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1~2 - 전2권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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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나고 한국에서 자란 나는 어릴 적부터 TV에 보이는 이민자의 삶을 부러워 했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계기는 TV 시트콤 <LA 아리랑>이었을 거다. 미국에 살고 있는 꽤 단란해 보이는 에피소드가 끊이지 않는 가정, 나는 평생 한번 가볼 수도 없을 것 같은 미국의 유명한 곳들, 영어와 한국어 심지어 n개 국어를 자유롭게 사용하는 능력 등 그들의 삶은 그저 워너비였고 이따금 미국에서 왔다는 이들을 만날 때 그들을 바라는 나의 눈빛은 늘 부러움으로 가득했다. 나는 그들과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내게 내가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른 이민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국에서 떠나온 그 시점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는 어른들의 보수적인 사고(80년대에 떠나온 이들은 아직도 전두환이 구국의 영웅이라든지), 교회를 중심으로 한 비밀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좁은 커뮤니티에 늘 전전긍긍하던 삶, 지금도 보이지 않는 인종차별 아니 이것보다 미국인도 한국인도 아닌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자신도 이러한 것들을 찾을 수 있을까 하여 한국에 왔으며, 사실 이것도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이들이나 하는 고민이지 지금도 세탁소와 베이비 시터를 하며 건강보험이 없어 병원도 제대로 못 가며 그렇게 버티고 있는, 아직도 실낱같은 아메리칸 드림을 잡고 견디는 이들이 그렇게 많다고.


이런 이야기에도 난 그들을 향한 부러움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운이 좋게도 <파친코> 이민진 작가님의 처음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의 한국 출판 북토크에 초대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 책이 어떻게 쓰이게 됐는지, 이 책에서 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어떤 이야기인지 듣게 되었다. 출간 연도로 치면 사실 <파친코>에 앞선 이 이야기는 그녀가 들려주는 첫 번째 이민자의 이야기다.

더 구체적으로는 미국 이민 1세대와 2세대, 부모의 헌신으로 꽤 괜찮은 대학을 나왔지만 본인의 삶을 찾아 뉴욕의 거리로 뛰어나온 케이시 한과 그 가족들의 이야기다.

(주인공의 성이 한인 이유는, 한국인의 정서인 '한'을 의미하는 게 맞다고 한다)


1. 케이시의 친구 엘라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교양 있는 이민 2세다. 그녀는 잘생기고 돈 많고 집안 좋은 그러니까 거의 완벽해 보이는 한국인 남자인 테드 결혼하고 스스로도 현모양처를 꿈꾼다. 하지만 엘라는 남편의 외도라는 상상도 못한 상황을 마주하게 된다.

2. 케이시의 어머니 리아의 이야기. 그녀의 삶은 가족과 교회가 전부였다. 세탁소에서 일하며 퍽퍽한 이민 1시대의 삶을 버티며 아이들을 키워냈고, 그렇게 스스로도 꽤 괜찮은 삶을 살아왔노라 생각하던 찰나 그녀는 성가대 지휘자 찰스에게 잠시 느낀 사랑에, 그의 아이를 갖게 되고 유산한다. 그 과정은 강간이었는데 그녀는 그 모든 과정조차 자신의 잘못이라 여기는 전형적인 보수적인 한국 어머니 시대의 여성을 대변한다.

3. 이에 반해 케이시는 자신의 욕망에 꽤 솔직한 여성이다. 명문대라는 울타리를 걷어차고 그녀는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려 하지만 그를 맞이한 건 동양인, 여성, 계급으로 둘러싸인 사다리였다. 거기다 그녀는 부모의 헌신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함께 안고 있다. 그녀는 뉴욕에서 꽤 많은 남자를 만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 그녀는 화려하고 싶었고 그럴 능력이 충분하다 믿었다. 하지만 그녀가 있을 수 있는 곳은 맨해튼의 가장 밑 바닥이 었고 그곳에서 케이시는 끊임없이 부딪히고 또 뛰어오른다.


책 제목이기도 한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 세상은 백만장자를 위해서는 모든 것을 내어줄 것처럼 열려있었지만, 가진 거라고는 몸 밖에 없는 이방인에게 한없이 가혹했다. 케이시의 능력은 보이지 않는, 아니 너무 크게 보이는 천장 앞에선 세상에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고 케이시는 이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세 여성을 비교하며 이민사회를 읽는 재미도 있겠지만, 굳이 미국까지 가지 않더라도 2022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로 읽히기도 무리가 없다. 자유와 평등을 누구보다 강조하는 나라에 살고 있지만 우리는 지금, 정말 모두가 자유를 누리고 모두가 평등하다고 믿고 있는가? 그것들은 기득권자의 언어이고, 어쩌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기득권에 편입되어 있지는 않는가.


이 외에도 책에서 인상 깊었던 이는 케이시의 멘토인 사빈이었다. 사빈은 케이시를 돕고 싶어 하지만 그 방법이 늘 케이시가 받아들 일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는데, 도움을 거절하는 케이시에게 그녀는 솔직하게 사과한다.


"미안하다. 올바른 방식으로 널 도울 방법을 내가 몰라서 미안해. 난 그저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뿐이야. 상대를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안되는건데.."(2권, p.183)


좋은 시니어가 되는 것, 좋은 멘토가 되는 것이 무엇일까. 멘토의 역할을 고민하는 중에 꽤 괜찮은 멘토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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