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사는 마음에게
천양희 지음 / 열림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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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천양희님의 산문집을 처음 읽게 되었다.

대학재학중에 시인으로 등단한 천양희시인의 내력만을 보아도 어릴때부터 문학으로의 길을 걸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었다.

시인은 시를 쓰는 이유가 잘살기 위해 시를 쓴다고 했다.

자신이 본 풍경을 시로 쓰는 시인. 그녀에게 있어 시는 자신의 삶의 저자라고 하였다.

삶은 사는 것으로 증명하듯 자신을 증명하고 싶어 글들을 썼다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한 원초적인 욕구일지도 모른다.

비록 시인이나 작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자신의 그 무엇을 글로써 남긴다는 건 인간이 가진 내면의 목소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글은 그 사람의 상태를 알아볼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것 같다.

이 책을 읽는 동안 천양희 시인의 삶의 여정을 따라가 보았다. 그녀가 시인으로 되는 발판이 되었던 세분의 스승(아버지, 초등학교때 선생님, 문학의 길을 이끈 스승)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한 그녀의 문학적 발판이 된 책읽기와 문학적 감성, 풍경 읽기가 시인이 되는데 기초가 되었다.

그녀의 사춘기적 시절에 받았던 편지가 지금도 아련함을 불러 일으킨다.

똑같은 상황과 풍경 앞에서도 느끼는 것은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

시인에게는 아주 소소한 것들조차도 풍경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에서 나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끌었던 부분은 바로 [무한한 비밀의 책을 읽기위하여]였다. 시인에게 감동을 가져다 주고 영향을 준 작품들은 어떤 것인지 궁금했었기 때문이다. 혹시 그녀와 내가 같은 공통점은 없을까 알고 싶기도 했다.

그녀가 언급한 책들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어서 너무 기뻤다. 마치 동지를 만난듯 시인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어릴적 읽은 <독일인의 사랑>도 있었고, 구라다 하쿠조의<사랑과 인식의 출발>은 처음보는 것으로 언젠가 읽어봐야 겟다고 메모해 두었다.

이처럼 작가는 독자에게 책 속에서 또 다른 길을 이끌어 주기도 한다. 이것이 책 읽는 기쁨 중의 하나가 아닐까?

고통이 없는 시인은 있을수 없다. 고통과 아픔을 통해 글은 빛나고 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보면 고통은 기쁨을 수반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한가지씩 자신만의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있듯 그것을 어떻게 보듬고 치유해 가는 것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사람은 모두 자신에게 고도(孤島)일뿐이지만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자기에 이르는 길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서늘해진다.

이 책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젊은이들, 상처로 인해 좌절한 영혼들에게 따뜻한 위안을 가져다 줄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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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 때 (외) 범우 사르비아 총서 615
루이제 린저 지음, 홍경호 옮김 / 범우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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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일때/바르샤바에서 온 얀 로벨

루이제 린저/홍경호 옮김/범우사(1999.11.25, 2판1쇄) ,273쪽

마침내 육중한 문을 열고 샘물 곁에 앉아 고요하고도 맑은 물을 들여다 보며 전율했다. 조그만 돌맹이를 들어서 유리같은 수면에다 던졌다. 유리처럼 맑은 파문들이 소리없이 물위에 번졌다가 되돌아오면서 교차하고 이상스럽지만 법칙에 따른 무늬를 이루었다. 나는 비로소 알았다. 앞으로 나의 생애를 이끌어갈 것은 뒤엉키고 어두컴컴하며 괴로움에 찬 인간적인 격정이 아니라는 것을. 맑고도 냉엄한 정신의 법칙이 바로 나의 생애를 끌로 가리라는 사실을 비로소 비로소 알게 됐다.(203)

루이제 린저는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고등학교라는 부담감과 새로운 셰계에 대한 낯선 감정이 뒤섞여 있을때 

같은반 아이인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 우연히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가 '루이제 린저'라고 했을때 왠지 내 친구가 될 것같은 예감이 들었다.  우연인지 몰라도 나도 그당시 루이제 린저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고 있던 시기였다.

