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 일기 쓰는 세 여자의 오늘을 자세히 사랑하는 법
천선란.윤혜은.윤소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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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일기를 읽어버린 뒤에 그 사람을 친밀하게 느끼지 않는 법”을 우리는 모른다. 

“남의 고유한 분투를 지켜보는 게 어째서 지금의 내 삶에 대한 응원이 되는” 건지도.

때론 고되고 서글퍼도 결국에는 유쾌하고 상큼하게 마감되는 그들의 이야기를 보면 무심했던 나 자신에게 한 걸음 다가가고 싶어진다. 

이 시간을 오롯하게 담아 뜻밖에 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_김신지 작가의 추천사


중고 시절 때 교환일기라는 게 유행했다. 손글씨를 잃어버린 아이들에게는 조금 어려운 일일지 모르나 한 권의 노트만 있다면 우리는 충분했다. 친구들끼리 돌려쓰는 일기를 통해서는 매일 만나지만 도통 드러나지 않는 아이의 속마음을 볼 수 있었다. 가끔 반끼리 돌려쓰는 교환일기장에는 모르는 아이와 짝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는데 이름이 아니라 아이디로 적혀오는 일기를 통해 모르는 사이에서나 털어놓을 수 있는 고민을 들을 때도 있었고, 그런 소소한 고민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마음을 적어 답을 하고 또 그 일기는 돌아오고 뭐 그랬었다. 그 일기장 중 몇 권은 흑역사가 되어 지금도 내 서랍 어딘가에 잠들어 있다. 그리고 그때 우리가 나누었던 일기장들은 또 누군가의 집에 고이 잠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사 때마다 가끔 꺼내보곤 하는데 일기장을 펼 때마다 손발이 오그라드는 경험과 동시에 나를 30년 전 그때로 데려가 준다. 그저 풋풋했던 시절. 마음 담에 꾹꾹 눌러 쓴 그 글들이 그래 우린 그때 참 좋았다.


지나고 와서 보니 그때 우리는 함께 글을 썼었다. 누군가 잠들기 전 종이에 꾹꾹 눌러쓴 마음을 다음날 설레하며 받아 읽고는 하루 종일 어떻게 답장을 쓸지 생각한다. 그리고 책상 머리에 앉아 상대의 이야기에 이어 내 이야기를 써내려 간다. 일기의 당사자가 아닌 이들도 가끔 일기에 등장하기도 했다. 노래 가사를 쓰기도 했고, 좋은 구절은 밑줄을 긋고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어떤 고민에 자기는 이렇게 생각하노라며 꽤 진심 어린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일기를 나누고는 괜히 더 돈독해져 운동장 한편에 앉아, 또 소소한 이야기를 한참을 나누기도 했다.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이든 좋다는 소설가,

음악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에세이스트,

무언가를 좋아하고 시작하기에 망설임 없는 편집자.


책은 이 소개만으로도 귀를 열게 하는 이력의 세 여자의 교환일기다. 그들은 일기장에 모든 것에 대한 수다를 시작한다. 그들의 공통의 직업인 글은 물론이고 결혼, 연애, 모녀 등 30대 여성의 모든 것에 대해 그들은 툭 터놓고 이야기한다. 책의 제목처럼 엉망으로 살고 있지만 열심히는 사노라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꽤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가끔은 끼어들어서 '아니 근데 그건 말이야'라고 나의 이야기를 막 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 

무엇보다 아직도 이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글로 나눌 친구가 있다는 게. 뭔가 부럽기도 했다.


누군가의 일기를 읽어버린 뒤에 그 사람을 친밀하게 느끼지 않는 법을 우리는 모른다는 추천사는 매우 적확하다. 어우 이렇게 사랑스러운 책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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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동 헤리티지 - 공단과 구디 사이에서 발견한 한국 사회의 내일
박진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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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구미. 내가 기억이 있는 순간부터 나의 고등학교 시절까지 18년을 살아온 내 고향이다. 

대구광역시. 대학에 들어와 취업과 결혼을 하고 지금도 20년째 살고 있는 내 집이다.


지금은 서울에 있는 사무실을 매주 들락거리는 처지지만, 내겐 아직도 지역에 대한 마음이 있다. 대학을 서울로 가지 않은 것도, 취업을 서울로 하지 않은 것도 이 개똥같은 철학에서부터 출발했다.(지금은 좀 후회하지만 어쨌든) 취업할 즈음 누군가 너의 비전이 뭐냐 물었을 때도 '서울의 대안이 되는 지역공동체'라 했고, 아직까지 지역 은행과 지역 백화점이 서울 자본에 편입되지 않고 살아있는 도시. '우리가 남이가'가 부정적 뉘앙스로 쓰이긴 하지만 아직까지 역으로 아직까지 우리가 남이 아닌 도시. 그 도시에서 이곳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싶은 소망이 내겐 있다.


