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한 공부 - 두려움과 용기 그 사이에서
이동찬 지음 / 휴앤스토리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생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른들의 거짓말 혹은 저주 같은 건 줄 알았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공부인데, 그걸 평생 하라니. 마치 평생 산 정상을 향해 바위를 굴려야 했던 시지포스처럼 살라니. 이 무슨 끔찍한 소리란 말인가. 그리고 어른이 되고 알았다. 그 말, 진짜였다는 걸.


처음에는 이 사실이 싫어 졸업한 이후에는 지독하게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만 다녔던 것 같다. 그렇게 했던 일, 아는 일 중심으로 열심히 다니다 어느 순간 알아버렸다. 이렇게 산다는 건 결국 내 삶을 그 정도로 밖에 만들지 못한다는 걸. 문득 서서 바라본 풍경엔 내가 멈춰있는 동안 다른 이들이 열심히 달리는 모습이 보였고,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상대적으로 나보다 못하다 느꼈던 이들도 매일 노력하며 나보다 훨씬 멋진 삶을 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그리고 다시 책을 폈다. 좀 늦었지만 나도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썩 엉터리는 아니었던 터라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라는 어린 시절 격언을 철석같이 믿었다. 내 공부법은 그렇게 무식했다. 엉덩이를 책상에 붙인지 며칠이 지났는데 남는 건 하나도 없고 왜 그렇게 나는 피곤하고 지치는 건지. 그때 알았다. 10대의 공부법과 30대의 공부법은 달라야 했다. 멘붕이 왔고 그렇게 길을 잃은 중에 이 책을 만났다. 예전부터 '잘 외우는 법'에 대한 수많은 이론이 있었지만 그냥 무시하던 나였다. 공부에 요행이 어디 있나. 그런데 저자는 말한다. 요행이 아니라 '쉽게 공부하는 방법' 아니 정확히 배우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물론 모든 사람이 암기하는 법, 공부하는 법은 다르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그의 말마따나 그의 이야기는 한 사람이 지나온 여러 항로에 대한 기록일 따름이고, 그 길을 갈 것인지 새로운 항로를 개척할 것인지는 오롯이 읽는 이의 몫이다. 그런데 나는 그의 말을 신뢰해 보기로 했다.

그는 처음으로 '거꾸로 독서법'을 설명하는데, 이 방법이 내가 책을 읽는 방법과 똑같았다. 나는 책을 읽기 전 그 책에 대한 사전 조사, 간단하게라도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고 어떤 저자가 썼으며 목차는 무엇인지 확인하고 첫 장을 시작한다. 물론 사전 지식 없이 읽어간 책에서 만나게 되는 깨우침도 있지만, 최소한의 가이드를 두고 읽어야 책 속에서 헤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나는 책을 TV 보듯이 읽는 편인데(이래야 쉽게 지치지 않는다), 분초를 다투며 쏟아지는 스마트폰 알람, 놀아달라 바둥대는 고양이 덕에 눈과 머리가 따로 노는 경우가 꽤 자주 발생한다. (집중력이 30분 언저리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아닌가). 이러한 환경에서 책이 의도하는 바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사전 지식은 꽤 큰 도움이 된다. 그런데 저자는 '거꾸로 독서법'이라는 독서법을 통해 이 메커니즘을 정확히 그대로 설명한다.

그리고 이는 비단 독서 뿐 아니라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오늘 들을 강의를 먼저 읽어보고 수업에 들어가는 것과, 텅 빈 상태에서 앉아있는 것의 정보의 강도는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는 계속해서 피라미드식 요약법(잊어버리지 않고 요약하는 법), 랜덤 논리게임(가상의 논박을 통해 사고를 날카롭게 하는 법), 상상으로 설명하기(가르칠 때가 가장 많이 배운다) 등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실제적인 방법론을 설명하고 나아가 시험 합격을 위한 암기법과 공부 전략을 풀어서 설명한다.

*동기부여, 슬럼프 대처법, 공부 계획 짜는 법 등 유튜브 썸네일에서나 볼법한 꽤 실제적인 방법들이 같이 설명되어 있다.