그당시 나이에 대부분의 아이들이 저명한 작가로 흔히 알고 있는 헤세, 톨스토이, 도스또옙스키 등의 이름대신 루이제 린저를 말했다는 것은 -물론 루이제린저가 알려진 작가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지만 - 무언가 남다르다는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당시 루이제린저의 작품들중 <생의 한가운데>, <완전한 기쁨>을 삼중당 문고판으로  읽으면서 그녀만의 매력에 빠져 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무언가 알수 없는 어떤 전율을 느꼈던 것 같다. 사색적이고도 섬세한 표현이 내가 말로 표현할수 없었던 것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이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을 회상해 보았다.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해했고, 자신이 무얼해야 할지 막막한 것과 어떤 사람이 될지 설레임과 두려움이 지배했던 시절이었음을 지나온 지금에서야 되돌아 볼수 있었다.

이 작품은 루이제린저의 첫작품이자 출세작으로 헤세자신이 <데미안>과 비견할 만한 작품이라 했다.

<데미안>의 주인공이 '소년'인 반면 이 작품의 주인공은 그보다 더욱 섬세하고 감수성 많은 젊은 '소녀'라는 점이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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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밑도 끝도 없는 슬픔을, 앞으로 다가올 날의 전조로서 받아들일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 슬픔은 점점 두터워져서 어떤 뚜렷한 것으로 굳어가는 것을 역력히 느낄수가 있었다.(28)

세월은 정적과 아름다움, 경건함과 고독으로 틀이 잡혀 갔다.(36)

높은 곳에 앉아서 언덕과 언덕으로 이어진 텅텅 빈 가을 들판을 바라보는 맛이었다. 먼 곳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여름은 정말로 가버렸구나 하는 실감을 가슴 구석까지 느낄 수가 있었다. 달콤하면서도 괴로운 가을의 느낌이었다.(94)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전부이다"(에리나 선생)/130

그런 행복감은 너무나 완전해서 삶은 우리를 한번도 속이지 않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느낀 것은 이상스러웠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은 그렇게 행복한 게 아니었으며 단지 숨도 쉴 수 없는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어렵게 살아왔던 것이다.(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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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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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달에 울다

 

차갑고,

그립고,

서글픈 바람이다.
 

작년 가을 어느 바람부는날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책표지에 쓰인 이 문구 하나만으로도 나를 충분히 빠져들게 만들었다.

책과의 조우가 바로 어느날 느닷없이 그렇게 일어난다.

마루야마겐지를 알게 된것도 책블로그를 통해서였다.

그때 처음산책은 <좁은방의 영혼>을 사서 읽고는 그의 책들을 구할수 있는데까지 구했다.

하지만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는 절판이어서 구하지 못했다

특히 달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는 내게 이 책은 더할나위없이 나를 달뜨게 했다.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 나는 몇번이나 마치 시집을 읽는 듯한 , 그림을 보는듯한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과연 천개의 시어가 빚어낸 한권의 소설과 같았다.

교교한 보름달밤에 장님 법사의 비파소리와 , 그리고 쓸쓸한 회오리 바람소리는 내가슴을 온통 휘저어 놓기에 충분했다.

전개방식도 독특하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듯 사계절의 병풍에 담아 그려내고 있다. 

봄병풍

중천에 걸려 있는 흐릿한 달, 동풍에 흔들리는 흐릿한 갈대

30년전 10살이 된 초라한 이불속에 기어든 두부처럼 여린 소년의 영혼에 깊이 스며든다. 

여름병풍

산기슭에 걸린 초승달, 천지에 무성한 초록풀

20년전  20살이된  얇은 이불속에 드러누운 피보다 더 뜨거운 젊은 남자의 영혼을 동요시킨다. 

가을병풍

그림자 하나 없는 명월, 가을바람에 굽이치는 초원

10년전 30살된 호사한 이불속에 들어가 있는 추억에 가득찬 청년의 영혼을 압도하고 마비시킨다. 

겨울병풍

잘 닦인 겨울달, 얼음과 가루눈에 갇힌 산정호수. 호수의 얼음이 삐걱거리는 소리는 시간의 흐름까지도 얼어붙게 한다

현재의 나인 40년 10개월이된 중년남자의 패기 한조각 없는 회색빛 영혼을 마비시킨다. 

책을 읽으며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듯 했는데 계절이 바뀔때마다 달라지는 달의 모습과 배경은 마음을 압도하고 마비시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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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너머에 있던 달이 이지러지기 시작해 급속히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병풍속 달은 여전히 똑같은 형태와 위치를 유지한 채 나와, 내가 여기까지 끌고온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세월을 비추고 있다.(101)


조롱을 높이 매달고

 

사람들은 죽기 위해 사는 것도, 살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102)


장과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40대남자가 고향을 찾아가 고독한 영혼을 달래는 내용이다.