가끔 약속이 있어 한번 가본 구디 역과 라이온즈의 원정 경기가 열릴 때마다 찾는 고척돔. 사실 내가 구로라는 지역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의 전부다. 공단, 디지털 단지, 중국인으로 통칭된다며 저자는 구로를 소개하는데 미안하지만 사실 나는 구로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아마 이렇듯 구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비로소 구로에 대해 알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는 구로에서 자랐고, 구로를 좋아하고 계속해서 함께 살고 싶은 이의 마음과 그가 담아둔 구로에 대한 애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


구로동 토박이인 저자는 구로의 구석구석을 소개하며 구로의 역사와 그 속에 담긴 상처들, 그리고 그 역사의 순간에 자신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함께 꺼내 놓는다. 미싱과 함께 성장한 구로공단과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함께 써온 수많은 사람들, 이제는 소위 3D로 분류된 산업도시에 유입될 수 밖에 없던 외국인들. 그리고 끊이지 않는 이들을 향한 차별과 혐오의 시선에 대해 그는 이야기한다. 이는 노동자에서 외국인으로 대상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그는 이 시선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자 말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차별의 시선을 덮어버리기 위해 '디지털'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로 진짜 구로를 숨기려 하기도 한다. 온갖 정치적 수사로 얼룩져 버린, 그렇게 구로가 아닌 곳에서 구로를 찾는 이들의 이야기도 그는 그 안에서 살아온 토박이의 눈으로 우리게 들려준다. '우리도 강남 못지않다' 말하는, 그들이 부끄러워하는 구로를 우리는 왜 부끄러워해야 하는가. 이제는 지역 소멸을 걱정해야 하고, 우리가 부끄러워 내 고향을 등지거나 혹은 이곳을 강남처럼 만들겠다고 소리 높이는 이들에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꽤 울림이 크다.

그렇게 모두가 강남 바라기가 되어버린, 우리를 부끄러워하며 특색을 잃어버린 건 사실 구로의 문제는 아니다. 전국의 모든 동네는 공히 똑같은 마트에서 장을 보며 똑같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똑같은 스타벅스를 공유하고 있다.

* 물론 양양의 서피비치처럼 리퀴드폴리탄이 일어나고 있는 지역들도 있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 구로동 구석구석을 훑으며 구로동의 과거와 지금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대구가 떠올랐다. 보수의 성지, 대프리카, 김광석 거리, 막창, 치맥의 도시 등 대구를 둘러싸고 있는 이미지는 모두 다르지만 20년을 쌓아온 나의 대구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누군가는 또 자신의 동네를 떠올릴 것이다. 구로동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그렇게 조금씩 확장되다 보면 우리는 어느 교차로에서 만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짜 지역이 나아갈 방향,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이 생겨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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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일기
권남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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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꽤 오래전부터 카공족이었으며, 취업을 하고 나서는 주말에 카일족으로 변했다. 어느 날 스벅에서 유현준 교수의 책을 보다 무릎을 쳤다. 집이란 건 방과 거실로 이루어진 공간이라고. 현관을 열면 침대가 보이는 원룸을 전전하는 청춘들은 집보다 오히려 카페가 편하고 숨 쉴 공간이라고. 딱 내가 그랬다. 몇 평 원룸에 있느니 커피값을 들이더라도 노트북 들고 카페에 있는 게 나았다.

카페에 오래 앉아있다 보니 눈치라는 게 생겼다. 카공족 논란도 그때쯤 시작되었다. 이후 내 선택은 무조건 스벅이었다. 개인 카페나 점주님이 사장인 체인의 경우는 몇 시간 이후에 한 잔을 더 시키는 것도 민폐 같았다. 그랬다. 스벅은 가난한 내게 오래도록 앉아서 일하거나 공부하는 것이 허락된 유일한 공간이었다.


2. 스타벅스 재즈라는 장르가 있다. 스벅 회장 하워드 슐츠의 책 <온에어>라는 책에 스벅은 BGM도 수많은 공을 들인다고 한다. 생각해 보라. 오늘 들어갔던 스벅의 BGM을 기억하는지. 신기하게도 스벅의 BGM은 처음에는 들리다가 일이나 책, 대화에 집중하면 이내 사라진다. 새삼 스벅이 대단하게 보이는 순간이었다.


