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골드 마음 사진관
윤정은 지음 / 북로망스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집에 누워 TV 리모컨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면 요즘 가장 많이 나오는 프로그램이 개그맨 5명이 여행을 떠나는 <독박투어>라는 프로그램이다. 이미 사적으로도 친밀한 이들의 케미는 기계적 재미를 뛰어넘는데 지난주였나 이들은 어느 지역을 여행하다 바닷가 위의 한 사원에 다다른다. 저 사람들은 하루에 몇 번을 기도하느니 하는 소소한 이야기를 하다 문득 서로의 소원에 대해 묻게 되는데 모든 일에 장난으로 일관하던 이들이 꽤 진지해진다. 아픈 아내가 쾌차하기를, 어린 자녀가 건강하게 성장하기를, 그렇게 우리 가족이 행복하기를.. 웃자고 보는 티비에서, 그것도 어떻게 보면 별 거 없는 저 기도 제목들에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사랑하는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고 함께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 어쩌면 가장 당연하고도 필요한 바램이다. 그렇기에 언제부턴가 우리에게 가족의 행복 같은 건 꽤 따분한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가족이라는 개념조차 고루해져 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힐링 판타지 소설로 꽤 큰 반향을 일으킨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 1층에 <메리골드 마음 사진관>이 들어섰다. 영혼이 쉬어가는 메리골드를 지키는 인물들은 전작과 같다. 여전히 마음 세탁소는 성업 중이고, 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따뜻한 김밥과 어묵 국물을 내어주는 우리 분식도 그대로다. 그리고 어떻게 소문이 났는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우연히, 혹은 필연적으로 메리골드를 찾고 이번에는 행복했던 순간들과 미래를 찍어주는 신기한 마음 사진관에서 함께 사진을 찍는다.


네 개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 또한 전작과 비슷하게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마주치던 이들과 닮아있다. 세상의 끝까지 몰려 함께 세상을 등지러 마지막 여행을 떠나온 부부와 어린 딸, 성공한 커리어를 가졌음에도 사랑받는 법을 배우지 못해 늘 불행했던 여자, 이루어질지 모를 꿈을 찾아 방황하다 어떻게 마을로 흘러든 청년, 지금도 가족을 위해 살고 있지만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워킹맘의 이야기까지.


그들이 바라는 행복과 그들이 한 때 가졌던 행복의 순간들은 괜히 콧날을 시큰거리게 한다. 언제부턴가 열심히 살고, 돈 많이 벌어 성공하면 찾아올 줄 알았던 성공의 모습. 하지만 하나같이 마음 사진관에서 마주한 그들의 행복은 그런 곳에 있지 않았다. 어쩌면 늘 옆에 있어서 놓치고 살았던, 너무나 당연해서 원래 그런 줄로만 알았던 어제의 장면 장면 속에 그들의 진짜 행복이 있었다. 찰나의 순간. 훅 지나가서 놓치고 있는 그 순간을 마음 사진관은 한 장의 사진으로 그려낸다.


어쩌면 뻔한 이야기. 이전 같으면 흔하디 흔한 이야기였을 텐데 왜 이렇게 마음이 쨍한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막장과 도파민에 길들여진 우리는 어쩌면 이런 착한 이야기가 필요한 것인지도. 사실 이 대목에서는 조금 서글퍼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편의 단어 - 당신의 삶을 떠받치고 당신을 살아가게 하는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24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이기주 작가의 전작이 시큰둥한 편이었다. 전작 <말의 품격>, <언어의 온도>, <글의 품격> 모두 문장은 참 예쁘지만 그것이 과해 사족이 길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이후 한동안 그의 책에 손이 가지 않았던 것도 있다.

기차 안에서 우연히 그의 책 제목을 보았다. 물론 신간이라 눈에 띄는 자리에 있었던 것이 더 컸겠지만 <보편의 단어>라니. 보통의 존재, 일상의 언어.. 왜인지는 모르지만 뭐 이런 평범한 단어에는 괜히 눈이 한번 더 가곤 한다. 하여튼.


