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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 X ㅣ 창비교육 성장소설 9
권여름 외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7월
평점 :
모두에게 익숙한 장소이자 ‘공포’에 최적화된 그곳. ‘학교’를 배경으로 한 괴담 모음집.
전교 1등이 올린 유튜브에 영상에 찍힌 기이한 형체, 복수심이 만들어 낸 절대 나갈 수 없는 카톡방, 보름들이 뜨는 밤 시작되는 특별한 수업, 매년 같은 한번을 받은 학생에게 내려지는 끔찍한 저주, 소중한 것을 바쳐야 소원을 들어주는 전설의 구덩이, 아이에게 잔인하기까지 한 소문 등 성장의 고통과 불안을 겪고 있는 청소년, 성인 독자들에게 은근한 몰입감과 쾌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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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터디 위드미-이유리
대체 저것들은 왜 하필 수아한테 붙었을까.
비록 친하진 않지만 내가 본 수아는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격에 지독히 공부 벌레였다. 빡솔의 말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선생님의 말이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할 애였다나. 수아는 일어날 사고도 미리 알아서 피해 갈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 번째 이유가 훨씬 가능성이 높았다. 저주 말이다.
수아한테 원한을 가질 만한 애들이야 쌔고 쌨다.
아까부터 이 말을 꼭 해야 한다 싶었는데 그만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끝내 하지 못한 말을 나는 거울에 대고 중얼거렸다.
수아야, 너 늦둥이 동생이 하나 있다고 했지.
네 영상에 나온 귀신은 둘이었어.
▪카톡감옥-은치규
도상현이 만든 방은 차단하거나 초대 거부를 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아이들은 계속 방을 나가려고 했고 인터넷에서 본 이런저런 방법을 공유하며 탈출을 시도했지만, 어김없이 초대되어 결국에는 다시 끌려오게 되었다.
정준우는 카톡 감옥을 나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지난 대화를 천천히 살펴봤다.
그렇게 스크롤을 조금씩 올리다가 실수로 D가 봰 동영상 하나를 클릭하게 되었다.
동영상 속 천장에 메달린 시체는 강병세였다. 그 순간 강병세와 단둘이 남은 채팅방 속 메시지는 옆에 붙어 있던 마지막 숫자 1이 사라졌다. 그리고 ㅋㅋㅋㅋ 이어지는 웃음소리.
▪벗어나고 싶어서-은모든
무엇보다 고욕인 것은 전학 간 학교에서 맞는 첫날이었다.
낯선 교실의 공기, 뻣뻣한 교복, 어색한 인사, 무엇보다 맨 처음 맞는 점심시간
"너한테 폭언까지 하신 것까지 변호하지 않을 게. 어차피 지금쯤은 너도 그분들이 욱해서 한 말씀이 진심이 아니었다는 걸 모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윤재야, 그분들 꿈에 한 번 쯤은 얼굴을 비춰주는 게 좋을 거야. 이렇게 보름달이 뜰 때마다 꼬박꼬박 학교로 돌아올 여력이 있으면."
▪영고 1983-권여름
오래전이나 가능했던 잔인한 일이 지금도 어디에선가 일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소름 돋는 건 그런 게 아니겠어?
그들은 희준을 못 봤지만 희한하게 희준은 그들이 보였다.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가. 영원히 1830이 될리 없다고 안심하는 녀석들에게, 그게 아니라고 알려주려던 것뿐이었다. 책상만 버리려던 거였어. 얘들아 . 믿어 주라. 그렇게 양희준이 말을 끝냈을 때 묵직한 것이 화단에 떨어져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런 애 - 조진주
"이 동그란 구멍 앞에 서 있으면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것 같아. 막 두군거려." 솔희가 가리킨 것은 카메라 렌즈였다.
솔희의 말에 예나는 구멍에 얽힌 전선을 떠올렸다. 이 어둡고 좁은 곳에 갇혀 아이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여자를. 그런데 왜 지금껏 아마도 그 여잘 꺼내 주려 하지 않았지? 왜 이런 곳에 가둬 두고 소원이나 빌고 있는 거지
예나는 구멍에 갇힌 여자를 꺼내 주고 싶었다.
예나가 잘게 찢은 종잇조각에 불을 붙여 그것을 구덩이 아래로 떨어뜨리자, 가만히 지켜보던 솔히도 곧 따라 했다.
▪하수구 아이-나 푸름
그 애가 학교 후문 근처에 있는 하수구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그곳이 그 애의 집이라고 말했다.
말이 되지 않았고, 퍽 잔인하기까지 했지만, 아이들은 그 소문을 재밌어했다. 그리고 소문이 시들해질 정도로 시간이 흐른 어느 날, 그 애가 사라졌다.
그날 밤, 엄마는 한밤중에 잠든 나를 깨웠다. 그 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엄마는 내가 아는 사람의 죽음이 두려워서 그런다고 생각한 듯, 혼자서 장례식 장에 갔다. 그러나 내가 두려워한 것은 할머니의 죽음이 아니었다. 혹시라도 장례식장에 갔다가 반 아이들이 우리 사이를 알게 될까 두려웠던 것뿐이다.