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 일터의 죽음을 사회적 기억으로 만드는 법
신다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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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김 군, 태안화력발전소 김용균, 지난해 SPC에서 일어난 산재사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게 산재인 줄 알았다. 그런데 통계는 하루에 두 명 꼴로 노동자가 그들의 일터에서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다고 말한다. 어떻게 보면 뉴스에 보도된 사례들은 운이 좋은 케이스인지도 모른다는 거다. 우리는 얼마나 한편만 보고 안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다. 칼에 손을 깊게 베였는데 하필 주말이었던 터라 병원 응급실을 이용해야 했다. 나름 꽤 상처가 깊어(보여) 서 택시까지 잡아타고 응급실에 도착해서 의사를 기다리고 있는데 저쪽 어딘가에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울부짖음이 들렸다. 사람이 낼 수 있는 소리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괴성이었는데 그때 슬쩍 돌아본 광경이 지금도 가끔 떠오른다. 한쪽 팔이 없는 상태에서 피에 찌들어 아무렇게나 감긴 붕대(아니 그게 붕대인지 휴지 뭉텅이인지도 불명확하다) 그리고 모든 구멍에서 물을 뿜어내고 있는 남자의 괴성. 외국인 노동자였는데 프레스기에 팔이 끼였다고 한다. 내 상처 난 손가락을 한참을 구석에서 쳐다보다 간호사에게 응급처치를 받고 돌아 나왔다.

그는 잘 치료받고 고국으로 돌아갔을까? 아마도 이 책의 내용을 보아 한 즉 왠지 그렇지 못했을 것 같다는 슬픈 예감이 든다. 

오늘도 2명이 퇴근하지 못했다. 그랬다. 이 책은 오늘 함께 출근했으나 함께 퇴근하지 못한, 다시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그 2명에 관한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하루에 두 명. 노동자들은 자신의 일터에서 목숨을 잃는다.


1장을 읽고 마음이 아려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생각했다. 1장은 평택항에서 목숨을 잃은 이선호 씨에 관한 이야기, 현장에 있었던 이들의 증언을 토대로 그가 어떻게 사망했는지, 또 그 주검을 눈앞에 둔 그의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는지 세세히 이야기한다. 그의 죽음은 운 좋게도(?) 굉장한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그의 안타까운 이야기는 모두의  이목을 끌었고 정치와 언론은 당장이라도 이 시스템을 뜯어고칠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관심이 사그라들며 7개월을 끈 지지부진한 재판의 결론은 '관리 감독의 의무를 해태 한' 기업 및 관리자들의 벌금과 집행유예였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사건은 그나마 사회적 관심을 받은 사건이었다. 아마 지금도 해결되지 못한 사건들은 오늘도 무관심 속에 어제 내련 판결과 비슷한 판결이 내려질 것이다. 산재사고의 현장 속에 있는 이들은 한 목소리로 이는 구조적 문제라 외치지만 이 목소리는 거의 모든 재판 과정에서 무시된다.


저자는 책의 2부에 산재에 관해 이야기한다. 사측은 집요하게 산재가 아니라 개인의 실수 혹은 일탈이었음을 강조하려 한다. 일견 그런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저자는 산재의 원인을 구조적 한계에서 찾는다. 2022년 중대재해 처벌법이 시행되자 "작업자가 제 목숨 함부로 다루는 것까지 회사가 책임져 줘야 하느냐"라는 실제 있었던 목소리의 빈틈이 무엇인지, 왜 그들은 산재사고를 당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는 꽤 오랜 페이지를 들여 설명한다. 그리고 당부한다. 당신도 산재사고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3부는 이러한 산재가 왜 숨겨지고 터부시되는지에 대해 4부는 이 산재가 건설이나 기계를 다루는 일부 노동자들의 문자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임을, 우리가 어떻게 이 산재를 이해하고 접근해야 하는지 이를 넘어 우리는 어떻게 연대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들려준다.


책은 기자가 평택항에서부터 산재 현장을 쫓아다니며 취재한, 그리고 그렇게 그가 알게 된 산재에 대한 기록, 꽤 깊이 있는 대한민국 산재에 관한 르포다. 사실 책을 읽으며 마음이 좀 답답해졌다. 하루에 두 명. 함께 출근했으나 퇴근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 두 명이 내가 되지 않기를 감사해하며 퇴근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꽤 숙제를 많이 남기는 책이다.


*산재에 관한 당사자를 알고 있거나 본인이 당사자라면 한 번쯤은 정독하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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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다잉 프로젝트 -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본격 장르만화 단편집
봉봉 지음 / 씨네21북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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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이거 만화책입니다!!!!] 