개인의 정체성과 그가 즐겨 사용하는 단어는 무관하지 않다. 어쩌면 우리의 정서와 사유 체계는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모른다.(전자잭p.12)


책을 집어 들어 읽던 중 책 첫머리에 있었던 이 문장이 이 책을 끝까지 붙들게 만들었다. 집중하게 만들었고 한 단어 한 단어 곱씹다가 끝내는 왜 내가 이기주 작가에 대한 그런 오해를 했을까 반성하게 만들었다. 맞다. 이 책 참 괜찮았다.


책은 우리 주변에 널린 평범한 단어들에 대한 작가의 해설이다.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은 섬세하며 강직하다. 보편의 단어 속에 숨은 이야기를 그는 그렇게 세심하게 또 명징하게 우리에게 들려준다. SNS, 관계, 편견, 비판 등 개인적으로도 고민하고 생각하던 주제들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를 읽으며 고개가 끄덕여질 때도 있고 또 어떤 단어에 대한 글에는 댓글을 달며 이 단어를 가지고 한번 제대로 이야기 해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언젠가 노희영 씨의 책에 대해 꽤 안 좋게 이야기했던 적이 있다. 누군가는 인생 책이라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저 그랬고, 뉴스와 각종 가십에서 보이는 그의 언행 또한 그를 나쁜 사람이라 여기게 했다. 사실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 못한 이에게 이런 편견을 갖는 것 자체가 안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인이니까.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 생각해서 조금 더 나이브했었나 보다.

꽤 악평을 심하게 남겼었는데 놀랍게도 파란 딱지를 단 노희영 님 본인이 직접 댓글을 남겨주셨다. '고견 감사합니다 이모티콘 하트하트' 한 번에 끝난 의례적인 댓글이 아니라 몇 개를 내려가며 짧은 대화를 나누기까지 했다. 본인은 자신의 모든 댓글과 서평을 직접 보신다고. 그리고 이런 이견들이 발전을 만들어 낸다고 생각한다고. 꽤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이전부터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이야기하지 말자를 입버릇처럼 달고 살았는데 눈에 마주하지 않는 이라 하여 너무 쉽게 얘기해 버렸다.

이후로 어떤 글이던 함부로 남을 깎아내리지 않으려 한다. 나 말고도 이미 그런 이들은 넘쳐나니까. 책에도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다 더해 저자는 이 편견을 '심리적 지름길'이라 부르며 주의하라 말한다. 빨리 판단하고 상황을 쉽게 확정 짓는 것만도 문제인데 이 편견의 길로 한번 접어들면 타성에 젖는 경우가 많아 더 헤어 나오기 힘들다고. 크게 밑줄을 그었다.


불친절하긴 쉽지만 친절하긴 어렵다. 게으르긴 쉽지만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긴 어렵다. 더러운 걸 발견하고 욕 하긴 쉽지만 묵묵히 그 자리를 청소하긴 어렵다. 그런데 세상은 이 어려운 일에 자신을 맡기는 이들에 의해 움직인다. 우리 모두는 이 두 가지 선택 중 하나는 보편의 모습으로 가지고 있다. 당신은 어떠한가? 어떤 단어들이 당신을 규정하고 있는가?

괜히 나의 오늘을 되짚어 보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가 작별 인사를 할 때마다
마거릿 렌클 지음, 최정수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31년 로워 엘리배마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2018년 내슈빌까지 이어진다. 4대를 이어내려간 한 가족의 이야기이자 그들과 함께 한 모든 것들 풀벌레, 파랑새, 폭풍우, 토마토, 어치 등의 이야기다. 이동진이 추천했다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책은 작고 소중한 것들에 대한 세세한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어떻게 보면 오늘 관찰한 것들의 일기 같기도 하고, 무던하게 그려간 기록하고 싶은 날의 풍경 같기도 하다. 로워 앨리바마, 버밍행, 콜라라도 등지를 오가며 그의 이야기를 듣는 건 꽤 즐거운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아직은 세상이 조금 덜 발달했을 때에 그의 곁에는 파랑새도 있었고, 갈색 집 굴뚝새도 있었다. 연못에 내려앉은 수련 때문에 개구리나, 밤, 거북이가 살아갈 공간이 사라진다는 걸 알고 있었으며, 늙은 개과 붉은 꼬미 말똥가리가 있었다. 그리고 저자가 태어나던 날 사랑스러운 아기를 중심으로 기꺼이 우주가 되어준 사랑하는 친족들이 있었다. 


