드러날 때면 그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프라인 서점에 대한 에두아르 씨의 말을 읽었을 때나 베스트셀러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읽었을 때를 꼽을 수 있는데, 책 가격 때문에 오프라인 서점을거의 이용하지 않고 온라인 서점을 이용하는 나도 에두아르 씨의 말에 (자주는 아니더라도) 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베스트셀러 제도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도 했다.



“너 예전에 <한 달쯤, 파리> 쓸 때 파리에 서점이 많아서 부럽다고 했지? 알아? 파리에 서점이 예전보다 훨씬 줄었다는 거. 사람들이 너처럼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사서 그런 거야. 이런 식으로 가다간 지구상에 서점이 하나도 안 남게 생겼다고. 지구에서 서점을 계속 보고 싶다면 서점에서 책을 사야지!

p.35-36”



저자에 이입해서 분통이 터질 때도 있었지만, 책을 좋아하는 애서가이고 유튜브에서 영화와 드라마 속 책벌레가 등장하는 장면을 찾아보거나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프랑스 책벌레와 결혼했다>를 즐겁게 읽어나갔다.
더해 여러 책에서 발췌한 글과 (책 끄트머리에 부록처럼 들어간) 에두아르 씨가 소개하는 그의 인생책 이야기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요소가 있는 책이다.
에두아르 씨는 프랑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때문에 프랑스의 교육을 엿볼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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