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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의 의식 - 스페인 최고의 소설가와 고생물학자의 뇌 탐구 여행
후안 호세 미야스.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 지음, 남진희 옮김 / 틈새책방 / 2025년 5월
평점 :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출판사로부터 제공은 받았지만, 광고 목적이 전혀 없는
100% 개인적인 감성과 주관으로 작성한 독후감입니다. 따라서 좋은 책에 대한 찬사만이 아니라 신랄한 비판도 마구마구 작성합니다]
먼저
읽던 책이 있었는데, 내용은 좋지만 왠지 모를 지루함이 느껴져서 이 책을 잠시 펼쳐서 읽기 시작했다가
계속 읽어버렸다. 우리 인간의 의식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에
대한 이야기이고, 확장한다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가? 와
동시에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로도 나아갈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특히 이 책의 매력 포인트는 소설가 본인이 고생물학자와의 대화를 통한 내용을 쓰고 있는데, 학자의
지식과 소설가의 특유의 은유라고 해야 할까? 그런 부분이 잘 어울러져 있는 것 같다. 의식에 대한 책은 서점에서 찾아보면 많다. 학자가 쓴 글은 훌륭한
통찰력으로 지식을 전달하지만 초보자에겐 단숨에 이해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반대로 철학과 감성이 함께
쓰여진 글은 몰입도는 높지만 물리적인 법칙으로 지식을 확장하기에는 좀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근거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 책은 이러한 장단점을 소설과와 고생물학자의 대화를 통해 잘 해결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보통
사람들은, 나도 오래전에 그랬고, 우리 몸과 영혼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때는 “21g” 이라는
영혼의 무게가 따로 있다는 것을 TV 또는 여기저기서 접할 수가 있었다. 근거 없는 헛소리도 자주 들으면 진리가 되는 부분도 있지만, 이것이
정말 진리로 느껴지는 이유는 각자 고유의 자의식이 있고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다고 판단하는 것이 여러가지 이유로 너무나 자연스럽다. 또 그래서 누군가가 자유를 억압하거나 선택을 강요한다면 상당히 반발하게 된다.
당연히 많은 사람들은 몸과 영혼이 따로 있고 육체와 정신의 세계가 따로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근데, 과연 그러기만 할까?
눈이
세상을 선명한 고화질로 보여주는 것일까? 귀가 세상의 소리를 듣게 해주는 것일까? 팔을 움직여서 물건을 들어 올리는 것은 어떤가? 걷게 만들고 뛰게
만드는 다리는 어떤가? 눈과 귀, 팔, 다리 모두 멀쩡해도 뇌 신경이 마비되면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다. 물론
눈과 귀, 팔, 다리가 없으면 뇌 신경이 온전해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상상은 할 수가 있다. 뇌는 이 모든 것들을
경험을 통해 운동하고 제어하는 시스템을 구축한다. 자율 신경은 DNA에
사전 입력되어 있어 정자와 난소가 만나 배아가 발달 과정을 거쳐 적절한 조건이 되면 모두 자동으로 작동한다. 진화
과정상 2차적으로 나타난 대뇌피질은 기본적인 생명활동을 넘어서 인간이라 부르는 모습을 갖게 했다. 경험과 시행착오를 거쳐 학습하고 그에 따라 신경 가소성을 활용하여 신경들을 재조립하고 재배치한다. 이것이 “너”와 “내”가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간단하게
말하면 그 동안 겪어온 삶이 미래에 대한 기준이 된다는 뜻이다. 영혼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물리적인 뇌 신경이 곧 우리 그 자체다. 굳이 애써 말하면 영혼이
되고, 따라서 죽으면 천국에 가지도 않는다. 신경은 멈추고
모든 활동도 멈춘다. 절실하게 믿고 천국을 애원하게 만드는 영적 경험도 결국 종교라는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크고 작던 상관없이 사소하게나마 경험으로 남아 있던 부분들이 일시적인 뇌 신경의 흐름 불균형을 수반한체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뇌가 이미지를 만들어내면 이때 진짜 경험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허상일 뿐이다. 혹시 꿈에서 깨어 났을
때, 꿈이 너무나 리얼해서 현실처럼 느껴진 적이 있었나? 누구나
경험한다. 영적 경험은 현실과 환각을 구분하는 기능이 일시적으로 오류가 날 수 있는데, 이럴 경우는 환각을 현실로 굳게 믿는다. 내 의지가 아니라 뇌가
그렇게 만든다. 뇌가 곧 영혼이다.


이러한 사실은
언뜻 잔인한 절망을 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 희망을 주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태어날 때 저마다
환경이 매우 다르다. 누군가는 풍요롭지만 누군가는 매우 척박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부분 때문에 긴 역사의 흐름을 보면 과소했던 것은 평균으로, 과대했던 것도 평균으로 회귀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풍요로움 환경에서 만들어낸 뇌 신경의 영혼은 수익보다 더 많은 소비를, 척박한 환경에서의 뇌 신경이 만들어낸 영혼은 소비보다 더 많은 수익과 저축을 통한 재투자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지속적인 부가 순환한다. 물론,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겠으나, 수 세기를 기준으로 보면 결국 순환한다. 작은 사이클은 가난을 더
심한 가난을 부추기고 많은 부는 더 많은 부를 부추기나 큰 사이클은 이것이 항상 역전되어 왔다. 다만, 역전이 하나의 생명주기보다 큰 사이클을 가지고 있어서 인지하지 못할 뿐이다.
인류역사가 그래왔고 난 여전히 인류가 지구에 존재하는 한 그럴 것이라 생각한다.
공통의
조상에서 같은 종으로 불리는 “개”와 “늑대”는 서로 다른 길을 걸어왔기에 “개”는 어려운 난관에 부딪히면 주인을 쳐다보지만 “늑대”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여전히 교배가 가능하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산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그 차이는 의식이 만들어내고……
무의식과
의식, 그것이 삶에 미치는 영향, 물론 이 작은 책은 삶의
대한 깊이 있는 철학까지 파고 들지는 않는다. 세상에 수 많은 사람들이 각자 저마다의 삶을 만들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많은 공감이 되지만, 어떤 사람들은 도저히 공감이
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 그 모든 것들은 무의식과 의식의 결합으로 만들어진 다는 사실……은, 결국 어떻게 살아왔는가? 와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는 오로지 호모 사피엔스만이 가진 질문이 아닐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