아이는 자란다. 까마귀가 탐내는 홍관조의 알과 그것을 지키고자 하는 어미 새의 몸부림을 보며, 굴뚝새가 아기 새에게 물려주는 애벌레들을 바라보는 눈이 옆에 달린 어치의 겅중거림을 보며 그렇게 이 죽음들을 딛고 일어서는 또 다른 세계를 보며.

이는 비단 곤충과 동물들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종조부, 조부모, 심지어 부모님들까지 저자라는 태양을 지켜주던 우주들은 하나씩 제 시간에 맞추어 소멸되었고 그와는 반대로 또 다른 태양은 태어나고 저자 또한 어느덧 아이를 보호하는 우주가 되었다. 


가만히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언젠가 있었던 시골집 툇마루에서 손자인 내게 선풍기를 양보해 주고는 개와 닭과 고양이가 있던 마당을 물끄러미 내다보던 할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고, 지금은 TV에서나 볼 수 있는 새나 다른 동물들의 탄생과 죽음의 광경들이 어지럽게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가 작별을 이야기할 때마다' 책의 제목을 계속 곱씹으며 지금 우리게 헤어짐을 고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생각하기도 했다.


circle of life. 생명의 순환이라는 라이온킹을 지나는 커다란 주제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죽음이 그것에 그치지는 않는다는 것, 그것을 딛고 또 다른 생명이 피어나고 그렇게 새로운 세대가 이 땅에 찾아온다는 것. 그것은 자연스럽고, 어떻게 보면 거룩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꽤 마음이 쿵쿵거리는 책. 연휴는 이미 많이 지나버렸지만 지금이라도 조용히 이 책을 잡으시길 추천드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둑맞은 집중력 -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법
요한 하리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는 더 빨리 걷고 더 빨리 말하며 더 오래 일하라고 명령하는 문화에 살며, 바로 거기서 생산성이 나온다고 생각하게끔 배웠다. (중략)  사람들 대부분은 속도를 늦추지 못하는데, 그렇게 하면 일자리와 사회적 지위를 잃을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국인의 56퍼센트가 1년에 단 1주일의 휴가를 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에게 집중력 개선을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을 말하는 것이 그토록 쉽게 잔혹한 낙관주의로 변질되는 것이다. (p.299)


1. 지금 아이폰을 켜서 확인한 나의 스크린타임은 일일 평균 5시간 53분이다.(이것도 지난주 대비 34%나 떨어진 수치라고 한다) 조금 더 뜯어보자면 소셜미디어에 6시간 32분을 투자했고 정보 및 도서에 4시간 36분을 사용했다. 게임에 3시간 9분을 갖다 버렸으며 이하 쇼핑 및 음식, 엔터테인먼트 순이다. 일일 평균 149번의 화면을 깨웠으며 제일 먼저 사용한 앱은 블로그 64번, 다음이 45번이다. 불행 중 다행인 건 인스타는 24번 페북은 12번에 그쳤다. 알람은 324번 울렸는데 팀즈가 176번, 당근이 134번이다. 카톡은 76번에 그쳤다. 


