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2 - 개정판 코리안 디아스포라 3부작
이민진 지음, 신승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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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가 꿈에서 다시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의 젊음과 시작, 소망이었다. 선자는 그렇게 여자가 됐다. 한수와 이삭과 노아가 없었다면 이 땅으로 이어지는 순례의 길도 시작되지 않았으리라. 이 아줌마의 삶에도 평범한 일상 너머에 반짝이는 아름다움과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다. 아무도 몰라준다고 해도 그것은 사실이었다.(p.363)


<파친코 1> 리뷰에서 밝혔듯이 윤여정 선생님 덕에 드라마로 <파친코>를 먼저 접한 나는 늘 이 이야기의 끝이 궁금했다. 물론 드라마는 소설을 재구성했고,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가며 젊은 선자의 삶과 노인 선자의 회한을 보여주지만 아무래도 부족한 점이 있었는데, 소설이 들려주는 선자의 마지막 이야기는 <파친코>가 어떻게 위대한 소설인지, 왜 애플TV가 이 이야기를 주목했는지 보여준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와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조선인으로 일본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선자와 그 가족의 이야기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 이야기는 이제는 늙고 한국말도 채 가물가물한 노인이 되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강했던 여인. 조선인으로, 여인으로 시대의 아픔을 홀로 감당해야 했던 선자의 청춘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한참을 먼저 떠난 남편 이삭의 묘 앞에서 선자는 자신의 일생을 돌아본다. 사랑했고 죽이고 싶도록 미웠던 남자 고한수, 미혼모로 버려진 자신을 구원했지만 끝내 지켜주지 못한 남편 백이삭 그리고 첫째 노아와 둘째 모자수,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까지. 선자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독자라면 그녀의 삶의 끝자락에서 내뱉는 그녀의 회한에 누구라도 마음이 먹먹해 질 것이다. 그녀라고 어디 평범한 삶을 살고 싶지 않았을까. 남편과 아이들과 함께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시답잖은 이야기들로 오늘 저녁밥상을 대하고, 이웃집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의 진학 문제를 의논하는 그런 평범하디 평범한 삶. 


그런데 선자는 우리의 안쓰러움과 달리 자신의 삶에도 그런 반짝이는 아름다움과 영광의 순간들이 있었다고 말한다. 여자가 되었고, 엄마가 되었으며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되었던 순간들이 있었다고, 그 영광의 순간이 그녀를 살게 했다고 담담히 이야기한다. 이런 그녀의 고백 앞에 우리는 삶이란, 인생이란 무엇인가 돌이켜 볼 수 밖에 없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삶이 있고, 어떤 이는 퍽퍽한 오늘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산다지만 결국 우리는 똑같은 하루라는, 오늘을 살아간다. 이 오늘을 영광의 순간을 바꿀 것인가, 멀찌감치 누군가의 삶을 뒤쫓는 삶으로 끝낼 것인가는 다름 아닌 나 자신에게 달려있다. 

드라마도 그랬는데 마지막 장을 덮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먹먹함이 꽤 오래 남는다. 오랜만에 길고 긴 하지만 반드시 들어야 할 이야기를 들은 것은 것 같다. 벅차 올랐다는 느낌이랑은 조금 다른데, 꽤 마음이 단단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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