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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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드럽고 아름답지만

차갑고 섬뜩한 무언가가

침묵하고 있다.










30대 박물관 기사인 주인공 '나'는 바깥세상과 고립된 어느 시골 마을 사람들의 유품을 전시 및 보존하는 박물관을 만드는 일을 맡게 된다. 의뢰인 노파와 그녀의 입양된 딸, 정원사 부부와 함께 박물관을 만들면서 일어나는 일이 '나'의 시점으로 서술된다.




시대도 장소도 콕 집어 설명할 수 없는 작은 마을. 삼 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그 마을에는 평생 마을 밖으로 나가지 않고 대대로 부모에게 물려받은 일을 하며 살아가는 장인들이 있다. 그들은 정원을 가꾸거나, 알 공예품을 만들거나, 잭나이프를 만드는 일에 평생을 바친다.




그 헌신에는 고도의 집중력과 소름 끼치는 광기와 외부 세계와 타협하지 않는 이기성이 있다. 어떤 주제로 선택되어 수집된 컬렉션들에는 일정 정도의 강압성과 이기성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이 작품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그러니까 정당하게 기증받은 유품만 있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죠?”


“정당하게? 흥, 웃기지 마. 방금 유품의 정의를 설명했잖아? 진짜 유품을 수집하는 일에 정당하고 부당하고가 어디 있어?”


본문 49쪽.



"우리의 선택이 너무나 정확해서요. 멋지게 핵심을 꿰뚫었기 때문에 아무도 불평하지 못하는 거예요. (…) 어쩌면 우리가 유품을 훔치고 나서 생긴 공백을 목격한 사람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요? 망자가 가져간 거야, 하고 말이죠."


본문 150쪽.






침묵 박물관에 가면 유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곳에 실로 전시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생각한다. 물, 공기, 소금, 빛…. 살아있을 때는 꼭 필요한 것들이 죽어서는 적이 된다. 변하지 않는 건 이 세상에 없지만 그럼에도 유품 수집은 계속되어야 한다. 자신이 여기 살았었다는 생의 증거가 수집 및 보관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기억되고 싶다는 열망이 있기에.




“물건을 보존하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네요.”


“당연하지. 물건은 그냥 내버려두면 삭아서 없어지고 말아. 벌레, 곰팡이, 열, 물, 공기, 소금, 빛, 전부 적이지. 하나같이 세상을 분해하고 싶어서 안달해. 변하지 않는 건 이 세상에 없어.”


본문 86쪽.






모든 건 박물관을 위해서야.


본문 336쪽.





박물관에 가면 침묵하게 된다. 그곳은 관람객인 나를 반겨주지 않기 때문이다. 박물관은 그곳에 수집된 컬렉션의 보존만을 위해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박물관 또한 특정 주제로 묶인 컬렉션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소설 속 박물관의 이름이 유품 박물관이 아닌 침묵 박물관인 이유가 있을까. 주인공이 마지막에 침묵을 선택한다는 점과 연관이 있는 걸까. 《침묵 박물관》은 오가와 요코가 2000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침묵은 미덕이 아니다.




투명한 문체와 무국적성을 띤 장소가 주는 몽환적 분위기가 오가와 요코 작품 세계의 특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은 결코 모호하지 않았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내게 《침묵 박물관》은 주인공이 결국 패배한다는 의미에서 공포소설이고, "인간의 존재를 초월한 박물관(본문 15쪽)"이 이기심 위에 세워진다는 점에서 풍자소설이다.





작가정신 작정단 6기 자격으로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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