굳이 이 숫자를 보지 않더라도 최근 손목에서 울리는 이 알람이 진절머리나 워치를 벗어던진 적이 있다. 손목에 터널 증후군이 생긴다면 아마 워치 때문일 거라 말하며 예전에 처박아둔 시계를 고쳐 차고 다녔다. 하지만 단지 일주일이었다. 내 손목에는 다시 애플워치가 채워졌고, 워치의 알람에서 팀즈와 당근을 빼는 것으로 스스로 합의를 봤다. 여전히 내 당근 리스트에는 애플워치 울트라가 자리하고 있다.(비싸서 못 삼)


아마 누구의 사정도 그렇게 녹록지 못할 것 같다. 우리 모두는 하루 24시간 중 많게는 1/3, 적잡아도 1/5 이상을 스마트폰을 깨우거나 혹은 폰이 우리를 깨우는 세월을 보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소수마저 코쿤이 했다는 디지털 디톡스(요즘 이 금욕 상자가 또 불티나게 팔린단다) 같은 방법으로 개인의 자제력에 기대 해결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미 이는 개인이 막아설 수준을 넘어셨다.


2.OTT가 주범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들이 극장을 예전처럼 찾지 못하는 이유를 이 집중력에서 찾는 사람도 있다. 10분에서 5분, 5분에서 1분 이내의 쇼츠로 길들여진 이들에게 2시간의 러닝타임은 지옥 그 자체라고 한다. 극장 올빼미가 예전에는 비매너 중의 비매너였는데 요즘은 꽤 자주 보이는 게 이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3.SNS의 순기능을 이야기하며 빠르고 광범위한 지식 습득을 이야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단언한다. SNS를 통해 우리는 짧고 단순한 발언을 하며, 보는 이는 그 즉시 세상을 이해하는(척 해야) 하고, 동의하든 반대하든 좋아요나 댓글을 달 것을 강요받는다. 그런데 알고리즘에 의해 거의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글만 보이기에 반대 의견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성장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생각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뿐이다.


<도둑맞은 집중력> 제목 그대로 저자는 몰입하지 못하는 우리 시대를 14가지의 현상을 들어 조망한다. 멀티태스킹, 수면 부족, SNS, 자기 합리화(문제는 네 안에 있어), 싸고 형편없는 식단, 신체적 심리적으로 감금된 아이들 등 몰입하지 못하는 세대의 이유 뿐 아니라 잘못된 ADHD의 진단, 텍스트를 읽지 못하는 사람 등 몰입하지 못하며 발생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도 꽤나 예리하게 짚어 낸다. 그리고 이것이 개인의 실패가 아니라 현대사회에 일어난 구조적, 집단적인 문제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개인적, 사회적 해결 방안 등을 제안한다. 


저자가 스스로 해결한 집중력의 문제를 대처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사전 약속을 통해 지나친 전환을 멈춤 

2. 나의 산만함에 반응하는 방식을 바꿈(나를 게으르게 여기보다 다른 것에 집중함). 

3.SNS를 사용하는 시간을 줄임. 

4. 생각이 배회하게 내버려둘 뿐 아니라 배회하는데 집중함. 

5. 정해진 수면시간을 지킴. 

6. 자녀나 어린 아이들의 삶에 깊이 관여함.(최대한 자유롭게 놀아줌)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방법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1. 감시 자본주의를 금지(SNS 등) 

2. 주 4일 제 도입 

3. 아이들이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어린 시절을 되찾게 도와줌


최근 들어 계속 고민하던 주제라 꽤 많은 밑줄을 그으며 읽었고, 마음이 슬프면서 울렁거렸다. 나도 모르게 빼앗긴 내 시간이 아까워서이기도 하지만 자꾸만 아무 생각 없이 거꾸로 가는 우리가 좀 답답해서 인지도 모르겠다. 맞다. 싸우지 않으면 얻을 수 없다.

워치는 팔아버리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는 하루키를 좋아한다. 딱히 왜인지 이유를 말하긴 좀 어렵지만 하여튼 좋아한다. 그의 이름을 알린 <상실의 시대>가 딱 나의 대학시절 유행했고, 그때부터 하루키의 소설은 다 찾아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단한 감동이나 무언가 설명하지 않고는 못 배길 커다란 앎이 몰려온 것도 아니다.(물론 그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조금 결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키를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스스럼 없이 예라고 답한다. 


