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날아 차 - 작심삼일 다이어터에서 중년의 핵주먹으로! 20년 차 심리학자의 태권도 수련기
고선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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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권도에 얽힌 기억이다. 어릴 적 엄마는 나를 태권도 대신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내가 딱히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란색에 까만 피아노가 그려진 가방은 무언가 남자 아이입장에서 수치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숨어 지내던 어느 날, 태권도복을 입은 친구와 노란 가방을 든 나는 길에서 만나고 말았다. 위아래로 나를 스캔하다 내가 들고 있던 노란색 피아노 가방에 눈이 멎은 녀석은 (들으라고) '칫 ㅋㅋ'하며 노란 가방과 나를 비웃었다. 그날 그 가방을 집 바닥에 내팽겨치며 나도 태권도 보내달라고 얼마나 울었던지.


2. 선배가 태권도 사범이어서 도장에 들른 적이 있다. 동네 어귀에 위치한 태권도장은 (한 번도 가보진 않았지만) 딱 내가 생각했던 그곳이었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와글와글 모여있고, 간식을 먹고, 한두 시간 태권도를 배우다 집으로 돌아가는 곳. 그런데 뒤에서 들은 선배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달랐다. 요즘은 태권도를 배우기 위해 오는 아이들보다 하교 후 안전한 곳에서 시간을 때워야 하는 아이들이 더 많다고.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하교 후 아이들을 학원에 돌리는 데 그 중에서도 배워두면 뭔가 자기를 지킬 수 있고, 하굣길 봉고차 운전 확실하고, 가끔 주말에 아이들 데리고 놀이동산도 가주는 태권도장이 1번이란다. 어쩐지 그 옛날 들기 싫은 피아노 가방 든 내 모습에 저 아이에게 보인다더니.


3. 그 와중에 가끔 그 중간에 끼여있는 어른들이 보였다. 당연히 검은띠 혹은 사범님이라고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수강생이란다. 선배는 가끔 배우러 오시는 성인들도 있다며 대단하신 분들이라고 추켜세웠다. 태권도? 나도 운동하지 않으면 큰일 날 나이가 되면서 꽤 여러 운동을 머릿속에 떠올렸는데(골프, 테니스, 러닝, 쇠질...) 태권도는 한 번도 후보로 꼽은 적이 없다. 애들이 하는 스포츠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일까. 군대에서의 PSTD가 찾아온 것일까. 선배는 어른들이 배우는 경우가 더 오래 다니고 제대로 즐겁게 배우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리고 가끔은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아니라 같이 늙어가는 친구 처지에서 본인이 배우는 게 더 많다고.


4. 책은 그런 수강생, 50대에 태권도를 시작한 동네 아줌마의 이야기다. 특별히 운동을 해본 적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고, 움직일 일도 없다고 생각한 아줌마 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태권도, 태권도를 하는 나, 그리고 태권도가 주게 되는 것들 관한 이야기. 다이어트가 목적이 아니라 꽤 포괄적인 '건강한 삶'을 목표로 두고 하는 태권도 이야기는 꽤 깊고, 묵직하다. 품새, 겨루기, 격파 등 어디서 들어본 태권도 용어들이 어떤 의미인지 이를 통해 알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아줌마의 시선은 생각보다 따뜻하고 정겹다.

그 눈으로 태권도장에서 만나게 되는 소소한 풍경들, 태권도인이 됨으로 일어나는 생활의 변화들. 이 소소한 작은 움직임들도 그렇다. 태권도장에 등록하고 태권도라는 운동을 시작했을 뿐이지만 이 작은 행동은 삶에 꽤 큰 파도를 가져온다. 저자의 말처럼 신체적 고통이 있을 때나 인식했던 신체감각들을 조금 더 자주 예민하게 발견하는 경험. 나도 제법 궁금해졌다.


5.'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라는 닳고 닳은 구호가 헛소리가 아니었다는 걸 날마다 경험하는 요즘이다. 나이를 들어가며 배가 나오고, 점점 더 움직이는 게 어려워진다. 러닝을 즐겨 했던 편인데 예전에는 아무렇지도 않던 10km가 이젠 죽을 것 같이 힘들다. 하면 할수록 느는 게 운동이라던데 어느 순간 꾸준하지 않으면 달릴 때마다 자꾸 아파오는 몸뚱아리를 매일 만나고 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않고 앉아만 있을 순 없다. 누구처럼 성난 근육을 갖고 싶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매일 늘어나는 뱃살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무거운 몸만큼이나 무거워진 마음을 갖고 살고 싶지도 않다. 결국 다시 러닝화 끈을 고쳐멘다. 태권도는 못하겠지만 하던 운동은 마저 해야지. 운동하기 좋은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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