그는 한때 잃는게 두려워 분투했음에도 모든걸 잃게되자 자신의 전반기의 모든것을 묻는다.

그는 버림으로써 살아남았다. 직장, 가정, 체면따위를....

그의 마음 속의 피리새 소리를 듣기 위해 노인에게서 피리새 조롱을 빼았는다.

결국 그는 마을을 떠나며 피리새 조롱을 높이 매달아 피리새에게 자유를 주게 된다.

아둥바둥 현재를 살고 있는 누구나 느낄수 있는 감정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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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새 소리는 내 온몸 깊숙이 스며들어 영혼의 가장자리까지 도달했다. 나는 지쳐서 앓고 있었다. 육체 아닌 어딘가,  뇌 아닌 어딘가가 몹시 상해 있었다.(147) 

뿌연 달빛이 가득차 있는 거리는 조금씩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파도소리를 압도해 가고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창백한 달빛은 내 가슴 속을 남김없이 비추고 있었다.(149) 

마지막으로 이책을 번역한 한성례님의 후기에서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 <미래의 글쓰는 이에게>한 말은 가슴에 새겨놓을 만한 글이어서 옮겨본다. 

"친구를 멀리하고 직장 동료나 아는 사람들과 모두 거리를 두고, 자신을 고림된 상태로 둘것. 예술을 한다는 것은 혼의 문제와 접하는 것이므로 행복과 안정에 가까워지면 그만큼 거기서 멀어진다. 진실로 문학을 목표로 한다면, 고독을 향해 고독을 누르고 고독을 초월하라. 자신 이외의 곳에서  힘을 구하려 하지 마라. 불안, 분노, 고독감, 슬픔을 돌진해 나가면 손대지 않은 문학의 금광이 펼쳐지고, 밟지 않은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자폐가 아닌, 앞을 향한 '개인', 앞을 향한  '활' 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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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피넛 1
애덤 로스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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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는 말이 한때 유행한 적이 있다.

노래제목으로도, 영화로도 나올만큼 '결혼'의 의미와 '사랑'은 지금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세 부부의 결혼생활에서 일어날수 있는 여러가지 상황을 각각 다른 각도에서 나타냈다.

데이비드는 아내에 대한 살해를 자신이 아닌 신의 섭리에 의해 일어나기를 꿈꾸었다. 아내인 앨리스는 땅콩 알레르기를 가진 여자였고, 결혼후 늘어난 체중을 줄이기 위해 다이어트를 하다 어느날 데이비드에게 자유를 주겠다며 얼마간 집을 떠나게 된다.

처음엔 데이비드는 여비서와 즐기면서 자유를 느껴보지만 어느 순간엔가 자신의 아내를 잊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아내를 찾기위해 사람을 고용한다.

그러나 그가 고용한 사람은 살인청부업자로 자신의 아내를 죽일거라는 걸 깨닫고 아내를 구하려 하지만 이미 늦어버린 뒤였다.

아내의 죽음을 앞에두고 그는 죽기전에 그들 부부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그녀가 무엇을 원했는지 그제서야 깨닫는다.

또 다른 커플인 헤스트롤 형사는 집에 누워서만 지내는 아내인 한나를 순간적으로 살해하고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의 아내인 한나는 상대인 헤스트롤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마치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끼는 그들사이에 데헤 견딜수 없어 했다.

마지막 커플인 세퍼드와 마릴린은 실제 TV시리즈와 여러번 리메이크된 영화로 잘 알려진 <도망자>의 실제 주인공 샘 세퍼드의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세퍼드는 클리블랜드 출신의 의사인 새뮤얼 세퍼드는 아내를 살해한 협의로 10년간 복역하다 무죄로 풀려난 형사이다. 그는 다른 여자와의 외도를 즐기면서도 어느 순간 아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는 모든 관계를 정리하고 아내에게 돌아오지만 어느날 아내는 살해되어 죽고 만다.

