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이야기 - 나무는 어떻게 우리의 삶을 바꾸었는가
케빈 홉스.데이비드 웨스트 지음, 티보 에렘 그림, 김효정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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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인내의 시간을 거쳐 피아노로 다시 태어나서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에 닿을 때까지의 과정이 담긴 책을 읽으며 나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여정에서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양의 나무가 필요하고, 더 어마어마한 양의 나무가 다양한 물건을 만드는 데 소비된다는 사실을 새삼 인식하기도 했다.
도심 빌딩숲에 살더라도 길에 늘어선 가로수를 몇 번이나 지나치게 되고, 이 글을 쓰는 지금 앉아있는 의자와 손에 든 책 그리고 매일 밤 잠이 들고 일어나는 침대도 모두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말이다.
더 적다가는 끝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우리 주변은 온통 나무이고, 나무를 제외한 생활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인데 지금까지는 나무로 만들어진 물건을 당연하게 여기고 나무를 그냥 지나쳤다니 너무 무심했던게 아닌가.
그래서 나무에 대해 더 알고 싶었던 차에 세밀화와 함께 다양한 나무의 정보가 담긴 멋진 나무 도감인 <나무 이야기>를 만났다.

큼직한 크기에다 내가 선호하는 패브릭 소재의 양장본이라는 게 마음에 들어서 손으로 책 표지를 몇 번이고 쓰다듬은 후에야 책을 펼쳤는데, 책장을 넘길 때마다 보이는, 당장이라도 이파리가 흔들릴 것 같은 아름다운 나무 세밀화는 나무가 한 그루씩 그려졌는데도 울창한 숲을 떠오르게 해서, 책이 나를 이 나무들이 있는 숲으로 데려간 것만 같았다.

본문은 나무 세밀화가 그려진 면과 그 나무에 대한 설명과 이야기가 적힌 글이 있는 면, 이렇게 나무 한 그루 당 2페이지로 구성되었다.
세밀화 페이지에는 세밀화와 함께 나무의 다른 명칭, 원산지, 기후와 서식지, 수명, 성장속도, 최대 높이가 정리되어 있는데, 해당 나무의 잎이나 꽃 또는 열매가 따로 그려져 있어서 더 마음에 들었다.
(꽃이 피지 않고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가 아닌이상) 셋 중 하나가 아니라 잎과 꽃과 열매 모두가 그려져 있었더라면 더욱 좋았을 거라는 욕심이 생긴다.
나무에 대한 설명과 이야기는 한 페이지가 안 되는 분량으로 장황하지 않아서 지루하지 않게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었다.

책에서 가장 먼저 만난 나무는 ‘은행나무’다.
은행나무. 내 주변에서 흔하게 보여서 특별할 거 없어 보였던 나무.
구운 은행은 맛있지만 바닥에 떨어진 열매에서는 좋지 않은 냄새가 나기 때문에 환영받지는 못하는 나무.
나도 인도에 떨어져있는 은행나무 열매를 밟고 그대로 집으로 온 적이 있는데, 신발장에서 나는 냄새에 똥이라도 밟고 들어온 줄 알았었다.

이런 내 안의 은행나무 이미지가 <나무 이야기>를 읽고 달라졌다.
은행나무는 지금과 같은 모습을 무려 2억 년이나 유지해서 ‘살아있는 화석’으로 불리는데,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물이 진화하며 모습을 바꾸는 동안 은행나무는 한결 같았던 것이다.
타임머신이라도 발명되어 우리가 어느 날 과거 공룡이 살던 시대에 뚝 떨어지더라도 은행나무 만큼은 현대와 같은 것을 볼 수 있을 테다.
게다가 일본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에서 1km 내에 있던 약 6그루의 은행나무가 되살아난 일도 있었다.
그동안 수없이 은행나무를 지나쳤지만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이런 사실을 알고 며칠 전 신호등 앞에서 파란불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며 옆에 있는 은행나무를 올려다보니 그 인상이 이전과는 퍽 달랐다.