내 생각에 '진짜 공부'는 혼자 하는 것이다. 직접 책을 읽고 고민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지식이 축적되고 축적된 지식이 구조적인 지혜로 승화되는 것이다. (p.196)


어느덧 연말이다. 또 새해는 돌아올 것이고, 새해에도 아마 거의 모든 이들의 제1목표는 운동과 영어 공부가 될 것 같다. 사실 이는 나 또한 마찬가지다. 작심삼일을 120번 하면 1년이라는데 책 읽은 김에 나는 그 여정을 조금 일찍 시작하려 한다.

공부에 대한 열망이 있다면, 동기부여가 필요하다면 혹은 진짜로 지금 당신이 공부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무조건 일독을 추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탈인간 선언 - 기후위기를 넘는 ‘새로운 우리’의 발명
김한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렇듯 인간이란 협소한 테두리를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중요해지는 것이 바로 다른 존재들, 타자이다. 고로, 자의식 과잉에서 벗어나 타자에 주목하는 것은 탈인간의 출발점이다. 타자를 알아간다는 건, 가령 "알고 보니 저 동식물이 무슨 희귀병을 치유하는 재료로 쓰인 다더라" 같은 사실을 발견해야 비로소 존재 가치가 보이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도구적·실용적인 관점을 떠나 우리에게 여하간의 쓸모가 없더라도, 오롯이 존재 그 자체로서 (타자의) 살아갈 이유를 긍정하는 것이다.

모든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라는 윤리적 명령이 각 인간의 쓸모와 무관한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런 조건 없는 타자 긍정은 우리 지식체계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태도이기도 하다. 탈인간는 인류가 가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다.(p.13)


책 너머 TV 속에 아이슬란드의 화산이 곧 폭발하고 주민들이 대피를 시작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그러고 보면 인간이란 자연 앞에 얼마나 나약하고 어리석은 존재인가. 몇십, 몇백 년이 사람이 보기엔 긴 시간이어도 대자연 앞에선 그저 찰나의 시간일진대 사람들은 이미 예고되어 있는 화산 폭발 지대에 집을 짓고 마을을 일구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 모두가 어쩌면 대를 이어 일군 집과 땅을 모두 두고 떠나야 한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할 수 없다. 자연이 그러겠다면 그런 거니까.


어릴 적 장마철이면 꼭 지대가 낮은 마을은 물에 잠기고, 사람들이 학교 같은 곳으로 대피하곤 하는 일들이 매년 있었다. 어떤 해는 TV에서 또 어떤 해는 인근 마을이 그렇게 되기도 했다. 나이가 들고 이제 이런 일들은 상하수도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나의 유년 시절의 이야기로 추억 속에 머물 줄 알았다. 그런데 몇 년 전 그 하도 많은 동네 중 강남, 서울 곳곳에서 갑자기 불어난 빗물에 반지하가 잠겨 버리고 누군가의 삶이 통째로 수몰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다름 아닌 21세기 전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도시 중 하나인 서울에서 말이다.


곧이어 정부가 일회용품 규제 계도 기간을 무기한 연장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환경에 관한 뉴스인데 이어지는 해설은 이것이 소상공인 표심을 의식한 총선용 정책이 아닐까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환경에 관한 뉴스인데 계도 기간이 끝날 것에 대비해 종이 빨대를 열심히 만들어온 회사들이 우리는 이제 망했다며, 이 재고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정부가 대책을 세우라는 이야기만 들려온다. 환경문제인데… 정작 누구도 종이 빨대를 써야 할 이유에는 관심이 없다.


기후 위기. 2022년 구글에서 가장 많이 검색된 단어다. 우리는 비가 오면, 미세먼지가 들어차면, 날이 너무 추우면, 이런 단어들을 검색하고 곧 잊어버린다.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고 잠깐 문어를 먹지 못하는 1인이 되었다가도, 금세 원래의 식단을 되찾는다. 플라스틱 빨대가 코에 꽂혀 죽어가던 거북을 보고 으악하다가도 콜라에 꽂을 빨대를 찾는다. 도대체가 나는 어찌 된 인간인가.