이 책은 누가 죽였는지, 누가 진범인지의 추적보다는 어째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파헤치고 있다.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면서도 먼 사이인 부부는 그들간의 무관심과 무지가 서로를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리 달아나려해도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 올수 밖에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우리의 삶도 어쩌면 그와 닮았다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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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는 변덕스러운 멈춤과 출발, 폭발과 몰두, 끔찍한 막다른 골목이 반복되는 과정이었다.(1권-17)

살인은 습관의 중단, 또는 그 정점이라고 생각했다.(1권-21)

중간은 원래 그런거야.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보다 숨을 더 오래 참을 때랑 같아. 정신을 잃기 직전, 수면으로 올라오기 직전의 지점이지. 고개를 오르는 마지막 단계. 내려가기 직전에 제일 높은 부분.(1권-30)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결혼생활은 쉽게 이야기하며, 누구나 결혼 뒷이야기와 우여곡절에 전문가다. 하지만 본인의 결혼생활은 털어놓을수 있을까?(1권-35)

살인은 사람들의 성격을 가장 단순한 욕망의 형태로 축소시킨다.(1권-87)

기이하게도 결혼은 시간을 납작하게 압축해 세월의 흐름을 감추는 재주가 있다(1권-165)

인생이 언제나 이렇다면, 언제나 이렇게 조용하다면, 그는 지금 여기 앉아서 소음을 그리워할까?

결혼은 긴 기다림이었다.(2권 120)

기쁨은 완전한 부재 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다.(2권 125)

영화예술에 담긴 사랑과 천재성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깊이 감사하는 마음에 거기 서서 그런 느낌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싶어져 어두운 길에 자전거를 세웠던 것만은 또렷하게 기억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며, 공허함을 채우는 베풂이라고 생각했다. 예술가가 작품울 만들어 베풀어주었고 내가 받았으니, 내 인생, 이 인생은 무언가를 어떻게든 되돌려주지 않고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이다.(2권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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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테라스
파스칼 키냐르 지음, 송의경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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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 빠진 사람들은 구석에서 살아가는 법일세.

사랑에 빠진 사람들도 모두 구석에서 살아가지.

책을 읽는 사람도 구석에서 사는 거네.

절망한 자들은 숨을죽이고, 누구에게 말을 하거나 누구의 말을 듣지도 않으면서,

마치 벽에 그려진 사람처럼 공간에 달라붙어 살아가는 거야(7~8)

 이 책을 읽게 된 사연을 얘기하자면 얼마전에 키냐르의 <혀끝에서 맴도는 이름>을 읽고 나서 그의 책들을 모조리 찾아보다가 <로마의 테라스>,<세상의 모든 아침>이 절판되엇음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로마의 테라스>는 더더욱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게 만든 책이어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출판사에 전화와 이메일을 보내 이책의 출간여부와 재고를 문의했다.

나 자신도 그렇게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이 책을 보지 않고서는 다른 책을 볼수가 없을 정도로 내 머리 속에 떠나지 않고 계속 자리 잡고 있었다. 무엇이 그토록 나를 사로잡았는지는 모르겠다.

며칠후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는데 추가 인쇄를 했으니 곧 인터넷 서점에서 구할수 있을거란 얘기였다.

그토록 찾았던 소중한 책이 내 품에 안기게 된날 마치 잃어버린 줄 알았던, 다시는 볼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에 빠질 뻔 했던 것을 다시 되찾았을 때의 심정이었다.
책이 도착하자마자 숨도 쉬지 않고 읽어내려갔다.
왜 그리도 이책이 나를 끌어들이는지를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바로 내가 원하던 그런 특이한, 새롭고, 놀랍고, 당혹스럽기까지 하면서도 아름다운 소설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소설형식으로 보게 된다면 금방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일반소설과는 아주 다른 형식에서 벗어난 독특한 소설이다.
이 책은 47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기 증언, 서간, 콩트, 묘사, 대화, 아포리즘 등의 독자적인 장르를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질서하면서도 연관성이 유지된다.
설명할수 없는 삶을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작가의 의도된 전략이란 점이 당혹스럽게 한다
이 책의 출간 배경도 상당히 재미있는데 문학상을 겨냥한 많은 작품들이 가을 시즌에 맞춰 출간되는데 이 책은 수상가능성에서 되도록 멀어지기 위해 의도적으로 1월에 출간해서 상당히 초연해 있다는 것과, '모나코의 피에르 국왕상'의 심사위원인 프랑수아 누리시에는 "훌륭하고 훌륭한 이야기"라는 감탄사와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대상'까지 거머쥐게 된다.
더우기 시상식장에서 그는 입을 다물고 냉소적인 표정으로 자신안에 침잠해 있었고, 기자들의 인터뷰에 '사랑하던 여자의 아들을 친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한남자의 이야기입니다'라고만 말해 기자들을 화나게 만들었다고 한다.
키냐르의 책에 밑줄을 긋다가 나중에는 밑줄긋는다는것 자체가 의미가 없었다. 전부가 밑줄을 그어야 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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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간절한 것은 그런 기쁨이 아니라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야. 내가 평생을 바쳐 오직 하나의 육체, 내가 늘 꿈꾸던 포옹의 자세를 취한 육체만을 그렸던 건 그 때문일세.(8)
 

