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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지겹고 이별은 지쳤다 (10만 부 기념 리커버 에디션) - 색과 체 산문집
색과 체 지음 / 떠오름 / 2021년 11월
평점 :
삶에 놓치고 살던 풍경들이 있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길에는 무엇들이 있을까 궁금해 한 적도 없다. 당신 때문에 그 길을 걷고 있고 모르던 것들을 알게 됐다. 더 좋은 사람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 때문에 변한 나의 모습이 난 좋다. 비를 보며 운치가 있다 생각하는 내가 좋다. 따듯한 차 한 잔을 즐길 수 있게 된 내가 좋다. 어딘가로 훌쩍 떠날 수 있게 된 내가 좋다. 아마 당신이 곁을 떠나도 변한 내 모습은 여전할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당신이 떠오르겠지. 당신이 떠난 뒤 남은 당신의 모습들을 나 자신으로부터 찾아보며 슬퍼하고 싶지 않다. 함께 하면서 나에게 나도 몰랐던 나의 모습을 알려준 당신이라면 언제든 곁에 머물렀으면 좋겠다(p.180~181)
사랑은 늘 그렇다. 다신 하지 않을 것처럼 굴어도 새로 찾아온 인연에 설레고 또 다시 그 길을 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변한다. 그것이 좋은 방향이든 그렇지 않은 방향이든.
나쁜 경험들이 쌓일수록 사랑에 부정적인 이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 그 나쁜 경험이라는 것도 이별이라는 극한 감정에 가리어진 경우가 제법 많다. 진짜 사랑이었다면 그에게서 나쁜 것을 받았을 경우가 사실 별로 없기 때문이다.
사랑과 이별에 관한 에세이를 읽을 때마다 나의 지나간 인연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때 이렇게 할걸, 그땐 이렇게 하지 말걸. 이미 지나간 일을 돌이켜본들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지만, 행여 언젠가 같은 상황이 반복된다면 그때 오늘의 실수를 되풀이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덕분에 변한 내 모습에 괜스레 흐뭇해지기도 한다. 고마웠다고, 한 번쯤 다시 연락해 보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는 것도 안다.
책은 제목처럼 사랑에 지친 이들에게 내 사랑이 어떤 사랑이었는지 되돌아보게 해준다. 지나버린, 지긋지긋한, 실패한 사랑인 것 같았지만 사실 그 사랑도 사랑이었음을. 이 사랑들이 모여 결국 더 단단한 나를 만들었음을 저자는 담담하게 알려준다. 울컥하는 포인트가 몇 군데 기다리고 있는데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그에게 연락할지 혹은 웃으며 받아넘길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