이런 유의 이야기를 예전에는 SF 공상과학만화라고 불렀던 것 같다. 과학이 극도로 발전하며 우리에게 있을 법한 일들. 이를테면 로봇이 인간의 지능을 가졌을 때 인간은 노동에서 해방될 것 같지만 오히려 기계의 노예가 되어버린 세상을 두려워했고, 게놈프로젝트로 인간은 질병에서 해방될 것 같았지만 치료용으로 만들어진 인간은 그럼 인간이 아닌가라는 윤리적인 문제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리고 이 논쟁은 이제 공상과학이 아닌 우리의 현실로 다가와 삶의 여러 부분에서 치열한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정치적, 종교적 또 현실적 입장에 따라 공방을 지속한다. 

이 책에도 나오듯 인공 자궁을 통해 태어난 이를 어떻게 볼 것인가? 기계가 배양한 아이를 사람으로 볼 수 없다면 시험관은? 인공수정은 또 어떻게 받아들 일 것인가? 


조금은 치열한 질문을 하기 전 이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이 책에 담긴 여섯 편의 단편만화는 SF 판타지, 블랙코미디, 페이크 다큐 등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올 미래와 그 미래에 처하게 될 인류를 비꼬고, 경고한다. 다음은 이 책에 담긴 여섯 개의 이야기의 시놉이다.


1. 웰다잉 프로젝트는 리얼리티쇼의 형식을 빌어 죽음을 생중계한다. 거대한 쇼 앞에 죽음은 엔터테이먼트가 된다.

2. 쥐가 손톱을 먹고 사람이 된 이야기를 들은 주인공은 자신의 손톱을 햄스터에게 먹인다. 쥐를 사람으로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이렇게 쓸데없는 인간이라니.

3. 모든 걸 집어 삼키는 변기를 신으로 숭상하는 사이비 마을에서 벌어진 이야기

4. 인공 자궁이 상용화 되며 인공 자궁을 둘러싼 사람들의 태도는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한다. 윤리는?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5. 유전자 조작을 통해 모두가 평등한(외모가) 세상을 만들었다지만 진짜 평등은 무엇일까?

6. 유튜브 조회 수를 위해 버스를 납치한 멍청이들이 있다. 그들의 운명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충분히 올범직한 미래. 아니 이미 와 있는데 우리만 모르고 있는 세상으로 저자는 우리를 초대한다. 그리고 이 일들이 눈앞에 벌어졌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지 우리에게 묻는다. 한 시간 남짓이면 읽을 수 있는데 읽고 난 후 후폭풍이 어마어마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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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과 한국 - 랩 스타로 추앙하거나 힙찔이로 경멸하거나
김봉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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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바야흐로 고딩2학년 나의 99년은 폭풍 같은 시기였다. 서태지를 대장으로 모셨고, 듀스에 심취했으나 또 한쪽에 크리스천으로 '가지마라 보지마라 듣지마라 하지마라'는 메세지에 방황하던 나의 고딩 시절. 드렁큰 타이거의 등장은 뭔가 '이제 진짜가 나타났다'라는 선언이었다. MC스나이퍼, 조PD, 김진표 소위 랩으로 먹고사는 뮤지션들이 등장했고 여기 DJ.DOC 같은 댄스그룹인 줄 알았던 이들까지 힙합에 가세하며 2000년대 초반 내 플리는 거의 이들로 채워졌었다.


그리고 2000년대 후반부터 거짓말 같이 나는 힙합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책에도 나오지만 아마 <쇼미 더 머니>가 등장하던 시즌 혹은 그 즈음이었을 것이다. 글쎄 이전에 내가 알던 헝그리로 가득했던 모두 함께 으쌰하던 홍대 힙합 신은 이미 없었다. 나는 처음 듣는 래퍼의 이름을 모른다 하면 그 길로 '힙찔이' 취급 당했고, 남들에게는 힙합을 가지고 장난치지 마라면서도 자기들은 모든 것에 성을 내고, 모든 것을 깠다. 쇼미 더 머니. 맞다 그때부터였다. 예전에는 힙합바지에 길어 늘어뜨린 체인 목걸이가 그들의 상징이었다면, 이제 그들을 대표하는 건 고급 시계 외제차 예쁜 여자들을 잔뜩 옆에 끼고 있는 마초의 모습이었다.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다 할지언정, 나 같은 일반인에게 힙합이란 일단 잘 모르겠는데 자기들끼리 세상에 없던 음악을 하는 멋쟁이 코스프레에 세상으로부터 전향적이고 열린 태도를 기대하면서도 본인들 스스로는 한없이 닫혀있고 폐쇄적인 이들로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때 즈음이었나? 타이거JK의 마지막 앨범을 끝으로 나는 더 이상 힙합이 궁금하지 않았다. 