신은 인간을 창조하며 모든 생명을 다스리라 명했다고 한다. 이 다스림은 보살핌의 다른 말일 진대, 어떤 인간은 이를 오해해 자연을 파괴하고 정복하는 걸 당연시 여겼다. 오직 인간을 위해, 인간을 제외한 모든 것을 공격하고 정복해 왔다. '타자에 대한 이해'가 허용되는 범위는 오직 같은 인간(어떤 경우는 같은 인종) 일 따름이었다.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건 탈인간 선언이라고. 존재하는 그 자체로의 가치를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길.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는 인간이 가지 않는 유일한 길.

죽어가는, 아니 어쩌면 이미 죽어버린 지구 앞에 이제 정말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짜 행복을 찾고 싶은 너에게
변진서 지음 / 부크럼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진서님이 운영하는 유튜북의 초기 구독자이자 팬이다. 지금 이 북스타그램을 운영하게 된 계기도 유튜북이기도 했고(어쭙잖게 북튜브도 해보려다 그건 포기..) 처음 북튜브를 운영하며 단순히 회사원으로 자기를 소개하던 진서님이 어떻게 인플루언서로 성장했는지, 꽤 먼 거리지만 응원하며 지켜본 1인이기도 하다. 

그런 그의 책이 나왔다. 사실 이건 내용의 유무를 떠나 내 입장에선 사서 사인받아야 하는 책이다. 나만 알던 유튜버, 나만 알고 싶은 인플루언서가 이렇게 성장해 있다니 팬으로서 느끼는 뿌듯함과 아쉬움 뭐.. 아 이런 걸 덕질이라고 하는 건가.


해외출장 중이라 꽤 오랜 시간 집을 비운 탓에 한참 전에 도착한 책을 이제야 열었다. 그리고 쉬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한 호흡으로 읽었다. 개인적으로 책은 쉽게 읽혀야 한다고 믿는데 너무너무 좋은 책이다. 저자의 삶에 대해, 진서님이 그리는 삶의 방향에 대해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한 방향으로 그려나가는, 읽는 내도록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었다.


고백컨대 사실 진서님에 대한 오해가 좀 있었다. 여느 슈퍼셀럽에 해당하는 예쁘고 끼 많은 사람. 그런데 책에서 보이는 진서 님의 모습은 단편적으로 인스타에서 보이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금속재료공학 전공, 무명배우 10년 그리고 책을 통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쭉 놓인 고속도로 위를 달렸을 것만 같았던 사람이 사실 우리와 같은 울퉁불퉁한 길에 놓여있던 평범한 사람 중 하나라는 걸 발견하게 될 때 기분이 묘해진다. 그리고 그가 하는 이야기들이 허투루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된다. 괜한 포장을 걷어내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게 된다.


언젠가부터 유행한 주문. '가슴이 뛰는 대로 살라'는 이야기에 대한 편견이 내겐 있었다. 20대는 끊임없이 도전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하고 그렇게 살 때에 가져오게 되는 성취에 대한 결과가 필요한 나이지만, 30대가 되고 이제 너도 사회에 정착해야 할 시기임에도 여전히 '가슴이 어쩌고'하며 자꾸 다른 인생을 꿈꾸는 이들이 조금은 답답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들을 꿈돌이라고 불렀고 이제 그만 네 자리에 앉으라고 말했다. 그런데 진서 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괜히 떤 입방정에 이불킥을 시작했다. 


사실 그건 내가 판단해서는 안되는 영역이다. 그가 꿈을 좇든 돈을 좇든 그건 그의 삶이고 나는 가만히 지켜보든 응원하든 하면 될 일이다. 혹시 아는가. 그가 정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며 새 삶을 살아낼는지. 그리고 나는, 그 도전의 자리에 가지 않을 거라고 감히 확신할 수 있는가. 지금도 이렇게 다른 삶을 꿈꾸면서.


무엇보다 좋았던 점은 유튜북의 주인답게 그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책을 매개로 사용한다는 점이었다. 그렇다. 책은 우리에게 자기 계발을 제외하고도 너무 많은 것을 전해준다. 삶의 태도, 지혜, 관계에 대한 이야기까지. <오만과 편견>, <페스트>, <변신>, <아티스트 웨이> 등 그가 인용하는 책들을 통해 이야기되는 삶의 모양들이 자연스레 풀어지는 게 함께 책 읽는 사람으로 괜히 뿌듯하고 좋았다.