나는 내 가련한 노래를 다른 곳으로 가져가려 했네.
파멸의 음악이란 게 있다면, 파멸의 회화 역시 존재할 테니까.(26)

꿈이란 바로 이미지들이야. 더 정확히 말해 꿈이란 심지어 이미지들의 아버지며 주인이네.(40) 

솔직히 말해서 하느님이 만들어낸 예기치 못한 풍경들과 비견할때 인간이 만든 것들은 무엇하나 마음에 들지 않아.(41) 

나는 내가 여자라는 사실에 고통을 느껴요. 여자는 모두 그렇게 만들어진 걸요. 

이 세상에 사는 여자들에겐 나쁜 기억이 하나쯤은 있는 법이니까.(마리)(61)

이유를 대는 것은 사랑을 황폐하게 만드오.

사랑하는 대상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거짓에 불과하지.

인간은 살아 있다는 감각이 절정에 달했을 때의 느낌에만 기뻐하기 때문이라오.

또 다른 삶이란 존재하지 않으니까.(77)

사람은 늙어갈수록, 자신이 통과하는 풍경의 광채에서 몸을 빼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네.

마지막 떠남은 사실상 흩어짐에 불과해. 늙어갈수록 나는 내가 도처에 있음을 느끼네.

언젠가 풍경이 나를 통과하겠지(아브라함 반 베르헴) (82-83)
불행한 사람들은 부모들의 분노, 뒤이은 쾌락도 그들을 충족시킬 수 없었던 분노의 산물이다.(마리)(90)
이런것이 바로 인간의 감정이다. 내리는 비가 색채들을 무화시킨다. 분노는 관능과 마찬가지로 열광적이며 현기증을 일으킨다.(92)

나는 평생동안 질투를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 질투심이 상상력보다 먼저야. 질투심은 시선보다 더 강렬한 환영이지.(119)

어떤 나이가 되면, 인간은 삶이 아닌 시간과 대면하네. 삶이 영위되는 것을 더는 볼수 없지. 삶을 산 채로 집어삼키는 시간만 보이는 걸세. 그러면 가슴이 저리지. 우리는 나무토막들에 매달려 이 세상 구석구석에서 고통을 느끼며 피 흘리는 광경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하지만 그 속에 떨어지지는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네.(128)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는 매혹적인 하룻밤이 있어. 저녁마다 여자들과 남자들은 잠이 들지. 그들은 마치 어둠이 추억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 밤 속으로 빠져들어. 그것은 추억이네.

그들은 단지 밤의 노리개에 불과해. 그들을 태어나게 했고, 어디서나 무엇에나 그림자를 드리우는 보이지 않는 장면의 노예일 따름이야.(129)

동판을 마주하고 앉으면 비애가 느껴진다. 내게는 한 이미지를 몽상할 시간, 아니 눈앞에 붙잡아 놓고 재생시킬 시간이 더 이상 없다. 내 작품은 다른 곳에 있다. (131)

난, 이제껏 자신을 온통 사랑하는 여자에게 바치는 남자들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여자에게서 이 모든 것을 죄다 찾으려는 남자들은 더군다나 보지 못했어. 부재하는 여자들이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고 있어. 상실된 것은 언제나 옳은 거야. 나는 사랑을 더러운 속임수라 부르겠어.(마리)(137-138)

판화가를 번역자로 간주해야 한다. 번역자는 풍요롭고 멋진 한 언어의 아름다움을, 사실은 그만 못 하지만 더 강렬한 다른 언어로 바꿔놓은다. 그 강렬함은 그것과 대면하는 자를  즉시 침묵하게 만든다.(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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