이런 내게 한국 힙합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이 찾아왔다. 책을 읽으며 나는 서태지에 열광하던 나의 고딩시절로, 스나이퍼를 흉내 내던 나의 대학시절로, 아직도 내 옷장에 곱게 자리하고 있는 20년 전 내 힙합바지를 떠올렸다. 'Why not?' 트레이드 마크처럼 늘상 내가 입에 붙이고 살던 질문들과 한때 무겁게 걸고 다니던 FUBU 체인 목걸이, 그리고 모두가 쫄쫄이 바지를 입을 때 나 홀로 입던 힙합바지와 야구 저지를 떠올렸다. 


힙합은 무함마드 알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알리가 전성기일 때 힙합은 태어나지 않았지만 알리는 흔히 힙합의 선구자로 불린다. 태도에 관한 것이다. 애송이 시절에도 어떤 거물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는 용기, 지금은 이룬 것 하나 없지만 앞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되겠다는 포부와 호언장담, 호전적이고 자존감 충만한 그의 태도가 힙합 문화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정설이다. 힙합을 만든 흑인 래퍼들은 '흑인 영웅' 알리를 보고 자랐으니까.(p.118)


힙합이 뭐예요? 라는 질문에 우스개로 대답하지만 힙합은 '애송이 시절에도 어떤 거물 앞에서도 움츠러들지 않는 용기, 지금은 이룬 것 하나 없지만 앞으로 거대한 무언가가 되겠다는 포부와 호언장담'이었다. 

나는 애송이 시절 이 힙합을 사랑했고, 책을 덮으며 어린 날의 내가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서류더미에 머리를 파묻고 '그건 내 책임이 아니에요'를 앵무새처럼 반복하는 오늘의 내가 심하게 짜쳐 보이면서 말이다.


힙합을 좋아한다면, 힙합이 궁금하자면, 언젠가는 힙합을 해야지 생각한다면 무조건 추천이다. 나와 함께 90년대 중고딩을 보낸 이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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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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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나혜석과 후미코를 엮어 1930년에 여행한 여자들이라는 기획도 기가 막혔는데, 그것과 비슷할 정도로 멋진 책이 나왔다. 1920~30년대의 경성 그것도 맛집 이야기라니.. 이런 기획은 도대체 누가 하는 건지 존경스럽고 사랑스러울 정도다.(왜 나는 이런 기획을 하지 못하는 가에 대한 자책도 ㅠ_ㅠ)

그랬다. 서슬 퍼런 식민지를 살아내던 시기에도 조선에는 모던보이, 모던 걸이 있었고 경성은 그 조선 팔도에서 제일 가는 도시였다. 망한 조국의 수도라지만 그곳에도 사람이 살았고 멋이라는 것이 있었으며, 나라 잃은 백성이 어떻게 치열하게 살아내야 했는지에 관한 삶의 이야기가 묻어있다.

책은 방대한 자료를 정리해 당시 경성에 실제로 있었던 10곳의 맛집을 소개한다. 백 년 전 경성에 존재했던 화려한 10개의 식당은 거의 사라졌지만, 김두한이 단골이었다던 <이문식당>이라는 설렁탕집은 아직도 종로에서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이 식당들의 기록을 찾아 경성 맛집들의 위치와 건물, 메뉴판에는 어떤 음식이 있었고, 누가 주로 이용했으며 가격은 얼마나 했는지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실 이것만으로도 흥미롭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가 저자는 당대 소설 속에 기록된 이 식당들의 이름을 찾아낸다. 가령 오전에 <미도의 향불>속의 숙경과 영철이 지나간 청목당의 나선형 계단을 그날 오후 <삼대>의 경애와 상훈이 함께 지나가는 설정은 상상만으로도 흥미롭다.(혹은 이들은 그 계단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른다!) 이야기가 흔치 않던 시대의 이야기들을 좇아, 식당을 매개로 두 개의 이야기를 하나의 세계관 아래 풀어나가는 이야기들은 정말이지 재미있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가 한 화면에 등장하기 전에 우리에게도 이런 세계관이 있었다. 이런 상상력은 진짜 와(최고)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식당이 우리 민족에게는 어떤 의미였는지 찾는다. 서슬 퍼런 시대. 누군가는 그 식당과 카페에서 식사를 하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셨을 것이며 또 누군가는 하루에 그 식당 앞을 몇 번이나 오가는 인력거꾼으로 살았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성냥팔이, 또 다른 누군가는 청소부였을지도 모른다. 독립운동을 준비하며 그 식당에 숨어들어야 했던 이들에게 이 식당은 죽어도 잊지 못할 장소가 될 것이다.(조선공산당이 창립된 곳이 이 책에서 소개된 <아서원>이다.)