대한민국에 책 읽는 사람 별로 없다고. 그래서 책 관련 콘텐츠는 한계가 있다고 그랬다. 그런데 그 한계를 계속 부수어 내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여기 있다. 그래서 진서 님의 내일이 어떨지 더 많이 기대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이런 모델이 우리 곁에 있어 참 다행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번은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 - 윤석열 정부 600일, 각자도생 대한민국
신장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차별 금지법 제정을 요구하는 단식 투쟁으로 시작한 이 봄, 우리가 목도한 것은 이 땅의 정치의 참담한 실패입니다. 그것은 단지 차별 금지법을 못 만드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을 불평등과 부정의로부터 변화시킬 능력이 지금의 정치에 없다는 뜻입니다. 저는 더 이상 국회 앞에 밥상을 차려 놓고 기다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국회가 찾아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찾아올 정치가 부재함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_차별 금지법 제정을 위해 40일간 곡기를 끊었던 인권활동가 미류 씨가 단식 농성 중단 기자 회견 중에서

(p.122)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 문재인 대통령의 취임사의 일부이자 지금은 인터넷 밈으로 더 많이 통용되는 말이다. 실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코로나의 영향이 크긴 했으나 우리는 진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부동산 시장을 보았고, 이건 곧 문정부와 180도 다른 정권을 탄생시켰다.


많은 이들이 역대 최악의 정권으로 MB정권을 꼽는다. 물론 미처 임기를 마치지 못한 그 다음 정부가 더 최악이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슬프게도 그 정부는 사람들의 마음에 평가 거리도 되지 않는 듯 했다. 여하튼 이해 관계자들의 이합집산으로 가득 찼던 그들만의 나라. 사실 그들 뿐 아니라 모두가 돈을 위해 달리던 그 최악의 5년 동안 우리는 참으로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이후의 식물 대통령이야 말할 것도 없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역설하며 기대를 받던 대통령도 큰 성과 없이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MB정부와 가장 닮은 정권을 목도하는 중이다.


검사들의 나라. 사실 이는 그렇게 중요치 않다. 검사든 군인이든 그들이 정치를 잘한다면야, 그들의 말마따나 능력이 있다면야 그것이 검사든 뭐든 상관없다. 하지만 우리가 목도하는 건, 그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과 한 테이블에 앉는 것조차 거부당하는 이들이다. 그 지엄하던 군사정부 시절도 야당 대표가 단식을 시작하면 대통령이든 그에 준하는 이가 나와서 '왜 그러느냐' 물어보는 게 상대에 대한 예우이자 '정치'였는데, 야당 대표가 20일이 넘도록 금식하는데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 경우는 헌정 사상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그에게 정치란 무엇인가.


'바이든이 날리면', '수해라고 대통령이 퇴근하지 마란 말이냐', '출퇴근길 (반포대교를 통제할 수 있지만) 시민 불편을 최소화 하겠다', '잼버리 사태(그 당시만 시끌하고 결국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등등 누가 봐도 민망한 실책 앞에서 언제나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어야 하는가.


<뉴스하이킥> 신장식 변호사의 칼럼을 모아놓은 책은 그래서 아프다.


좋다. 다 차치하고서 우리는 어쩌면 지금 역대 최악의 경제난을 맞이하고 있다. 내 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농담이 아니라 눈앞에 닥친 괴담이 되어버렸고 자영업자들의 폐업률을 역대 최악의 수치로 치솟고 있다. 코로나 때는 이것만 끝나면 괜찮아 질 줄 알았다. 끝이 보이는 어려움은 견딜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정치가 실패한 자리, 찾아올 정치가 부재한 자리에 희망은 없다. 부탁하건대 부디 그가 정치의 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 톨게이트 투쟁 그 후, 불안정노동의 실제
기선 외 지음, 치명타 그림, 전주희 해제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몇 년 전 노량진을 지나가다 꽤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젊은 친구들이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를 반대한다는 서명을 받고 있었는데, 비정규직, 청년, 여성을 동의어로 생각해온 내게 이 또 다른 청년들의 목소리는 새로웠고 조금은 충격적이기까지 했다.

