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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달에 울다
차갑고,
그립고,
서글픈 바람이다.
작년 가을 어느 바람부는날 이 책을 꺼내 들었다.
책표지에 쓰인 이 문구 하나만으로도 나를 충분히 빠져들게 만들었다.
책과의 조우가 바로 어느날 느닷없이 그렇게 일어난다.
마루야마겐지를 알게 된것도 책블로그를 통해서였다.
그때 처음산책은 <좁은방의 영혼>을 사서 읽고는 그의 책들을 구할수 있는데까지 구했다.
하지만 <봐라, 달이 뒤를 쫓는다>는 절판이어서 구하지 못했다
특히 달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는 내게 이 책은 더할나위없이 나를 달뜨게 했다.
첫 페이지를 펼치면서 나는 몇번이나 마치 시집을 읽는 듯한 , 그림을 보는듯한 느낌으로 읽어나갔다.
과연 천개의 시어가 빚어낸 한권의 소설과 같았다.
교교한 보름달밤에 장님 법사의 비파소리와 , 그리고 쓸쓸한 회오리 바람소리는 내가슴을 온통 휘저어 놓기에 충분했다.
전개방식도 독특하다.
인생을 계절에 비유하듯 사계절의 병풍에 담아 그려내고 있다.
봄병풍
중천에 걸려 있는 흐릿한 달, 동풍에 흔들리는 흐릿한 갈대
30년전 10살이 된 초라한 이불속에 기어든 두부처럼 여린 소년의 영혼에 깊이 스며든다.
여름병풍
산기슭에 걸린 초승달, 천지에 무성한 초록풀
20년전 20살이된 얇은 이불속에 드러누운 피보다 더 뜨거운 젊은 남자의 영혼을 동요시킨다.
가을병풍
그림자 하나 없는 명월, 가을바람에 굽이치는 초원
10년전 30살된 호사한 이불속에 들어가 있는 추억에 가득찬 청년의 영혼을 압도하고 마비시킨다.
겨울병풍
잘 닦인 겨울달, 얼음과 가루눈에 갇힌 산정호수. 호수의 얼음이 삐걱거리는 소리는 시간의 흐름까지도 얼어붙게 한다
현재의 나인 40년 10개월이된 중년남자의 패기 한조각 없는 회색빛 영혼을 마비시킨다.
책을 읽으며 한폭의 동양화를 보는듯 했는데 계절이 바뀔때마다 달라지는 달의 모습과 배경은 마음을 압도하고 마비시키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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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 너머에 있던 달이 이지러지기 시작해 급속히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러나 병풍속 달은 여전히 똑같은 형태와 위치를 유지한 채 나와, 내가 여기까지 끌고온 단순하기 짝이 없는 세월을 비추고 있다.(101)
조롱을 높이 매달고
사람들은 죽기 위해 사는 것도, 살기 위해 사는 것도 아니다.(102)
장과 가족에게서 버림받은 40대남자가 고향을 찾아가 고독한 영혼을 달래는 내용이다.
그는 한때 잃는게 두려워 분투했음에도 모든걸 잃게되자 자신의 전반기의 모든것을 묻는다.
그는 버림으로써 살아남았다. 직장, 가정, 체면따위를....
그의 마음 속의 피리새 소리를 듣기 위해 노인에게서 피리새 조롱을 빼았는다.
결국 그는 마을을 떠나며 피리새 조롱을 높이 매달아 피리새에게 자유를 주게 된다.
아둥바둥 현재를 살고 있는 누구나 느낄수 있는 감정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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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리새 소리는 내 온몸 깊숙이 스며들어 영혼의 가장자리까지 도달했다. 나는 지쳐서 앓고 있었다. 육체 아닌 어딘가, 뇌 아닌 어딘가가 몹시 상해 있었다.(147)
뿌연 달빛이 가득차 있는 거리는 조금씩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파도소리를 압도해 가고 있었다.
창으로 들어오는 창백한 달빛은 내 가슴 속을 남김없이 비추고 있었다.(149)
마지막으로 이책을 번역한 한성례님의 후기에서 마루야마 겐지의 에세이 <미래의 글쓰는 이에게>한 말은 가슴에 새겨놓을 만한 글이어서 옮겨본다.
"친구를 멀리하고 직장 동료나 아는 사람들과 모두 거리를 두고, 자신을 고림된 상태로 둘것. 예술을 한다는 것은 혼의 문제와 접하는 것이므로 행복과 안정에 가까워지면 그만큼 거기서 멀어진다. 진실로 문학을 목표로 한다면, 고독을 향해 고독을 누르고 고독을 초월하라. 자신 이외의 곳에서 힘을 구하려 하지 마라. 불안, 분노, 고독감, 슬픔을 돌진해 나가면 손대지 않은 문학의 금광이 펼쳐지고, 밟지 않은 봉우리들이 솟아 있다. 자폐가 아닌, 앞을 향한 '개인', 앞을 향한 '활' 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