3. 개인 카페 사장님들(특히 목사님)을 만나다 보면 그렇게 스벅과 커피 맛 비교를 많이 한다. 하나같이 스벅보다 좋은 원두를 쓰고, 특히 에스프레소를 어떻게 먹으면 기가 막힌다고. 그런데 미안하지만 알바가 바뀔 때마다(아침저녁으로) 바뀌는 커피 맛을 경험하는 건 커피 좋아하는 사람에게 꽤나 곤혹스러운 일이다. 또한 스벅에만 있는 초록과 나뭇빛 느낌이 어지간한 개인 카페에는 나지 않는다. 아마 보통의 사람은 평타를 치는 일정한 맛의 커피, 언제 가도 편안하고 예측 가능한 공간을 좋아한다. 아무래도 스벅이다.


4. 여의도에는 스벅이 꽤 많고 이름도 비슷비슷하다. 퇴근 후 늘 가던 스벅에 사이렌 오더로 주문하고 노트북을 폈다. 곧 이어 음료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가 왔는데 카운터는 비어있었다. "혹시 여기가 여의도OO점이 아닌가요?" "아 고객님 여의도OO점은 길 건너 OO건물에 있는 지점입니다" 황급히 노트북을 접고 건너난 길 건너 스벅에는 빈자리가 없었고 내 커피도 한쪽 구석에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5. 스벅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엄마와 딸로 보이는 모녀가 있었고 뒤이어 엄마와 아들로 보이는 이들이 맞은 편에 앉았다. 네 사람은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했다. 곧 이어 목사님이라 불리는 남자가 등장했다. 목사님은 네 사람의 가운데 앉아 기도와 함께 설교 비슷한 걸 시작했다. 20분 정도 되었는데 하나님이 얼마나 가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뭐 그런 얘기였다. 그 중간에 젊은 남녀도 각각 소개해 주었는데 아마도 목사와 남녀도 처음 만나는 사이 같았다. 어느 대학을 나왔고 지금 어느 회사에서 일하느냐는 게 소개의 전부다. 그렇게 목사의 시간이 지난 뒤, 어른 셋은 빠져나갔고, 남은 두 남녀는 그들의 길을 어색하게 배웅했다. 잠깐의 멀뚱한 시간이 지난 뒤 둘은 서로에게 '수고하셨다'라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자는 일어나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눈이 꽤 슬퍼 보였다. 텅 비어 보였다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 시켜놓은 아메리카노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6. 책은 이런 스벅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친구들끼리, 연인들끼리, 가족들끼리, 혹은 혼자 또 여러 관계의 사람들이 그곳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스타벅스 일기. 이렇게 스벅에서 일하는(아 스텝이 아니라 카일족) 저자가 스벅 테이블 건너에서 만나게 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읽다 보면 빙그레 웃음이 나기도 하고, 마음 한편이 따땃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생각이 많아 질 때도 있다. 스타벅스가 처음 한국에 나타났을 때 귀족 음료였던 그 스벅이 우리 생활에 이렇게까지 깊숙이 들어왔구나 싶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스타벅스는 그냥 카페의 하나로 불리기는 우리 삶에 너무 깊이 들어왔다.


7. 스벅을 이렇게 발견할 수도 있구나. 사실 읽으면서 괜스레 좋았다. 캐롤이 빵빵 나올 스벅에 옷을 좀 챙겨 입고 커피 한 잔 하러 가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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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이혼 시키기
이화열 지음 / 앤의서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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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시키기>라는 앤 패디먼의 책을 보며 두 세계가 결합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는데, 저자가 이를 빗대 쓴 <서재 이혼시키기>라는 책은 반대로 ‘닮음’에 대한 열망 따문에 ‘다름’을 간과하고 살았던 25년차 부부의 결혼에 대하여, 양육에 대하여 그리고 비로소 온전한 독립을 이루어 가는 이의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만약 자신을 제대로 소유하는 법을 알지 못한다면, 타인을 통해서 행복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혼에서 독립은 상대와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면서 자기 인생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고 스스로의 욕망과 행복을 타인이 결정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이다.

_여는 글 중


결혼을 열망하는 이들을 가끔 만난다. '왜 결혼하고 싶냐'는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대부분 '안정을 찾기 위해서'라고 한다. 간절히 연애를 원하는 이들을 만나기도 한다. '왜 연애가 하고 싶냐'는 물음에 돌아오는 대답은 '외로워서'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연애를 하면 외롭지 않고, 결혼을 하면 안정이 찾아올까? 내 경험이 무조건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 대답은 '아니'다. 연애와 결혼, 아니 관계는 인간의 외로움과 안정의 욕구를 채워줄 수 없을 뿐 더러 행복의 충분조건도 아니다. 물론 관계에서 주어지는 행복은 존재하지만 독립된 개인이 뿌리내리지 않은 이들에게 연애나 결혼이 되려 독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우리는 종종 만난다. 저자의 말처럼 '닮음'에 대한 열망이 '다름'을 간과하게 될 때 우리는 어쩌면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른다.


