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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미술관 - 이유리의 그림 속 권력 이야기
이유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8월
평점 :
화가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필연적으로 자신이 살던 시대의 공기를 작품 안에 담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략) 마찬가지로 그림은 자신을 잉태한 시대를 스스로 고발하기도 한다.(p.9)
한겨레의 책은 재미있다. 그러고 보니 나의 대학시절은 늘 이런 유의 책으로 가득 했었다. 맑스, 니체, 존 롤스, 헨리 조지, 홍세화, 박노자, 김규항, 박원순의 책들을 접하며 내 사고가 한쪽으로 치우쳐 있지는 않은지 늘 점검했고, 모두를 위한 모두의 자본에서 소외된 이들을 기억하려 했다. 그들의 편에서 살고 싶었고, 돈에 버림받은 이들의 편에서 함께 울고 웃고 싶었다. 내 청춘은 그랬다.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해야 할 시기가 다가왔고 사회복지와 철학을 공부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군은 꽤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런 나와 달리 대기업이나 공사, 공단, 금융, 외국계 기업 뭐 하여튼 꽤 잘나가는 회사에 취업한 친구들이 실제로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들과 내 직업은 비교되기 시작했다. 부러웠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차이 나는 월급에서 오는 현타에 나는 대학원으로 도망을 갔고 그때부터 나는 내 청춘의 이상향을 최대한 지켜내면서 사회, 경제적으로 나쁘지 않은 직업을 찾아 헤맸다. 교수나 연구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그런 좋은 직업은 한정적이었을 뿐더러 경쟁도 치열했다. 교수님들은 유학을 권했고 나는 돈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의 최대치에 오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지금, 내가 꿈꾸던 이상들은 이제 추억 속에 예쁘게 박제되었다.
<기울어진 미술관> 제목부터 설마 했는데 역시나 책은 아래쪽으로 기울어진 세상의 끝에서 미술을 통해 사람을 바라본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미술책이라면 '이 그림은 어떤 상황에서 그려졌고 그래서 이 그림이 뜻하는 바는 무엇이다'로 끝나겠지만, 저자는 거기서 한걸음 더 들어가 그림 속의 시대와 그 안에서 소외되어 있는 사람을 발견해 불러낸다.
여성, 아이, 성소수자, 장애인, 유색인종, 원주민, 성소수자 등 지금도 세상 끝자락에 있는 이들은 거장의 그림 속에서도 여전히 차별받고 있었고 고통받고 있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 그림을 그린, 그리고 소비하는 우리에게 그들은 있으나 마나 한 배경에 불과했고 사실 이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24장의 그림을 통해 이런 우리를 고발한다. 처음에 꽤 빠르게 읽어내려가고 싶었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하나하나에 집중하게 되고 결국에는 울컥하고야 말았다. 그곳에는 20대의 내가, 가난하고 억눌린 자들과 함께 살겠노라 다짐하던 어제의 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림은 소위 가진 자의 예술이다. 유명세를 탄 화가도 그림을 의뢰한 이들도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부자라 불리며 권력의 이야기를 돌려 하곤 한다. 이 커넥션을 예리하게 뚫어낸 이 작업이 새삼 고마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