거의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책임에도 이런 저런 상상에 꽤 신나게 읽었다. 책을 빨리 읽는 편인데 가능하면 모든 사진과 삽화를 주워삼키느라 정말 한참을 붙잡고 있었다. 읽다 말고 어떤 식당은 한참을 주변에 앉아있는 이들에게 소개하기도 했다.

다음은 이 책에서 기록하는 경성 맛집 리스트다.


경성의 핫플레이스! 조선 최초의 서양요리점 청목당

옥상정원과 아이스크, 가족의 나들이 명소 미쓰코시 백화점 식당 → 현재 신세계백화점 본점

술로 꽃피우던 사랑과 연회의 공간 일본요리옥 화월

남국의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과일 디저트 카페 가네보 프루츠팔러

경성 유일의 정갈한 조선 음식점 화신백화점 식당

김두한의 단골 설렁탕집 이문 식당

평양냉면에 필적하는 경성 냉면집 동양루

최초로 정통 프렌치 코스 요리를 선보인 조선호텔 식당

이상, 박태원의 단골 카페이자 예술가들의 소일터 낙랑파라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했던 고급 중화요리점 아서원


백 년을 거스른 시간(그것도 맛집) 여행. 이 즐거운 여정에 당신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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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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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듀엣'이라는 단어의 뜻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읽다 보니 알게 되었다. 11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책에는 진짜 귀신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귀신같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때론 홀로그램으로 소환되는 죽은 이들의 모습도 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들은 저마다 뜨겁게 사랑하고 뒤돌아선다. 몇몇 그 사랑이 이승에서 차마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더라도 그들은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마음으로 닿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최선을 다해 그에게 다가간다. 그렇게 닿을 수 없는 이에게로 가는 길에 만난 이들은 또 다른 연대의 가능성을 내비치며 산다. 살아간다.


11개의 단편은 이제 이야기가 시작되려나 싶으면 끝나고, 인물들의 이름을 외워갈 때쯤 멈춘다.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책을 읽으며 마치 내가 귀신에 씌인 느낌이기도 했다. 내가 무얼 본 것인가? 책장을 아무리 되돌려봐도 내가 멈추는 지점은 똑같았다. 이런 의미에서 저자는 불친절하다. 저자가 멈춘 지점 이후에 일어날 일들은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책을 덮고 잠자리에 누워 이야기를 하나씩 꺼냈다. 남은 이들은 어떤 삶을 영위했을지 생각했다. 나는 잠을 설치고 말았다. 그들의 행복을 빌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들이 행복하기에 쉽지만은 않은 세상이다.


“소수자 옹호라는 시적 사명을 올곧이 수행하며 자신만의 시 세계를 밀어붙였다”(신동엽문학상) “풍부한 인간의 삶과 감정과 이야기가 있고 사회적인 자의식이 독특한 방식으로 표명돼 있다”(김준성문학상)고 평가받은 저자는 그의 첫 단편소설집에서도 그의 사명을 다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좀 불편하기 읽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는 끝까지 자신의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그가 말하는 귀신은 비단 죽은 자의 모습이 아니다. 살아있으나 살아있지 못한 이들, 살고 싶으나 삶을 영유하지 못하는 이들을 생의 구석구석에서 찾아낸 저자는 끊임없이 그들에게 말을 건다. 포기하지 말라고. 함께 살아가자고.


책의 제목이기도 한 단편 <고스트 듀엣>에서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형우가 홀로그램으로 등장해 사랑하는 이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첫 소설집을 낭독한다. 살아남은 이는 아마 평생 동안 그 홀로그램을 소환하여 그 소설을 읽고 또 읽을 것이다.


몇 번을 썼다 지웠다. 소설을 통해 고발하는 혐오와 차별, 폭력의 이야기를 오롯이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오늘이기에 이 책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민망할 정도로 조심스럽다.


"그의 얼굴을 왜인지 남겨진 인간의 표상으로 삼고 싶었다.

마음을 다해 잊고자 하는 얼굴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기억하고자 하는 그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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