그리고 나무는 적어도 수백 년 많게는 수천 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앞서 말한 은행나무는 천 년도 산다고 한다) 시트론, 오렌지, 레몬 나무처럼 보통 수명이 50여 년인 나무도 있었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게 되면 심고 싶은 나무 중 하나가 레몬 나무인데 나중에 레몬 나무를 심는다면 함께 늙어가고 또 비슷한 시기에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르겠다.
레몬 나무 한 그루에서 1년동안 무려 270kg의 레몬이 맺힌다니 그 많은 레몬들로는 레몬청을 만들어 나누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무가 피아노라는 악기로 탄생하는 과정을 따라가며 나무에 관심을 가지게 된 만큼 ‘현악기 장인이 사랑하는 나무’라는 부제가 붙은 ‘캄페스트레 단풍’도 기억에 남는다.
악기 문외한도 이름 정도는 들어봤다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가 만든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현악기(스트라디바리우스라고 들어봤을 것이다)에 캄페스트레 단풍이 쓰였는데, 앞서 말한 피아노인 스타인웨이 콘서트 그랜드에도 단풍나무가 쓰였기 때문이다.

또 비누 같은 식물성 화학 물질인 ‘사포닌’을 만들어서 합성 계면 활성제 대신 천연 거품제(천연 세정제)로 쓰이기도 하는 ‘키라야사포닌’ 나무에 대해 읽고 나도 키라야사포닌 나무껍질에서 얻은 사포닌을 사용해보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인공 재배해서 상처를 내고 수액(생고무/라텍스)을 채취한 고무나무는 야생 고무나무에 비해 수명이 짧아져서 25-30년이면 잘려나간다는 말을 보고는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처럼 기억에 남는 나무가 많지만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를 가진 나무는 ‘가시칠엽수’다.
<안네의 일기>로 널리 알려진 안네가 좋아해서 일기에도 여러 번 언급했기 때문에 ‘안네 프랑크의 나무’로 알려진 가시칠엽수가 있는데, 세계대전도 버텼지만 강풍 때문에 부려져 2010년에 죽고 말았다.
하지만 그 나무에서 채취한 종자가 자란 묘목이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 센터를 비롯한 장소 몇 군데에 심어져서 그 나무가 가진 의미를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했다.



“(...) 훗날 ‘안네 프랑크의 나무로 알려진 이 나무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지만 수년간 병에 시달리다기 2007년 11월에 벌목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에 힘입어 법원 결정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 나무를 살리기 위한 자선 재단까지 설립되었지만, 어느 해 8월의 강풍이 나무를 무참히 부러뜨리고 말았다. 밑동 근처의 가지가 재생하리라는 희망도 보였지만 안네 프랑크의 나무는 2010년 사망을 선고받았다. 다행히 나무에서 채취한 종자가 미국에서 7포기의 묘목으로 자라나 공원, 박물관, 학교를 비롯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 센터에 널리 식재되었다.

p.200”



<나무 이야기>를 통해 이름도 생전 처음 보는 나무, 티크, 흑단, 마호가니, 자작나무처럼 가구를 고를 때에 이름만 들었던 나무나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와 북유럽 신화 속 생명의 나무 이그드라실 같이 다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나무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책을 읽고 다양한 나무가 내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자 세상이 더 푸르게 보이고 생명력과 고마움이 느껴졌다.

책 뒷부분에 한글과 영문으로 적힌 색인이 있으므로, 나처럼 보통 책을 읽듯 앞에서부터 한 장씩 넘기며 읽어도 좋고 책장에 꽂아두고 궁금한 나무가 생겼을 때 색인에서 이름을 찾아 해당 페이지를 펼쳐보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책을 활용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운 세밀화 때문에 소장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리뷰는 서평단으로 지원하여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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