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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불편한 용서
스베냐 플라스푈러 지음, 장혜경 옮김 / 나무생각 / 2020년 9월
평점 :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만이 용서다.
본문 21쪽.
이 책은 한 단어로 ‘추적’이다.
저자는 열네 살 때 가족을 버리고 떠나버린 엄마를 용서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그녀가 용서를 추적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녀가 7살 난 딸에게 홀로코스트를 상기시키는 전범 국가 독일의 국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은 용서란 무엇인지 저자 자신의 힘이 닿는 곳까지 추적하고 그것을 정리해 기록한 철학탐구서다.
이 여정에 여러 명의 철학자와 사회학자가 함께한다. 특히 한나 아렌트, 자크 데리다, 블라디미르 얀켈레비치, 에마뉘엘 레비나스 같은 유대인 철학자들의 저서와 말에서 실마리를 찾는다. 데리다를 뺀 나머지 세 사람은 유대인 말살을 직접 겪은 생존자들이다. 이들만큼 용서에 대해 철저하게 고민한 사람이 또 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대답을 통해, 예를 들어, 1장은 이런 식으로 전개된다.
가해자를 이해하면 용서할 수 있을까? 인간이 인간성을 상실한 중죄를 저지르는 이유는 의지 때문인가, 광기 때문인가? 재판에서 죄의 경중을 잴 때 기준 중 하나는 죄를 저지른 사람의 의지와 인식 여부다. 그렇다면 가해자가 자신의 범행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정확한 증거는 어디에 있는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정말 있는가? 타인을 완벽히 이해할 수 없다면 용서 또한 불가능한 것일까?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음 즉, “타자의 완벽한 ‘타자성’(71쪽)”을 깨닫는다는 말은 곧 “내가 만물의 척도가 아니라는 걸 알고, 타자를 나와 나의 요구, 나의 선악 관념에 따라 평가하지 않는다는 의미(72쪽)”라고 말한다. 가해자를 완벽히 이해할 수 없기에 살인 충동이 생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가해자를 이해하려는 부단한 노력 덕분에 용서가 가능해지기도 한다.
범행을 이해하려 애쓰는 자신의 부단한 노력을 그녀는 어떻게 설명할까?
“이해를 하면 무조건 감수해야 할 때보다 견디기가 수월하죠.”
본문 81쪽.
“의식적으로 한 생명을 죽이려면 일단 먼저 삶의 의미를 이해해야만 합니다.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해야 합니다.”
이런 삶의 의미가 자동적으로 모든 존재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본문 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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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은 망각과 용서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3장이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망각을 인간의 필수 생존 전략이라고 했다. "잊지 못하는 사람은 ‘내려놓을’ 수도, ‘극복할’ 수도 없다.(151쪽)" 그러나 "어떻게 그 모든 일을 싹 잊는단 말인가? (165쪽)" 나는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사회, 국가적 차원에서 용서할 수 없는 사건을 겪었고 지금까지도 그걸 끌어안고 있다. 문제는 나에게 고통을 주고, 죄책감과 우울감에 빠지게 만드는 사건 대부분이 내가 직접 겪은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폭력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과, 위안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그 둘은 사건의 성격도, 나의 개입 여부도, 피해자 가해자의 생존 여부도 완전히 다르다. 전자는 개인적 용서의 문제고, 후자는 개인·사회·국가적 용서를 아우르는 문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생존자인 에바 모제스 코르는 부모님과 쌍둥이 형제의 생명을 앗아간 나치를 사면한다는 선언을 했다. 그러나 다른 생존자들은 그녀의 용서는 피해자 전체와 상의하지 않은 것이며, 희생자 대신 용서할 권리가 그녀에겐 없다며 비판했다. 저자가 만난 또 다른 홀로코스트 생존자는 코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부인이 자신을 희생자라고 느끼고 홀로코스트를 용서함으로써 그 감정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한다면 홀로코스트가 잊힐 위험이 있습니다.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희생자를 기억해야 하는 겁니다. 우리에게는 희생자의 이름으로 용서할 권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을 기억해야 하고 그들에 대해 기록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들이 한때 살았고 활동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 테니까요. 우리 부모님이 그러했듯이요.(218~219쪽)"
“과거의 것이 현재의 것의 무덤을 파지 않으려면, 과거의 것이 잊혀야 할 (……) 한계를 정하기 위해 우리는 한 인간, 한 민족과 한 문화의 조형력이 얼마나 큰지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조형력이란 스스로 고유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과거의 것과 낯선 것을 변형시켜 자기 것으로 만들며, 상처를 치유하고, 상실한 것을 대체하고, 부서진 형식을 스스로 복구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본문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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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각 장의 끝에는 총기 난사 사건으로 딸을 잃은 여성, 30년 전 애인을 자기 손으로 죽인 남성, 홀로코스트 생존자를 저자가 직접 만나 나눈 이야기가 실려있다. 그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죄와 악을 판단하고, 용서하거나 혹은 하지 않는다. 그중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뭐가 나쁜 짓이고 뭐가 아닌지는 각자가 결정해요.
그러니까 용서할 수 있는 죄의 한계도 사람마다 다른 거죠.
본문 139쪽.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과 생각도 솔직하게 공유해 주었다. 프롤로그에서 열네 살에 자신을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추억하며 시작했던 이 책은, 에필로그에서 자신의 마흔 번째 생일날 집을 찾아온 어머니를 반기는 저자의 모습으로 끝이 났다. 그녀의 용서도 아직 종점에 도달한 것 같진 않았다.
나에게도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나만이 겪고 나만이 기억하는 형태로 상처가 되어 남아 있다. 특정 사회와 국가에 속한 개인으로서도 나에겐 풀어야 할 응어리, 혹은 숙제가 남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용서에 대해서 마음껏 고민해보고 싶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고 싶었다. 그러나 사실 알고 있었다. 결론은 그리 쉽게 나지 않을 거라는걸. 용서란 포기가 아니라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기에.
용서하려면 노력해야 한다.
피와 살로 스며들 때까지 끝까지 연습해야 한다.
본문 152쪽.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