책의 1부는 이런 다름에 따른 결혼에 관한 이야기, 2부는 자녀의 성장에 따라 종속되는 부모가 자녀로 부터 독립하는 이야기, 3부는 저자가 말하는 일상 속에서 온전히 자신과 만나는 일에 대한 짧은 이야기다. 짧은 문단의 호흡, 툭툭 던지는 듯한 글의 리듬 그리고 모든 문장 속에 담긴 독립과 의존에 대한 물음. 솔직히 말하면 쉽게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후 글을 쓰려 앉으니 꽤 복잡다단한 감정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채 터져 나오는 느낌이다. 나는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게 얽매이지 않고 살고 싶어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생활은 온전히 나를 나타내고 있는가? 숫자에, 돈에 그깟 타이틀에 목숨 걸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2023년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독립적이지만, 또 어느 시대보다 외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자신의 삶에 간섭하는 건 싫지만 보여주고 싶은 시대, 누군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가 내 삶을 일일이 들여다보지는 않았으면 하는 시대. 느슨한 연대라는 조금은 생소한 언어가 시대정신이 되어버린 시대에 온전한 나의 모습으로 제대로 살아가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니 그런 방법이 있기는 할까. 그 주체적 삶에 대한 질문에 이 책이 조금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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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필사 문장 30 좋은 습관 시리즈 34
김선영 지음 / 좋은습관연구소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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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때였다.(국민학교 졸업생 소리 질러) 주말에 백일장이 있다고 선생님이 말씀하셨고, 관심 있는 사람 있냐는 말에 별 생각 없이 손을 들었다. 혼자 뭐가 그리 심각했는지 한 구석에 앉아 원고지에 뭐라고 끄적끄적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더라고 당시 엄마는 회상했다. 그리고 몇 주 후. 내 글이 동상인지 뭔지 꽤 큰 상을 받았다고 했다. 그 주 월요일 난생 처음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조회대 위에 올라 교장선생님이 대신 전해주는 상장과 트로피를 전해 받았다. 나도 어쩌면 글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첫 기억이다.


물론 그 이후 학창 시절 동안 나는 그 어떤 대회에서도 입상하지 못했다.(심지어 고등학교 문학 동아리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 상은 단지 운이었을까? 고딩 이후 누군가에게 한동안 글을 쓴다는 이야기조차 하지 않았다.


꽤 시간이 흘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어쩌다 서울로 발령이 나고, 혼자인 텅 빈 서울에서 그냥 시작한 것이 인스타에 쓰는 짧은 서평이었고, 그 소소한 일이 지금의 이 채널이 되었다. 팔로워가 늘어나며 사람들이 서평을 써달라 요청했고, 그 요청이 많아지자 어느 순간 또 글을 놓아버렸다.


글 쓰는 법을 자주 잃어버리는데 딱 그 시기에 글밥 님의 책이 내게로 왔다. 사실 이 리뷰도 거절하려다 글밥 님이 딱 나를 지목하셨다고 해서 받아본 건데 뭐랄까. 어쩌면 이렇게 책들은 생각지 않은 순간에 적절하게 나를 찾아오는 걸까.


책은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모르는 이들에게 혹은 나처럼 어느 순간 쓰는 법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준다. 30개의 문장은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조곤조곤 일러주는데 글태기를 극복할, 아니 글을 쓰게 해줄 힘이 되어주는 문장이 30개나 된다니 한번 읽어볼 만하지 않은가? 다음은 개인적 메모.


1. 중꺽마(5장) : 매일 쓰는 것, 함께 쓰는 것. 그리고 계속 쓰는 것.

2. 지금만 쓸 수 있는 글이 있다(10장) : 글을 읽다 보면 예전에 이 글을 쓰던 순간의 감정, 공기, 습도까지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 어떤 단어든 좋다. 그 단어를 놓쳐선 안된다.

3. 묘사 잘하는 법(15,16,17장) : 오호라.. 이건 좀 두고두고 읽어야 할 듯.

4. 글을 쓰는 이유를 의심하라(27장) : 왜 쓰는가, 글을 통해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5.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글쓰기(에필로그) : 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갑갑할 때 그 마음을 종이 위에 혹은 키보드 위에 쏟아 놓고 나면 후련하다. 누가 읽든 그렇지 않던 관계없다. 단지 쓰는 것만으로 충분한 시간.


쓰기에 관심이 있다면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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