이 책은 1980년에 중편소설로 문예지 <문학계>에서 출판되었다. 당시만 해도 신인작가였던 하루키는 이후 여러 문예지에 실었던 단편들을 엮어 책을 출판하곤 했는데 단 하나 빠져있던 작품이 이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었다. 그렇게 하루키 덕후들 사이에서도 미스터리에 가까웠던 이 책이 43년 만에 세상에 나왔다. 나는 이 책은 선물 받은 후 연휴를 기다렸고, 하루의 시간이 주어지자 한 호흡으로 읽어 내려갔다. 

하루키의 거의 모든 책이 그렇지만 덕후들은 이 초현실적인 경계를 즐기고, 이 논리도 순서도 없는 장난을 싫어하는 이들에게 하루키의 이야기는 고역이다. 이 책도 그렇다. 


소년과 소녀는 여느 고등학생 연인이다. 하지만 소녀는 소년이 어느 이상 다가오는 걸 막아서며 막연히 어느 '도시' 이야기를 건넨다.  어느 날 소녀가 사라지자 소년은 직감한다. 소녀가 그 '도시'로 떠났음을. 소년은 소녀를 찾아 도시로 가기로 한다. 벽을 높이 쌓은 도시의 입구의 문지기는 이 문을 넘어서면 다시는 본래 세계로 돌아오지 못할 거라 한다. 소년은 그림자를 떼어버리고 도시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 도서관에서 꿈 읽는 이가 된다. 소년은 소녀를 마주하지만, 소녀는 소년을 알아보지 못한다. 소년은 도시에서 도망치기로 하지만 문지기의 말대로 소년은 나갈 수 없다. 하지만 떼어버린 그림자가 있다. 소년은 그림자의 탈출을 돕고 도시 안에 남는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나는 중년이 된다. 출판업계를 그만두고 어느 작은 마을의 도서관장으로 일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전임 관장인 고야스 씨의 유령과 교류하게 된다. 이상한 일은 하나 더 있는데 도서관의 모든 책을 무서운 속도로 읽어 내려가는 M소년이 그러하다. 어느 날 소녀처럼 M소년도 갑자기 자취를 감춘다. 나는 직감적으로 소년이 그 '도시'로 향했음을 알게 된다. 소년을 찾아 나는 언젠가 마주한 적이 있었던 것 같은 도시의 벽 앞에 선다. 그리고 나는 다시 나와 만난다.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현실이 아닌가? 아니, 애당초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 짓는 벽 같은 것이 이 세계에 실제로 존재하는가?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틀림없이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불확실한 벽이다. 경우에 따라, 상대에 따라 견고함을 달리하고 형상을 바꿔나간다. 마치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p.684)


도시 안에서 꿈을 읽던 나와, 세상에 던져서 고된 삶을 살아나가는 그림자. 나는 어떤 모습일까? 문지기는 그림자 같은 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했지만 결국 그림자의 삶 또한 우리게 필요한 것, 우리를 자라게 하는 것들이었다(사랑, 슬픔, 망설임 같은 감정).

누군가는 억지로 이 둘을 구분 짓지만 우리는 살아가며 알게 된다. 도서관에서 꿈을 읽는 나도,  도서관에서 일을 하는 나도 결국 나로 귀결되는 하나의 존재라는 걸.

그럼에도 이 둘을 갈라 놓는 벽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이 벽은 상대에 따라 형상을 바꾸어 나간다. 마치 생명체처럼. 이제 하루키는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그림자인가? 꿈 읽는 소년인가? 당신의 벽은 어떠한 모양인가?


"글쎄요. 어느 쪽이건 상관없지 않나 싶습니다. 내가 나 자신이 본체 건 그림자 건. 어느 쪽이 됐건 지금 이렇게 여기 있는 내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내가 곧 나인 거죠. 그 이상은 알 수 없습니다. 아마 당신도 그렇게 생각해야 할 거예요"(p.754)


나는 지금도 내가 왜 하루키를 좋아하는지 명징하게 답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하루키를 좋아한다. 그것도 꽤 많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