이후 청년들을 대상으로 FGI를 실시했었는데 이때 이들의 입을 통해 들은 메세지는 내가 이들을 완전히 오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공평'한 시합에서 '탈락'한 이들은 '다른' 처우를 받아야 한다고. 그들이 청년을 대표하는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많은 이들은 정말이지 굳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본인의 처우는 온당하냐는 물음에 지금은 좀 모자라지만 스스로 더 노력해서 '성공' 할 것이라고. 그들은 답했고, 실제로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지는 모르겠지만 소위 사회적 약자로, 이슈들에 맞서 연대했던 그들은 그렇게 조금씩 갈라지고 있었다. 맞다. 사실 모든 비정규직, 모든 청년, 모든 여성을 사회적 약자라고 부를 순 없다. 일부 괜찮은 환경을 가지고 태어난 이들도 있고 그들의 목소리가 SNS를 통해 더 크게 울려 퍼지긴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기득권의 반대편에서 함께 살기 위해 뭉쳤던 이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연대는 이제 추억 속의 이야기일 뿐 거의 대부분의 이들은 이제 각자도생의 길을 걷고 있다.


책은 그 중에서도 톨게이트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2019년 1,500여 명의 대량 해고 사태에 도로공사에 맞서 직접 고용을 요구하며 경부고속도로 서울요금소 톨게이트 지붕 위로 오른 이들의 이야기다. 책은 이들을 직접적으로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진행되는데, 대법원은 당시 이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들 중 다수가 불법파견을 받은 것으로 인정하면서, 이들도 도로공사 직원임을. 도로공사는 함부로 해고했던 직원들을 해고 철회하고 직접 고용할 것을 명령했다.


언뜻 해피엔딩 같지만 책은, 회사로 돌아간 이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복직 후 이들에게 돌아온 일은 원래 하던 업무가 아닌 담배꽁초 줍기, 풀 뽑기, 화장실 청소였다. 차별과 왜곡, 모욕과 보복으로 이들의 새로운 일은 시작되었다. 

그런데 사실 이 대목은 도로공사의 입장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 하이패스는 톨게이트의 지형, 구조를 바꾸어 버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줄을 서서 통행료를 수납하는 걸 원치 않을 뿐 더러 더 넓고 빠른 하이패스의 설치를 요구한다. 많은 고속도로가 하이패스 도입 초기 30km, 1차선으로 들어갔던 것과 달리 요즘은 많은 고속도로가 톨게이트를 철거해 버린 채 하이패스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 채 달릴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급격한 변화 앞에 톨게이트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잃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제 와 톨게이트를 다시 설치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남은 건 이들에게 어떤 임무를 다시 부여할 것인가다. 도로공사가 지탄받아야 할 부분은 여기에 있다. 그들은 이러한 변화를 충분히 예측했음에도 잉여인력을 너무 쉽게 해고로 마무리하려 했다. 그리고 이것이 불발되자  남은 노동자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모욕을 선사하며 스스로 그만두기를 바랐다. 슬픈 일은 사실 이건 도로공사 뿐 아니라 지금도 여느 회사에서 자행되는 해고의 기술이기도 하다. 


효율성 강화라는 미명 아래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우려는 사실 하루 이틀에 걸친 일이 아니다. 꾸준히 경고해왔고, 대책을 요구받았다. 4차 산업혁명. 더 많은 일자리는 AI가 대체할 것이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어쩌면 대량 해고 사태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톨게이트 노동자들이지만 내일은 나 그리고 당신의 일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어른이 될수록 열심히 사는 것과 잘 사는 것이 꼭 비례하지 않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되는데, 열심히 살면 내가 더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는 환상을 좇는 이들이 21세기에 더 많이 생겨나는 기현상 앞에 딱히 할 말은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당신의 일자리도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점이고 이것이 현실이 될 가능성은 꽤 높다는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